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과 입을 맞추는 영혼 (김준현 시집 | 양장본 Hardcover)

자막과 입을 맞추는 영혼 (김준현 시집 | 양장본 Hardcover)

$12.08
Description
사소한 우연에 깃든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몸짓,
귀 기울이면 가뿐히 경계를 넘어오는
낯선 세계의 말들
김준현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자막과 입을 맞추는 영혼』이 민음의 시 302번으로 출간되었다. 철학적인 사유가 깃든 감각적인 시 세계가 돋보인 첫 시집 『흰 글씨로 쓰는 것』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신작 시집이다. 첫 시집에서 김준현 시인이 인간과 가장 멀리 떨어진 위치에 서서 역사와 언어, 종교와 사랑이라는 거대 관념들을 조망하고 사유하고자 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그 관점을 완전히 반전해 우리의 일상 한가운데로 들어선다. 지금 여기에 단단히 발붙이고 산책하는 시인이 밀려드는 풍경과 소리에 집중하며 기다리는 것은 온갖 사소한 우연들, 우연에 깃든 가장 작고 낯선 존재들이다.
시인은 모국어 대신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 허밍, 소음이 들리도록 소리를 키운다. 눈앞의 풍경을 그대로 보지 않고 중력, 온도, 운명, 유령의 모습이 보이도록 명도와 채도를 바꾼다. 시인이 자서에서 밝혔듯 “이것은 싱크로율을 맞추는 작업”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이도록 조율해, 인간이 기록해 온 역사의 빈틈 혹은 역사 바깥의 과거와 미래의 흔적과 징조를 감지하고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다. 자신의 전생을 보려 사슴 탈을 쓰고 춤추는 아이처럼 사랑스럽고 신비로운 방식으로, 시인은 인간의 역사와 문명 너머를 건너다본다. 세밀히 기록한 그 풍경을 이제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저자

김준현

2013년《서울신문》신춘문예(시),2015년《창비어린이》신인상(동시),2020년《현대시》신인추천작품상(문학평론)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흰글씨로쓰는것』,동시집『나는법』『토마토기준』,청소년시집『세상이연해질때까지비가왔으면좋겠어』가있다.

목차

1부태양을똑바로본다

흼13
커피와영혼14
매일화성을바라보기시작한너의구조적결함16
어디를보다가이제옴19
멍때리기22
장밋빛얼굴25
비동아리28
보디랭귀지30
보디랭귀지32
금속성음악33
핸들36
명왕성38
세로로길어서사람사는바닥에닿을것만같은시40
лето44


2부노래졌다는말이좋았다

제일처음배우는apple49
두구탄성52
9는무슨수를써도956
어디로자라기60
에그62
여기는계란의내부64
중요한곳에중요한것을놓기67
방언70
스탄친구들72
이토록멋진곤충76
필담:파란볼펜과연필79


3부0.28내영혼의가늘기

삼풍로85
BlackonGrey88
잘표현된불행90
단한글자가비었다고말했다-공空94
다윗의별이아닙니다96
경계심이흐려질때98
우리의소원은통일100
당신의세계였던신체에서103
호두까기106


4부계속새꽃을두는마음

기상청에대한믿음109
나에게주어진길을걸어가야겠다112
드라카리스115
유리밖에118
붕어빵고딕체120
아무도쉬라고하지않았다122
자막과입을맞추는영혼125
겨울128
자막과입을맞추는영혼130
자막과입을맞추는영혼133
목요일-눈빛은빈자리136
문138
사슴탈141

시작노트143

출판사 서평

■산책자와우연
시인은호기심많은산책자의무구한시선으로일상의풍경과마음을바라본다.시작노트의첫문장에밝힌“눈에자꾸밟히는것들이있다”는마음은“눈에밟히면어떤느낌일까?”라는엉뚱한질문으로이어져,“비스듬히일으켜세운펜,초가을의햇빛”같은일상의풍경을지나“슬픔/슬하의사랑/슬슬시를쓰고싶은”마음으로되돌아온다.되돌아온그곳에는“다시태어나는기분으로,태어났다는사실만으로축복받는기분으로/시작하는”마음이새로이돋아나있다.여기에서의‘시작’은독자로하여금‘어떤일의처음’을떠올리게도,‘시를짓는일’을떠올리게도한다.어느쪽으로받아들이든그것은독자의자유라는듯시인은부연하지않는다.시인이말놀이하듯자유롭게떠오르는언어와이미지를따라나서면,그산책길에불쑥불쑥끼어드는생각과말들이녹아들어시가된다.그래서김준현의시는소소하고즐거운발견들이이어지는가싶다가도,풍선에깃든귀신,포도한송이의전생처럼낯설고기이하며때로는곤혹스러운장면이등장해예측을뒤엎는다.
이렇게우연을향해문장의마침표를활짝열어두는시인의시쓰기는‘역사’를바라보는시인의관점과무관하지않다.시인은각각의조상을가졌을테지만여러세대를거치며모두뒤섞여,새로운이름과외모를갖게된금붕어들을바라보며이런질문을던진다.“아버지의피와어머니의피는할아버지의피와할머니의피로부터/종이달라진새끼를알아볼까?”(「보디랭귀지」)시인에게‘역사’는‘피’와같이위에서아래로과거에서현재로흐르며이어지지만,세대를거듭하며우연에의해뒤섞이고분열하며필연적으로과거와달라지고분리되는것이다.우연의개입은미래를예측불가능하게만들뿐만아니라예측자체를불필요하게만든다.김준현시인은섣불리미래에대해말하는대신지금여기의우연들을구석구석돌아보자고우리에게제안한다.지금우리는무엇과함께뒤섞이고분리되며,무엇이되어가고있는지를들여다보고이야기해보자고.

■보디랭귀지
김준현의시에는말과글이아닌‘몸짓의언어’들이곳곳에주요하게자리하고있다.줄지어걷는난민의모습,공중전화를붙든외국인의입모양과표정,죽은금붕어를어항에서건져내라는손짓과발짓,머리카락을숨긴무슬림의터번등곤경에빠진자의몸짓이나믿음을드러내는외모는감출수없는방식으로드러난다.시인은그마음과정체성에시선을오래둔다.드러나는방식만으로말을건네는‘표면’은김준현시인에게다른세계로향하는열쇠가된다.하지만시인이우리에게보여주는‘다른세계’는번역없이쉽게오갈수없는외국어로가득하다.이국에서“이나라의공기는내가입을다문채한국어로하는생각속에서적나라”(「에그」)하지만,그생각을모국어로입밖에내는순간의미없는소음이되어흘러가버린다.이곳에온외국인의말또한처지가다르지않다.소음이되어흘러갈뿐이해될수없는그말들은‘표면’과다르지않다.시인은소통의실패가예고된바로이표면위에서다만‘입을맞추길’선택한다.
모르는말들을보이는대로받아들이고,들리는대로따라읊조려본다.‘바다’를뜻하는러시아어‘море’가그발음의유사성때문에‘모래’와‘모레’를떠올리게해도,‘나’는오독과오해의늪에빠지지않으려“나를잃을때까지발음”(「문」)한다.경상도지역의동네놀이터에서아이들을돌보는무슬림여인들의어색한한국어억양은러시아어를연습하는‘나’의그것과다르지않다.그것은모르는말을무작정따라하며낯선세계를받아들인흔적이다.그앞에서시인은짙고강한선으로그어놓은듯한그들의얼굴,그들의국적을드러내는표면을찬찬히들여다본다.‘나’와그들의내면에들어서버린낯선세계들,이제는한몸이되어버린낯선정체성의조각을가만히매만진다.뾰족하고부드러운조각의면면을세밀하고선명히감각한다.

■시작노트
눈에자꾸밟히는것들이있다:눈에밟히면어떤느낌일까?

비스듬히일으켜세운펜,초가을의햇빛,흰머리오목눈이의무게를가늠해보는손,사랑하는이의양치질소리,6층에서내려다보는목련나무,봄비와비닐우산의결혼식,동향의창에서홀로빛나는별,눌변의이탈리아어와뒤처진자막,하이픈,어린이들의목소리,아침이슬
슬픔
슬하의사랑
슬슬시를쓰고싶은마음이쓸쓸해져서
미역국을먹는다.
미역국은한사람이태어났음을축하하는나라다.
다시태어나는기분으로,태어났다는사실만으로축복받는기분으로
시작하고맺고다시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