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무늬 비닐 커튼 (채호기 시집 | 양장본 Hardcover)

줄무늬 비닐 커튼 (채호기 시집 | 양장본 Hardcover)

$10.00
Description
침전하는 언어와 폭발하는 충동,
거듭해서 태어나는 최초의 세계
저자

채호기

1988년《창작과비평》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지독한사랑』『슬픈게이』『밤의공중전화』『수련』『손가락이뜨겁다』『레슬링질수밖에없는』『검은사슴은이렇게말했을거다』,산문『주고,받다』(공저)가있다.김수영문학상,현대시작품상을수상했다.현재서울예술대학교문예학부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자기부상:자기분석
(자기부상:자기분석)11
물속의공기방울12
이제나는떠났다15
신체가있다18
망각,모르는게뭔지모르는두려움22
미로미러미궁28
내앞에있는이사람은내가아니야31
엑스레이35
histrionism37
자기부상:자기분석44
자신을알기위해48
질문이무너진다51
우뚝한돌그리고구멍54
지면58
아무것도아닌61
컨테이너바다65
아아,기어이내가너를죽였구나69
이명73
무대설치를위한도면76
시에게쓰던물을뺏기고말았네80
물에다쓰던시를베끼고말았네
마찰과운동83
구혼자들의고백이발가벗겨지는회로87
여와남90
어둠을파고드는스파클러반짝이는침엽93
딸기에서96
가죽안에99
이동,꼬리101
계류104
끝을통과하는지금107
작품해설111
계류와점화의시_김예령(번역가·서울대학교불어불문학과강사)

출판사 서평

채호기시인의여덟번째시집『줄무늬비닐커튼』이민음의시290번으로출간되었다.채호기시인에게‘수련의시인’이라는별칭을안겨준역작『수련』이후19년만에선보이는연작시집이다.
『수련』을분기점으로시인은‘언어’를인간의정신적인활동에동원되는도구가아닌하나의독립적인물질성을가진질료이자신체를가진개체로서발견해,그물질성을통해언어와실재의간극을좁히는실험을이어왔다.또한시인은삶을부여하는물질‘신체’와정신을구성하는물질‘언어’의접점이되는장소로서‘자아’에주목해왔는데,특히이번시집에서시인은자아의끝없는해체와경계의허묾으로오직언어의신체로감각할수있는세계를그려내며오랜시력을다해천착한이실험의정점이자시적상상력의극한을펼쳐보이고있다.
총29편의연작시로구성된이번시집『줄무늬비닐커튼』은의식이자아의경계를잃은후소리뿐인‘말’이되어태어난순간에서그대장정을시작한다.‘말’은물속에떨어진돌처럼신체내부로깊이침잠해들어간다.몸속은이름없는충동들이부딪쳐발생하는반동의힘과무수한자아가서로를발견하며만들어내는긴장감으로가득하다.시인은이충동들,언어와의미가부딪쳐빚어내는찰나의빛과힘을받아쓴다.순식간에사그라들어아무흔적도남기지않는이빛은언어의극한에가닿고자거듭한계를넘어온시인에의해비로소완전한삶과죽음의순환고리를형성하며거대하고도독립적인하나의신체이자세계로완성되었다.

■‘나’는나의반복일때만나다
기포들이떠오른다,물속에

그걸보고있는유리통밖의
내가아닌,
유영하는기포가나인,그리고또한
말이나인데,물속의공기방울
들리지않는……
-「물속의공기방울」에서

『줄무늬비닐커튼』은질주하는눈폭풍가운데“한송이흰것의멈춤”이라는고요하고도강렬한사건으로부터시작된다.이“흰것”은곧“문장”이되고,문장은몸안을통과한상처이자하나의틈이되어‘자아’를열고들어간다.이어지는다음시「물속의공기방울」에서자아는유리통을채운물속을떠오르는“기포”가되어있다.기포는수면에닿는순간터져죽으며소리즉“말”이되어다시태어난다.경계를잃은화자는‘나’를떠나‘()’가되어버린나의몸을탐험한다.이탐험에서신체는온갖충동들이기거하는장소로밝혀진다.암흑덩어리같은신체속에서타오르는충동들,그너머에서마주하는것은다름아닌무수히많은‘나’들이다.오래전죽은시인들과그들이살던시공간이“숱한나들”이되어지금이곳에소환된다.‘나’는‘나’이자‘나아닌’존재,무(無)이자모든것이된다.그렇게시인은자아가지워진‘나’가바라보는풍경,곧제죽음의풍경을두려움없이응시한다.자아라는지표를잃은의식의시공간에무한이밀려들어오는풍경을.


■최초의세계는거듭거듭생긴다
시쓰기는언어를궁지로몰아
쥐구멍에빠뜨리는일이다
언어없이사유할수있을까
시는이미지로사유하는것
이때언어는덫에걸리고
불구가된채
사라지지않고부스러기가되어
그물질성으로이미지의디테일을구성한다
이미지에불이켜지면
언어는그그림자의암흑속으로사라진다
사라져없어지지는않고,빛을빨아들인
검은반죽으로잠재한다
-「우뚝한돌그리고구멍」에서

채호기시인은글쓰기를“흰종이위에검은구멍을파는일”이라고말한다.해설을쓴김예령번역가는이문장을두고“흰종이위로언어의완강한질서를들이받아구멍을뚫으려”는시도이자그진동으로지면(紙面)이라는백색들판에솟는“우뚝한돌”을만나려는시도라고본다.즉시인에게시쓰기란언어가세계를재현한다는기존의관념과질서를전복하는동시에오직언어내부로부터의미를길어올리려는불가능한시도인것이다.채호기시인은2009년발표한산문에서시인에게언어는외부가아니라중요한신체일부로서포함되어있다고말하며,시를쓰기위해신체에서끄집어낸언어는곧그자체로존재하는언어,“돌의언어”라고명명한바있다.이번시집에이르러시인은“지면에돌과구멍이맞물릴때/최초의세계는거듭거듭생긴다.”(「지면」)고선언한다.하지만이세계는발생하는즉시사라진다.의식이포착하지못한찰나언어아래로빠져나가는의미들처럼,언어와의미의완벽한일치는일시적인마찰로한순간타오르는섬광과같다.그럼에도시인은빛다음에찾아온어둠을“빛을빨아들인/검은반죽으로잠재한다”고말하며빛의귀환을기다린다.도살장에서신체의도륙을온전히느끼며죽어가는‘나’가몸안의‘그’와한순간존재의자리를뒤바꾸며다시한번생을도모하는마지막시「끝을통과하는지금」처럼,“그의살에살아남아말하고쓰며,그의뼈에살아남아계속생각한다.”고말하며영원히반복될환생을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