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입으시겠어요? (조명 시집 | 양장본 Hardcover)

내 몸을 입으시겠어요? (조명 시집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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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향해 넓고 깊게 열려 있는, 안음과 품음의 시
첫 시집 『여왕코끼리의 힘』으로 매혹적이고 날카로운 시 세계를 보여 준 조명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내 몸을 입으시겠어요?』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조명 시인의 이번 시집은 무려 12년 만에 신작 시집인 만큼 한층 깊어지고 단련된 세계를 선보이는 동시에 12년의 시간이 무색하도록 새롭고 신선한 이미지를 발현한다. 삶과 죽음을 넘어서고 식물과 동물을 아우르며 모든 사랑을 품에 안는, 넓고 깊은 시. 그렇게 조명은 시를 통해 모두를 안는다. 시로 인하여 전부를 품는다.
저자

조명

대전에서태어났다.2003년계간《시평》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여왕코끼리의힘』이있다.〈예버덩문학의집〉대표.

목차

머리가꽃이다
고요를사르는불볕속
한떨기꽃이머리다
꽃얼굴빨갛다
아무래도나에게다말해주지않은것이다
정오의태양아래
풀치마안으로몸오그려숨어드는이
태양이기울어멀어질때
뉘엿뉘엿기어나와당신뒤편으로길게드러눕는
꽃동물같았다
꽃귀신들린꽃은꽃그림자도꽃이라서
나도다말해주지는못할것이다
몸소타올라전할뿐
태양이저녁을내려놓고새벽을찾아가고있다
저마다의알뿌리속으로기어든다
오늘밤
한알의꿈은
별하나의토양을바꿀수있을까
빨간달밤이오고있다
-「칸나」전문

막할례를마치고솟구친붉은머리꽃이여
돌창을들어맹수를쫓던여인들의후예여
그대는뿌리속어머니들이수백밤벼린
첫암술을밀어올려꽃피었네
뿌리골무여인이피워올린꽃목단이여
별나비와태양나비를동무삼던붉디붉은꽃이여
흰머리독수리황금갈기사자블랙재규어와도겨룰줄아는
그대는꽃중의꽃전사중의전사였구려
절연의유월은와서
낙화의초여름은오고야말아서
붉은머리전사와뿌리골무여인이작별을고하는날
나도반흑반백의모발귓바퀴뒤편으로쓸어넘기며
목단만두고꽃씨도없이영영떠나가려오
-「목단꽃전사」전문


한여인이신을낳았다
요정이아니라여신이아니라여인이
신을낳았다
번개와독수리의하늘을불러들여
굉음과섬광의궁륭에서
사랑과질투의도회지에서
비커와샬레의실험실에서
바람과햇살의하모니를밟고넘어가는열애의밤
횃불을치켜들고깃털펜을흔들며
인식의북을치는엑스터시의밤
은산철벽을허물어
살갗뚫고갑옷찢으며뿜어내는애신의광휘에
혼신으로재가된사랑의끝
한여인이잿무덤속에신을낳았다
비련의세멜러애련의세멜레시인의어머니세멜레
당신은신을창작했다그리고
신이되었다
올여름내내하늘에서불볕바람불어온다
몸속진액을말리며온다
오라!
나를살라재가될사랑아
불멸의몇줄잉태해야겠다.
-「세멜레의창작」전문

출판사 서평

■사랑이라는말이있기전,파린

사랑이라는말이있기전파린이있었지
우리는파린의계절로부터왔다네
-「파린의계절」에서

“파린”은사랑이다.사랑이라는말이있기전의사랑이다.사랑이라는말의쓰임이혼용되고번잡해질때,파린은“비음성적언어”가되어뒤로물러나있었다.『내몸을입으시겠어요?』에서조명시인은“한번태어나볼까요?”라는부드러운질문으로파린을불러온다.그것은섬의몸곳곳에닿는바다의살결처럼상세하고거대하다.파린은작디작고크나큰사랑이며이사랑은색과빛의씨앗이된다.“어둠속반짝임”이고“사랑의핵”이된다.“오래된미래”이며“다시,첫날”이기도하다.그리하여파린은결국생명과다름아니게되는것이다.시인은온갖생명을부르고같이호흡하며받아안는다.식물의언어로고래의몸짓을포용한다.이모든것은시인이파린의어머니이기에당연하고자연스레가능하다.

■삶과죽음이후에본,사슬나비

나는사슬나비를보았다
꽃다발과꽃다발을이어주고있었다
-「모든꽃다발속에는사슬나비가산다」에서

생명에는시작과끝이있다.끝과시작,그것은시로화하여모든것을품은파린에게도변하지않는진실이다.끝은시신의모습으로불쑥나타난다.앞마당같은화장터에서도,저멀리바라나시의복판에서도시신은끝을선언하듯나타나제몸이불살라지길기다린다.가장가까운이의죽음에서부터불면식의타인의그것까지목도한시인은“한통속의꿈속에다른꿈을보았”다는진실과마주한다.삶과죽음사이를자유롭게비행하는사슬나비를본것이다.사슬나비는산자의에너지와태어나지못한자의열망과삶을다한자의시간까지자유롭게오간다.조명의시는그날갯짓의반짝임이자비통함이고환희이자응답이다.이윽고시인은파린의세계에서사슬나비를만나신을잉태한다.시라는신이다시파린이되고,나비가되는영겁의순환으로시인은독자를데려간다.조용히그리고강인하게내미는그손을마다할도리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