Description
미 해군 최초 태평양 진출, 미국 최초 식민지를 건설한
프리깃 에식스호의 데이비드 포터 함장
프리깃 에식스호의 데이비드 포터 함장
데이비드 포터는 해군인 아버지를 둔 집안에서 태어나 16세 때부터 상선을 타기 시작했다. 18세에 장교 후보생으로서 콘스텔레이션호에 승선, 프랑스와의 유사 전쟁에 참전했다. 19세에 중위로 진급, 26세에 마스터 커맨던트로, 그리고 1812년전쟁이 시작된 해인 32세에 함장으로 진급해 에식스(Essex)호를 지휘하며 전쟁에 참전했다. 1799년에 건조된 에식스호는 근거리에서 매우 강력한 화력을 행사하는 빠른 프리깃이다. 1812년 바다로 나간 포터는 작은 영국 배인 얼러트(Alert)호와의 전투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둔다.
오늘날 태평양은 미국의 세계정책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지역이다. 그렇지만 포터 당시의 신생 국가 미국은 자국의 영토가 태평양과 접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몰랐을 것이다. ‘남양(南洋)’이라 불리던 태평양의 마르케사스제도에서 원주민과 식민 전쟁을 벌였고, 미국 최초의 식민지를 건설한 사람이 바로 포터다. 포터의 주 무대는 태평양이었다. 대서양을 남하하여 남미의 끝인 케이프 혼을 지나 미 해군으로서는 최초로 태평양에 진출했고, 갈라파고스에서 적선을 나포하고, 워싱턴제도 누쿠히바섬에 미국식 지명을 붙여 식민지 매디슨빌을 건설했으며, 타이피족과 전쟁을 벌였다. 포터는 미국 식민주의자의 원형(原型)을 보여 주는 인물이다.
미국 배를 보호하고 영국 포경선을 나포, 고래기름을 획득해 경제적 이익은 물론 영국의 포경업 타격이 목적이었던 포터는 주 무대인 태평양에서 실제로 12척의 영국 포경선을 나포했다. 함장으로서 포터의 지도력과 전략이 돋보이고, 높이 평가받는 이유다.
해군으로서 역할을 다했던 포터는 최후의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경력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이에 따라 그는 몇 년 뒤 스스로 사임하고 해군을 떠난다. 그 후 멕시코 해군 창설에 관여하여 3년(1826∼1829) 정도 몸담았으며, 오토만제국에서 공사로 재임 중 콘스탄티노플에서 63세에 사망했다.
오늘날 태평양은 미국의 세계정책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지역이다. 그렇지만 포터 당시의 신생 국가 미국은 자국의 영토가 태평양과 접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몰랐을 것이다. ‘남양(南洋)’이라 불리던 태평양의 마르케사스제도에서 원주민과 식민 전쟁을 벌였고, 미국 최초의 식민지를 건설한 사람이 바로 포터다. 포터의 주 무대는 태평양이었다. 대서양을 남하하여 남미의 끝인 케이프 혼을 지나 미 해군으로서는 최초로 태평양에 진출했고, 갈라파고스에서 적선을 나포하고, 워싱턴제도 누쿠히바섬에 미국식 지명을 붙여 식민지 매디슨빌을 건설했으며, 타이피족과 전쟁을 벌였다. 포터는 미국 식민주의자의 원형(原型)을 보여 주는 인물이다.
미국 배를 보호하고 영국 포경선을 나포, 고래기름을 획득해 경제적 이익은 물론 영국의 포경업 타격이 목적이었던 포터는 주 무대인 태평양에서 실제로 12척의 영국 포경선을 나포했다. 함장으로서 포터의 지도력과 전략이 돋보이고, 높이 평가받는 이유다.
해군으로서 역할을 다했던 포터는 최후의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경력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이에 따라 그는 몇 년 뒤 스스로 사임하고 해군을 떠난다. 그 후 멕시코 해군 창설에 관여하여 3년(1826∼1829) 정도 몸담았으며, 오토만제국에서 공사로 재임 중 콘스탄티노플에서 63세에 사망했다.
데이비드 포터의 남태평양 항해기 1812~1814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