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하양으로 (강정 시집 | 양장본 Hardcover)

커다란 하양으로 (강정 시집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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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강정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커다란 하양으로』가 민음의 시 287번으로 출간되었다. 죽음을 통해 거듭 새로 태어나고, 우주의 파동과 이어진 몸속의 원초적 감각에 집중하며 나의 경계를 넘어서고자 했던 강정은 이번 시집에서도 죽음에 골몰한다. 하지만 『커다란 하양으로』에서 죽음의 현장은 총천연색의 감각적 세계도 어둠과 피의 세계도 아닌, 하얀 막을 씌운 듯 무채색이다. 일상에 현재로서 출몰하는 죽음은 무구하고 결백하게 놓여 있다. 삶을 결딴내는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분투와 긴장 너머, 그곳이 바로 ‘커다란 하양’의 세계다. 모든 색의 결합이자 표백되고 삭제된 사라짐의 색이기도 한 흰색, 그 무채의 공간은 바로 백지처럼 “두텁게 열리는” 가능성의 세계이기도 하다.
저자

강정

1971년부산에서태어났다.1992년《현대시세계》로등단했다.『그리고나는눈먼자가되었다』『처형극장』『키스』『백치의산수』등8권의시집과『그저울수있을때울고싶을뿐이다』『콤마,씨』등5권의산문집이있다.록밴드‘엘리펀트슬리브’의리드보컬이다.

목차

1부

왼손미사15
오초의장식17
죽음의빛의19
생시의입관(入棺)22
돼지떼가몰고온상여24
수평선너머27
커다란하양으로30
우는거미32
달의독무(獨舞)34
한겨울,바다의분진36


2부

러닝타임41
보라선45
진화론48
살의파도-박병천‘살풀이’모창50
뱀을만난길-J에게52
유리전차55
마주선창백58
해끝으로의산행61
십자그늘63
눈물의모서리65


3부

군청(群靑)바깥으로69
학의평범한자태71
왼발의구도73
전태일기념관76
짓눌린날개78
배우80
인형의화엄(華嚴)84
집속의집86
모차르트비린내92
해지는정음(正音)95


4부

찢긴막99
E-D-Am-E101
귓속,파도의침소104
까마귀따라107
야금(冶金)된여명110
귀에걸린애련112
안녕,비둘기114
지우개로지은집116
그림자교회118
아침의굴과골121


5부

무채125

작품해설-박혜진(문학평론가)
하양의자서전143

출판사 서평

■나는지금열렬히죽은채

나는지금죽어도좋다

몸이라는웅대한거짓말이숨통을조여도

죽음다음은머리칼에서풀려난비녀처럼뾰족하고또렷할것이니

그래서나는지금열렬히죽은채오초마다꼿꼿하다
-「오초의장식」에서

『커다란하양으로』의화자들은죽음앞에담대하다.“나는지금죽어도좋다”라고말할수있는이유는죽음이후찾아올‘또렷함’에대한확신이있어서다.확신은그가“지금열렬히죽은채”살아있는데서온다.이시집에서죽음은대수롭지않은듯삶과함께놓여있다.“입관직전벌떡일어나오늘의안부를적는시체”(「생시의입관(入棺)」)처럼,죽은자는안부전화를걸기도하고돌연살아있는얼굴로나타나기도한다.“온세상을삼키려드는죽음”(「커다란하양으로」)의긴장이언뜻언뜻드러나지만,이죽음은삼켜진채로,“살아있는오늘의빛”에감싸인채로존재한다.
산자가일상에서죽음을마주치고,죽음에예속된자가죽음을대담하게껴안는다는불가능의가능성에대해서는시집의마지막에실린산문「무채」에서힌트를얻을수있다.길가의고양이와눈마주친화자는문득“내가고양이를본게아니라고양이의꿈속에내가나타났다가사라진것”이라는확신을느낀다.고양이의꿈속은“현실보다엄밀하고또렷한시공간”이다.이세계의경험은“죽는다고해서완전히죽는건아니라는”사실을일깨운다.‘나’를벗어나나를바라보고,‘죽음’바깥의세상을경험해본이는이렇게초연한문장을말할수있다.“나는그저떠도는눈의반사체들일뿐/나자신인적한번도없었다”(「눈물의모서리」).

■하양의자서전

생각이지워지고
지워진생각이다시글이되고
글이된뜻이
전하려던뜻을전하지않겠다는체념이되어
백지뒤가두텁게열렸다

(......)

문을열고나가려다가잠시
돌아본자의뒷모습이평생동안의나였다
살아있던시간이,
모든시간이다지난다음조립된
시간스스로의관이었던거다

-「지우개로지은집」에서

나와죽음을넘어서,화자는‘커다란하양으로’향한다.하양의세계는축적된지식과습성으로구성되는색채를무화시킨다.세상은사람들이이름붙인다채로운색으로구성되지만,화자가경험한또다른시공간인꿈속은무채의세계다.흰색,즉빛의총체인동시에표백과박멸의색인하양에주목한문학평론가박혜진은작품해설「하양의자서전」에서『커다란하양으로』를두고“어떤색도빠져나가지못하는철의그물망을들고세상을관찰하는한무채론자가색채에두고이루어낸전복적인색상환이자성공한반란”이라고말했다.
썼다지우는행위를통해비로소백지의가능성이열리듯,하양의에너지는세계와나사이의경합과전복,부서짐과깨어짐에서나온다.강정에게시는자신을가둔세계에맞서내안의세계를항변하고주장하는도구이자,그주장을스스로파기하는수단이기도하다.“더큰침묵속에서더하얀절규로어둠의형태를망각또는양각하기위해”(「무채」)시는쓰인다.나로규정되고,나를통해규정하고,다시금그것이깨어지는움직임속에서시는“한때작렬하다가말라붙은시간의완고한응결체”가된다.그응결체로서우리앞에놓인『커다란하양으로』를‘하양의자서전’이자시의자서전이라불러보아도좋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