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삼
지은이:김종삼
1921년3월황해도운율에서아버지김서영과어머니김신애사이에서차남으로태어났다(장남이시인김종문).하지만아버지를따라평양으로이주,그곳에서성장했다.
1937년평양숭실중학교를중퇴하고이듬해일본으로건너갔다.17세되던1938년,도쿄도요시마상업학교에편입학해,1940년졸업한다.그의일본유학은부모나주위의권유에의한것이아니었다.작곡을하고싶어자의로대한해협을건넜다.그의시와삶에서클래식음악이그토록큰비중을차지한것도이때의결심과연관이있을것이다.1942년그가도쿄문화학원문학과에들어가자,법학이나경제학을공부하길원하던아버지가지원을끊어버렸다.이때부터1945년해방되어귀국할때까지신문팔이,부두하역부등막노동을하며고학했다.문화학원문학과는1944년중퇴했지만,이시기그는도스토옙스키,바이런,하이네,발레리등을탐독하는한편클래식음악에도심취했다.
막노동을하면서도서양예술과일본의고급문화를경험한그에게해방직후의고국은적응하기힘든혼란스런세계였다.좌와우가갈려맞부딪치던해방공간.남과북은각각정부를세웠고,마침내동란이일어나고말았다.김종삼이시를쓰기시작한것은앞이보이지않는캄캄한폐허위에서였다.서울명동에서어울리던문인과예술가는피란지부산과대구에서다시모였다.전쟁이라는시대적비극속에서김종삼은개인적비극과마주친다.절친했던벗전봉래(시인전봉건의형)가1951년2월,피란지수도부산에서자살한것이다.
김종삼은1953년≪신세계≫를통해등단했다.그가시를쓰기시작한것은피란지대구에서였다.“쓰지않을수없어서쓰기시작한시”였지만,당시문단에서는그의시를불편해했다.시인김윤성이그의시를≪문예≫에추천하기위해가져갔는데심사위원들의눈에들지못했다.‘꽃과이슬’을쓰지않았고,지나치게난해하다는이유였다.김종삼시의진가를처음으로높이평가한시인은김춘수였다.
휴전이후서울에정착한그의직업은음악과연관된것이었다.1955년국방부정훈국방송과음악담당이란직함을얻은김종삼은1963년동아방송(1980년신군부에의해KBS2라디오로통폐합됐다)에입사해1976년정년퇴임때까지근무한다.1956년결혼하고두자녀를낳았지만그는성실한생활인은되지못했다.직장에적응하기힘들어했고,생의후반기에는가정을이끌지도못했다.
정년퇴임이후그의삶은불우했다.가족의부양은물론자신의몸을가누기조차힘들었다.알코올중독이었다.1982년세번째시집≪누군가나에게물었다≫를전후한시들이이시기를반영하고있다.시속의죽음과현실의죽음이오버랩되기도했다.시인은실제로자살을시도했다가중환자실에서깨어나기도했다.박정희에서전두환으로,군부독재가신군부로넘어가던시대,자본주의가깊숙이뿌리를내리던고도성장시대,시인의몸과마음은거의무너져있었다.“매일같이스스로죽고있”던그는마침내1984년8월9일영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