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오늘도 커다랗게 입을 찢으며 웃고 있습니까 (신성희 시집 | 양장본 Hardcover)

당신은 오늘도 커다랗게 입을 찢으며 웃고 있습니까 (신성희 시집 | 양장본 Hardcover)

$12.22
Description
마침내 몸을 열어 비밀을 흘려보내는 상처,
텅 빈 몸으로 염원하는 재생의 시간


그로테스크의 귀환과 진화를 알리는
신성희의 첫 시집
2016년 《현대시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신성희 시인의 첫 시집 『당신은 오늘도 커다랗게 입을 찢으며 웃고 있습니까』가 민음의 시 303번으로 출간되었다. “날카롭게 돌출되는 흉기를 먼저 보여 주는 방식으로 말을 시작하는 시”라고 쓴 김언 시인의 작품 해설처럼, 신성희 시인은 일상의 리듬을 변주하는 대신 일상의 균형을 깨부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존의 의미와 질서가 무너지며 뚫린 구멍에는 모든 감정이 뒤섞여 들어와 만들어진 혼돈의 색, ‘검정’으로 가득하다. 시인은 그 검정의 구덩이로 들어가, 끔찍하고 기이하게 일그러진 이미지, 피와 불의 붉은색을 조약돌처럼 떨구며 더 깊은 어둠, 그림자조차 없는 시원적 어둠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 길에서 시인이 보여 주는 것은 우리가 오랜 시간 동안 암묵하고 수용해 버린 감정들, 서서히 익숙해지는 방식으로 잃어버린 감정의 원형이다. 슬픔인 줄 몰랐던 슬픔, 공포인 줄 몰랐던 공포. 광기로만 여겨진 그 감정들이 회복되어 우리 앞에 다시 펼쳐진다.
저자

신성희

2016년《현대시학》신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1부검은뿔산
불타는집13
검은뿔산14
밤은속삭인다16
구덩이18
12:0020
야광귀22
빨간구름24
부엉이26
말복28
유모차30
거미의방32
바이칼의무녀33
고양이거리의랩소디34
양배추35
톱36
회색차일구름38
순록39
자두나무40
이월에는이가아팠다42
굴착기와포클레인43

2부RichmondPark
버찌를밟는철49
산딸기의계절이에요50
RichmondPark52
흰개를따라56
입말의시간58
양60
조도62
아름다운불이64
여름휴가66
해변의기분68
눈내리는밤에70
긴겨울동안우리는함께있었지71
눈사람이유리창으로우리를들여다본다74
지혜76
지혜78
지혜79
심장80
페이스북81

3부그럴수있지
당신의자세85
여행88
그럴수있지90
오늘저녁,성수동에서94
검은코트가의자에걸려있다97
여름의뒷모습100
흑미사102
이니스프리103
만두와만두106
수학시간110
오스티나토113
양말과앵무새116
안드로메다120
갔다122
산책의가능성124
Portra400128

작품해설-김언(시인)131

출판사 서평

■검정의감정
신성희시인에게감정은색,이미지,물질일뿐만아니라몸이다.솟아있는비석을보며느끼는통증은“파릇파릇”하고,불타는방안에있는너는“빨갛다”.감출수없는마음은“벗어놓았던내피부”이자“뿔”이다.그중에서도신성희시인의시에서가장강력하고지배적인색이자감정으로나타나는것은바로‘검정’이다.신성희시인에게‘검정’은사건이은폐되는어둠일뿐만아니라,하나의감정이다른감정으로변화하고변모하며또다른방향으로나아가고뒤섞이는사건현장그자체다.
말할수없는모든기억과감정들이뒤섞여만들어진‘검정’이악몽처럼끝없이덮쳐오는가운데,시인은자신의목소리를비명처럼내지른다.어둠을찢고뛰쳐나오는개,타오르는불,누군가의주먹을맞고튀어나오는코피처럼붉고뜨거운시인의목소리는이제막벌어진상처처럼생생하다.시인은상처를치욕으로여기지않는다.그자체로이미‘몸’이라는듯우리앞에내민다.신성희시인의시는이제하나의몸이되어살아숨쉬는상처가내뿜는빛과열기,냄새로우리가오래도록침묵한기억,억눌러두었던감정을다시불러일으킨다.

■비밀이되는사건
『당신은오늘도커다랗게입을찢으며웃고있습니까』의여성인물들은‘초자연적’이거나‘무고한피해자’의모습으로등장한다.오랜세월우리가‘여성’을이야기와사건의변방으로밀어내며입혔던바로그역할이다.시집전반부에등장한여성인물들이어두운밤발로피를끌며지나가고,불타는얼굴로명령을내리면서사건을촉발하는마녀나요괴처럼초자연적인존재라면,후반부의여성들은이유모를테러를당하거나,흔적도없이사라지는피해자처럼보인다.여성을도구로삼아온수많은이야기에서의화자라면이여성들을대신해자신의목소리를들려주었겠지만,신성희시인의화자는굳건히침묵을지킨다.이침묵으로서신성희시인은제안한다.당사자와목격자모두의침묵으로텅비어버린공간,이‘공백’을한번들여다보자고.마녀이거나피해자처럼보이는‘인물’의정체나무섭고흥미로운‘사건’의숨겨진진실보다,더끔찍한비밀이바로여기에모여들것이라고.그곳에흘러드는것은다름아닌우리의불길한상상과암시,그에따라이끌려온슬픔과공포의감정이다.시인은이것을함께들여다보자고손짓한다.여기에비친우리는어떤얼굴이냐고.

신성희시인은삶과죽음,욕망과사랑등관념적가치의허무를드러내던그로테스크의냉혹한시선을‘자아’로돌린다.그시선을통해본‘자아’는깊은밤피에젖은발을끌고가는‘저여자’가피해자인지가해자인지알수없다는데서오는두려움을넘어,사실은‘저여자’가‘나’일지도모른다는자아분열의불안과공포가팽배한가운데감각된다.보거나겪고도진실을말할수없는자의혼란스러운기억,뒤섞여요동치는감정,스스로를벌할지위로할지결정할수없는유보상태에놓인‘자아’의모습은불안에젖어살아가는우리의내면과다르지않다.그러나놀랍게도,분열하고표류하는‘자아’를있는그대로직시하도록이끄는신성희시인의시에서우리는위로이상의치유를발견한다.서둘러봉합하는대신상처를벌려속내를들여다보는방식의치유.새로운피가차오르도록상처에고인죽은피를남김없이흘려보내는의식.신성희시인의시를통해이의식을통과하고나면,우리는보다명료하고홀가분해진마음으로재생의시간을기다릴수있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