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 민음의 시 279 (양장)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 민음의 시 279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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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아픈 과거를 직시하는 웃음기 없는 얼굴
정확한 울음을 통과한 끝에 건네는
충분한 안녕
제39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가 민음의 시 279번으로 출간되었다. 수상과 함께 독자들에게 처음으로 그 이름을 알린 시인 이기리는 첫 시집에서 담담하되 물러서지 않는 시선으로 과거의 상처를 돌아보고, 당시 어렴풋하게 떠올랐던 감정들에 형체를 부여한다. 그리고 마침내 사라진 것들과 다가올 것들에 향해 아프지 않은 안부 인사를 건넨다.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한다는 제목과 달리, 시집 초반부의 시들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차마 웃을 수 없는 어린 화자의 상황이다. 시인은 자신을 향한 교실 안의 폭력과 차가운 현실을 더 없이 구체적인 묘사로 그려 낸다. 지워 버릴 수도 있는 장면을 끝까지 눈을 뜨고 지켜보고, 소중한 것들이 사라진 자리에 남아 빈 자리의 구겨진 자국을 오래 응시한다. 4부의 시 제목이기도 한 ‘괜찮습니다’,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나겠습니다’라는 인사말들은 이 물러섬 없는 돌아봄의 결과물이다. “마주볼 용기가 가장 어렵고 필요한”(유계영) 지금, 이기리가 그리는 풍경은 가장 어려운 것을 해낸 바로 그 지점에 독자들을 데려다 놓는다.
선정 및 수상내역
- 제39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저자

이기리

2020년김수영문학상을통해등단했다.시집으로『그웃음을나도좋아해』『젖은풍경은잘말리기』가있다.

목차

1부구름을보면비를맞는표정을지었다
가넷―탄생석13
여름성경학교15
두개의얼굴17
어린이날18
번안곡21
올해마지막태풍23
명당을찾아라25
구겨진교실28
코러스31
거기서만나34
그웃음을나도좋아해37
싱크로율40
정물화를그리는동안43
계절감45

2부이야기는수많은등장인물을없애고
방생49
유리온실50
러브게임52
?54
성실한굴레57
우리집에는식물이없다60
염소가사는좌표평면의세계63
호수의아침68
긴긴70
사랑72

3부부르지않아도태어나는이름이있었다
일시정지75
꽃과생명77
유실―어느날의후렴80
다른모습84
비밀과유리병85
대화의자리87
좋은화분90
자각몽92
오늘대출했으므로당분간아무도빌릴수없다94
떠올릴만한시절96
궐련98
월간미식회100
바구니하나103
어느하루104
그래도다듣는다고했다106
강물에남은발자국마저떠내려가고107

4부우리가더아름답게지워질때까지
빛111
저녁의대관람차112
오로라115
너는꼭가지않아도돼요116
더많은것을약속해주는118
괜찮습니다121
재회124
백년해로126
식기전에128
더따뜻한차를130
우리가아직일때132
세밑134
누나에게135
충분한안녕138
더좋은모습으로만나겠습니다140

작품해설?조대한(문학평론가)
아직끝나지않은이야기143

출판사 서평

■그?웃음을?나도?좋아해

반아이들의시선이허공에뜬내몸을향해쏠렸다
어느새교실문너머몰린무리들이입을가리고키득거리고있었다
보이지않는입꼬리들이나를천장까지잡아당기는기분
어때?재밌지?재밌지?
―「구겨진교실」에서

‘그웃음을나도좋아해’라는말은‘너의웃음을나도좋아한다’라는동조일수있지만,갖지못한‘그웃음’에대한선망일수도있다.이기리의시에서‘그?웃음’은?마치?‘당신들의천국’처럼?내가?가질?수?없는?무엇이다.시속어린화자는학교폭력의피해자다.교실부터복도,화장실까지괴롭힘이들러붙는와중에,잔인하게치켜올라간아이들의입꼬리는나를천장까지잡아당기는것만같다.
그런화자에게도‘너’라고부를수있는누군가가있다.빈교실에함께남아있는너,나에게무슨말인가를적어전하는너,함께있는시간을계속하고싶은너.그러나‘너’의웃음은알수없는채로남고나는아직네가듣고싶은말을할수가없다.차마웃을수없는자신의낯선표정을숨기기위해서랍을열면,그속엔“이미숨겨두었던정체들”(「싱크로율」)이가득하다.이기리의화자는웃음을짓는대신구름을보며“비를맞는표정”을짓는다.붉어진저녁하늘을보며“이제다른행성의노래를들어도될까”(「그웃음을나도좋아해」)하고생각한다.

■충분한안녕

손목을심장가까이구부렸다가
아이들을향해원반을던진다
긴곡선을그리며날아가는원반은빛의모서리들을껴안고
아프지않은모양이된다
―「충분한안녕」에서

같은웃음을지을수없어서일까,이기리의시속에서화자는자주혼자남아있다.빈방에문을닫은채홀로누워있고,“수많은등장인물을없애고”(「유리온실」)숲에혼자남기도한다.그공간은마치유리온실처럼현실과는동떨어져있다.현실에서도화자가보는것은누군가가떠난“구겨진자리”(「오로라」),함께있지만입속에서는“차갑고딱딱한것이깨”(「재회」)져버리는한순간,“당신과멀어질수록환해지는”(「빛」)자기자신이다.
그러나혼자남아“더정확한울음”(「번안곡」)을듣고,어쩔수없이사라지는것들이있다는사실을받아들인이후,비로소시인은“아프지않은모양”(「충분한안녕」)으로인사를할수있을것같다.구겨진얼룩위에조금다른무늬를만들수도있을것같다.이미진주름을펼수는없으니그것은새롭게구겨지는일에다름아닐것이고,언제나와마찬가지로나의말은당신에게온전히가닿을수없을것이다.그러나그사실을물러섬없이마주한끝에시인이건네는안부인사는그만큼더단단하고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