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의거대한뿌리를호명
1번은김수영이었다.지금은한국시의‘거대한뿌리’가되었지만당시김수영은변변한시집한권내지못한채요절한불운한시인이었다.젊은평론가들이선정한오늘의시인총서리스트는당시문단의주류를이루던해방이전등단시인들이가급적배제된,현대성에서성취를이룬젊은시인들을중심으로꾸려졌다.“우리가오늘의시인총서를발간하기로결정한것은시인들의그날카로운직관을통해한국사회의정신적상처와기쁨을이해하기위해서이다.”전설의발간사로기억되는평론가김현의문장에는젊은시인의직관적언어를선별해한국사회를가장정확하게이해하려는포부가고스란히담겨있다.
현대시독자를탄생시킨한국문학사의시금석
오늘의시인총서는시인들만조명한것이아니다.‘오늘의시인’들은‘오들의시독자’를낳았다.지금은시집판형으로자리잡은세로형디자인,시인들의대표작을선별해엮은‘시선집’형태등당시로서는획기적이었던문학적사건에독자들은열광했다.500원이었던시집의초판2000부가바로매진돼전권이재판에돌입했다.그중에서도김수영의『거대한뿌리』는3년동안3만부가팔렸다.한마디로기적이었다.오늘의시인총서는시인들의인증관문이자문학청춘들의교과서였을뿐만아니라창작의고통을앓는이들이훔치듯읽던영감의보고였다.자극을필요로하는누구나가이시집을읽으며최전선의한국어에충격받았다.오늘의시인총서와함께본격적인‘시독자’의시대가열렸다.
22년만의신작선집출간,오늘의시인허연
장정일『햄버거에대한명상』을마지막으로22년동안운행을멈췄던시인총서가출간50주년을맞아신작을선보인다.그주인공은허연이다.허연은청춘의가치인‘불온함’을인간의실존적가치로노래하며대중과평단의지지를고루얻는‘여전히젊은시인’이다.데뷔작『불온한검은피』는출간된지30년여년이지난지금까지도매년3000부이상증쇄를거듭하는스테디셀러로자리매김했다.『불온한검은피』이후13년만에출간된두번째시집『나쁜소년이온다』는드라마속테마도서로,소설속인용문구로등장하며유례없는인기를끌었다.사회인으로성실히나이들어가되여전히길들여지지않는아웃사이더로서의방황이더는젊지않은독자들의깊은공감을얻었다.이후출간된시집들에서불온함은슬픔의옷을입고성숙해갔다.시가그렇듯시인역시어느분류에도어울리지않는‘초개인주의자’의상징이되었다.그러나그의시는10대학생부터청장년층에이르기까지,시인지망생부터일간지칼럼필사자에이르기까지폭넓은독자를아우른다.의심할여지없는‘국민시인’이자데뷔작과최신작이동시에사랑받는유일한현역시인허연은명실상부‘오늘의시인’이다.
3개의테마로관통하는핵심시47편
『밤에생긴상처』는3개의부로구성되었다.1부제목은들뜬혈통,2부제목은가시의시간,3부제목은신성과세속이다.1부에서는세상의옆구리를찌르고싶었던젊은나날의방황을서슬퍼런시어들로만날수있다.1부가세상과불화하는불온함의노래라면2부에서는자기자신과의불화속에서빚어진불온함의내력을보여준다.우울과불안같은병증들이문학적언어로그려지지않던시절,허연의시는누구보다사실적으로심리적비명을들려준다.3부에서는성과속사이에서갈등하는존재론적모순이영혼의방황이자영원한방황을그린다.요컨대이모든방황은오래도록사라지지않는“밤에생긴상처”다.그동안발간된시집들에서허연시의테마를관통하는작품들만을엄격하게선별해엮은이번선집에서독자들은기존의시들을낯설게읽을수있는동시에아직쓰이지않은미래의시들을읽는단서를얻을수있다.허연의예비독자라면만남을준비하기위해,허연의오랜팬이라면새로운만남을준비하기위해읽어야할시집이다.
친절하고깊이있는해설수록
박혜진평론가의해설을수록했다.2024년제정된김종철시학상1회수상작이기도한이해설은문학적이론과문화적흐름들안에서허연시를입체적으로읽어내는동시에등단이후시인의궤적을꼼꼼히살피며관찰해온탐구적인시선이돋보이는글이다.무엇보다허연시를읽고사랑해온독자들의애정에서그의시가가진힘과생명력을분석했다는점에서독자들의안내자이자친구같은글로역할하기에충분하다.
해설에서
세기말과밀레니얼이라는시끄럽고화려한시대에허연이라는한초개인주의자가종적을감춘배후에는그의시가그가살아가는세계의패러다임과완벽하게불일치했다는진실이자리한다.시집의제목이된“불온함”은비유가아니었다.비유가아닌불온함은문학적으로사라지지않고물리적으로사라진다.허연은사라졌다.리얼한방식으로.그러나시집『불온한검은피』는결빙된채그대로보존되어읽히고또읽히며한국현대시의새로운전형이되었다.스스로를벌하고스스로가법이되는궁극의모순이자궁극의자기완결적존재는녹아흐르지않았고,흐르며섞이지않았다.우리는허연이없는곳에서허연을읽었고허연은자신이없는곳에서신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