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을내친유럽,예술-이후의시대,예술이사라진세상
『만남』은밀란쿤데라가『소설의기술』(1986),『배반의약속』(1993),『커튼』(2005)에이어네번째펴낸에세이다.전작들이쿤데라소설의정체성,중부유럽소설의현재위치,나아가소설이라는예술장르의의미를말하고자했다면『만남』은쿤데라인생에잊지못할방점을찍어준예술가,혹은예술작품들과의“스파크고섬광이고우연”인만남들,작품발문을인용하자면그의“성찰과의,추억과의,오랜주제와의,오랜사랑과의만남”들을소개한다.
“나는만남이라고표현했다.교류도아니고우정도아니며,동맹조차도아니다.만남,다시말해스파크고섬광이고우연이다.”(128쪽)
‘세기의천재들’자료에따르면이천재들이란코코샤넬,마리아칼라스,프로이트,마리퀴리,빌게이츠,피카소,이브생로랑,록펠러,큐브릭,토머스에디슨등이다.쿤데라는이명부가“매우분명하게현실적인변화를예고했다.”라고말한다.사람들은문화의천재들을조금의후회도없이멀리내친것이다.“세기병과도착증,그리고그죄악과함께모두명성이더러워진문화적우두머리들”보다“코코샤넬과그녀드레스의순수함”을사람들이선호한것에서쿤데라는“그나마위안”을받는다.쿤데라에따르면유럽은검찰관들의시대로들어가고있다.유럽은더이상사랑받지않고있다.유럽은더이상스스로를사랑하지않고있다.그렇다면예술이더이상사랑받지못하고있는이유가무엇일까?쿤데라는그대표적인예로영화기술을꼽는다.『만남』에서쿤데라는1895년뤼미에르형제가발명한것은“예술이아니”라“기술이었”다고단언한다.예술로서의영화가존재하는것도사실이지만,그중요성은기술로서의영화의중요성보다도훨씬더제한적이고,그역사가모든예술역사중에서가장짧다는것이다.
이러한‘활동사진’의발견이없었다면,지금세상은현재모습이아닐수도있을것이다.새로운기술은우선,(스폿광고,텔레비전드라마처럼저질문학보다비교할수없을정도로강력한)바보만들기의주요한동인이되었으며,두번째로(불리한상황에서정적을비밀리에촬영하고,테러행위가일어난후들것에누워있는,옷이반쯤벗겨진여자의고통을불멸화하는카메라처럼)전지구적인무례함의동인이되었다.(199쪽)
스토리텔링으로서의영화가아니라화려한3D기술로서의영화가주목받고,작고간편한휴대용기기가책,편지,오디오의기능을독점해가는현시대,사람들은점점더순수문학으로서의소설과시를읽지않고있다.쿤데라가“예술-이후의시대에있다는느낌,예술의필요성,감수성,예술에대한사랑이사라지기때문에예술이사라진세상에있다.”라고말한것도과언이아니다.하지만쿤데라는이렇게예술이사라져가는세상,예술-이후의시대에서도자신의영혼을뒤흔들고,자신의인생에깊은“흔적”을남긴예술계의거장,혹은그들작품과의만남을통해여전히살아숨쉬는예술,그속에숨은인간본연의모습과마주하기를멈추지않는다.쿤데라가경탄한작가베케트,브로흐,이오네스코,말라파르트,쿤데라와교류했던동시대를움직였던작가르네데페스트르,카를로스푸엔테스,루이아라공,뿐만아니라화가프랜시스베이컨과작곡가야나체크등,쿤데라와여러거장들과의만남은21세기의독자이자청중인우리들에게또한강렬하고아름다운경험을선사할것이다.
■소설가이자극작가,에세이스트이자망명가,그리고무엇보다도‘인간’쿤데라의영혼을뒤흔든세기의만남들
쿤데라는자신의첫사랑이작곡가야나체크라고고백한다.야나체크는그의첫사랑일뿐만아니라,그의고국을그의“미학적유전자에영속적으로각인”한사람이기도하다.야나체크는일생을체코브르노에서보냈다.젊은피아니스트였던쿤데라의아버지는그곳에서야나체크의초기연구자들과지지자들과어울렸다.쿤데라는야나체크가세상을떠난지일년후에태어났고,유년시절부터매일아버지나아버지의제자들이피아노로연주하는야나체크의음악을들으며자랐다.1971년,침울했던점령시절,아버지장례식을치르면서쿤데라는일체의담화를금지했다고한다.단지음악가넷이화장터에서야나체크의현악4중주곡을연주하기만한것이다.쿤데라에따르면야나체크는인간(삶)의노쇠,추함,우스꽝스러운면을음악으로훌륭하게환원한작곡가다.『만남』에서쿤데라가주목한화가는프랜시스베이컨이다.쿤데라는미셸아르솅보의제안으로한잡지에베이컨에대한에세이를썼고,베이컨은이를읽고“스스로를발견한드문글가운데하나”라고전해왔다고한다.『만남』에는바로그때의에세이와,훗날덧붙인글이함께수록되어있다.쿤데라는베이컨의뮤즈였던여인헨리에터모레스의초상삼부작을보고깊은영감을받았다.쿤데라는베이컨의초상화가‘자아’의한계에대한‘질문’이라고말한다.
화가의시선은난폭한손처럼얼굴에놓여있었고,얼굴의정수를,내면깊은곳에감추어진그다이아몬드를빼앗으려하고있었다.물론내면깊은곳이정말무엇인가를감추고있는지는확실하지않다.하지만그것이무엇이든간에우리모두에게는이런난폭한몸짓,타인의내면과배후에숨겨진무엇인가를찾고자하는희망을품고타인의얼굴을마구구기는이런손의움직임이있다.(15쪽)
(…)
어느정도까지왜곡될때,한개인은여전히그자신으로남아있을까?어느정도까지왜곡될때,사랑하는존재는여전히사랑하는존재로남아있을까?소중한얼굴이질병때문에,광기때문에,증오때문에,죽음때문에멀어질때,얼마나오랫동안그얼굴을알아볼수있을까?‘자아’가더이상‘자아’이기를멈추는경계는어디인가?(19쪽)
『만남』은다른어떤장르보다도강하게,문학에대한쿤데라의애정을드러내는작품이기도하다.쿤데라는도스토옙스키의『백치』를통해우스운일이전혀없는데도웃음을터뜨리게되는역설적인희극적상황,즉우리가“어쩔수없이살아야만하는유머없는웃음의세계”를포착해낸다.셀린을통해서는고문과전쟁과죽음을겪어야했던세대의운명을,필립로스의작품에서는“정체가드러나고환상이깨져버린우리자신의벗은몸”,그욕망과마주한“버림받은인간이자신의몸을마주할때느끼는기이한고독”과만난다.한편가르시아마르케스의『백년의고독』을두고는“소설예술의극치인동시에소설의시대에보내는작별인사”라고평한다.뿐만아니다.『백조의날개』를쓴아이슬란드소설가구드베르구르베르그손,스페인작가후안고이티솔로,루마니아출생그리스작곡가이안니스크세나키스등어쩌면국내독자들에게약간은낯설지도모를예술계거장들이쿤데라의눈과귀와손을거쳐우리를매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