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 (최문자 시집 | 양장본 Hardcover)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 (최문자 시집 | 양장본 Hardcover)

$10.15
Description
삶이 그리는 서늘한 궤적 위
‘고백’으로만 가능한 찰나의 순간들

고통과 사랑을 시라는 형식에 담아 기록해 온 최문자의 여덟 번째 시집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가 ‘민음의 시’ 255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훔친 것들’을 아무도 모르게 숨겨 둔 외로운 이처럼, 덤덤하게 삶을 풀어 놓으면서도 때때로 고백과 비밀, 죽음과 참회 들이 터져 나오도록 둔다. 오랫동안 품어 왔던 비밀을 털어놓고, 일생 동안 사랑했던 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끝’의 순간들로부터 시인은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상실과 불안을 여유롭게 부려 내며 촘촘히 짜인 시의 격자는 어떤 것도 헐렁하게 빠져나가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우리는 그 안에 단단히 붙잡힌 채, 슬픔과 참혹함이 지나가며 남기는 흔적들을, 그것들이 지나간 뒤에도 여전히 이어지는 시간의 궤적을 가만히 바라본다.
저자

최문자

서울에서태어났으며《현대문학》을통해등단했다.시집으로『나무고아원』,『그녀는믿는버릇이있다』,『사과사이사이새』,『파의목소리』등이있다.박두진문학상,한국시인협회상,야립대상등을수상했고협성대총장을역임했으며현재배재대석좌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1부고백의성분
고백의환(幻)
위약(僞藥)
낡은사물들
2014년

핀의도시
밤의경험
고백성
종소리
비누들의페이지
위험한하나님

사이

2부우리가버린말들
오렌지에게
우기
흐림
난해한고독
맨드라미책
물의기분
초식성
부화
old한연애
개꿈
수업시대
어떤수족
오늘

목화밭
꽃구경
깊은강
튜닝
진화
연날리기
가난한애인
다른빵

3부나무다리
크레바스
부활절
고부스탄
빠름빠름빠름
밤에는

폐광
그림자
나무다리
시인들
네모의이해
백목련
해바라기

4부너무하얀것들
하얀것들의식사
구름도장
분실된시
야생
죄책감
흰줄
빵과꽃
편지
총의무덤
민들레
지상은
적의크기만한기억
공유

작품해설┃조재룡
죽음,시간성,꽃피는고백

출판사 서평

■고백의실천성

고백은나의벽돌로만든나의빨간지붕이달린아직아무도열어보지못한창문같기도하고창문아래두고간그사람같고내앞을떠나지못하는슬픔같고흰구름같고비바람불고후드득빗방울날리는것이눈보라같아서내몸같아서나는고백할수있을까?
―「고백의환(幻)」에서

고백은그행위가이루어지기전까지수백번주춤거리게하는소극적인말이면서도,발화되었을때무엇보다강력한힘을가진적극적이고실천적인말이다.고백은긴망설임의끝에오며,그로부터또다른삶이펼쳐질시작점이다.그리하여고백은순간과순간의사이에위치하지만그자체로강렬한하나의순간이며사건이다.이시집에는‘고백’이라는말이자주등장한다.최문자의시적화자들은늘고백을그리워하고,그앞에서충분히망설인뒤,마침내수행한다.관록의시인이삶의면면에서채취한,고백으로만가능한찰나적순간들이한권의시집이되어우리에게왔다.

■죽음과영원사이

죽음의기억은
적의크기만한기억
하얀접시에나누어담고
신이가르쳐준대로애통할시간이없다
―「적의크기만한기억」에서

시인의고백이더욱내밀할수있는것은그고백이죽음을바탕에두고있기때문이다.긴시간을함께해온사람의사망신고서에도장을찍고(「구름도장」),샛노란꽃잎이까맣게타죽으려고하거나(「크레바스」),스물다섯청년이20층옥상에서추락한다.(「위약(僞藥)」)죽음은완전한끝이고가장짙은어둠이다.끝없는아래를향하는것이다.그러나최문자의시적화자는그와동시에고개를들어위를본다.‘하양’으로상징되는절대자와신을향해겸허한눈빛을보낸다.죽음을겪은화자가영원을향할때,죽음은끝일수없고영원은닿을수없는꿈이된다.이뤄질수없는양극단의사이에서무한한시가피어난다.

■눈부신슬픔의무대

어렴풋이채송화몇송이펴있고어렴풋이벌레들이기어가고어렴풋이새들이날파리처럼날아다니고어렴풋이눈사람이녹고사람들은어렴풋이사람인것처럼보였다어렴풋한세계가벼랑저아래있었다
―「수업시대」에서

상실과참회에서비롯된신음과울음이시집을가득적시고있지만시인은좀처럼과잉되는법이없다.누구나저마다고백이되기직전의무엇을가지고있을터.수많은고백들이모두바깥으로터져나온다면역설적으로고백은더이상의미를가질수없을것이다.고백이극적일수있는것은삶이무심하게흘러가기때문일테다.시인은삶이각자의절실한마음과는상관없이언제나일정하게흐르는것임을알고있다.그리하여삶의작동방식을논리적언어로설명하는대신,흘러가는장면의연쇄로표현한다.시에담긴건조하면서도감각적인장면의연쇄는고백이극적으로피어오를수있는무대가된다.『우리가훔친것들이만발한다』의독자들은가장효과적인무대에서,가장강력하게터져나오는슬픔의고백을만날수있을것이다.해설을쓴조재룡평론가의말처럼,이눈부신슬픔은우리가아름다움이라고부를수있는가능성을한껏쏘아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