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체인 - 민음의 시 307 (양장)

빛의 체인 - 민음의 시 307 (양장)

$12.00
저자

전수오

2018년《문학사상》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1부
환기구13
감광(感光)15
조향사16
채집18
문희의무늬21
안녕,로렌24
열매의모국26
오렌지저장소28
구연동화29
중개사32
얼음아기34
언덕에불시착한비행접시는36
유리구37
온실40
발성연습42
모든개들은천국에간다44
빛의체인46

2부
첫세계51
모모섬52
작물게임54
파도를위한푸가56
검은원57
문신58
원예게임60
케이크한조각이멀리63
상자지키기64
멸종의밤66
계획적무지개68
하얀사원70
생존게임72
금74
오작동프로그램76
리플레이78
트로피79
기계숲안내자82
부드러운습지로84
자화상86

3부
때아닌우기89
흑점90
애니메이션극장92
판화94
새떼가날아간다96
초대97
행간의유령100
아카시아섬102
말몸물몽104
육면체의완성105
초능력108
수평저울110
검은칼집이되어111
하얀성탄116
흰발고양이117
생존게임―봄낳이와자수118
빛의자매들120
145초의어둠122

작품해설소유정(문학평론가)125

출판사 서평

■뒤란의존재들

나는햇빛을보면사라진다
지하의하얀방에는창이없어서영원히살수있다
―「감광(感光)」

『빛의체인』은첫시「환기구」의작은틈새로새어들어온빛으로부터시작된다.이빛은너무도미약해서,어둠을물리치는대신어둠이‘어떤어둠’인지를더잘보여준다.빛은상자속,창이없는방,야생의밤,깊은산속,열매의내면,굳게다문입안을희미하게비추며어둠이저마다내밀한이야기를품은각각의장소라는사실을우리에게보여주고,그곳에서살아가는존재들을마주하게한다.그들은숨어움직이는동물,음지식물,유령,꿈,비밀,과거의기억처럼환한빛에의해선명해지기보다사라지는존재들이다.소유정문학평론가의표현처럼이들은인간이무분별한문명이라는환한빛을좇아세계를폐허로만드는동안가장먼저뭉개고잊은존재들로,전수오의시는이들이모여살아가는“세계의뒤란”이된다.

암실에서만자신이품은빛을드러내보일수있는아날로그필름처럼,이들은전수오의시를통해자신이품었던찰나의삶과이야기를조금씩꺼내보인다.잊힌존재들이주인공이되는“이곳의입구를통과하면이름이지워”(「얼음아기」)지고,우리는이름없이평등한존재가된다.미약한빚아래에서높낮이없이겹쳐지는그림자가된“우리는평평한슬픔을공유”(「열매의모국」)한다.이들의삶은이제하나의삶으로끝나지않고,시와시를건너며새로운몸과껍질을통과해무수한삶으로변전하며“외롭고신비한환생극장”(신해욱시인)을펼쳐보인다.

■작은폐허

나를중심에두고5킬로미터반경으로세계가생성된다
이번생에내가고른캐릭터는앵무새다
―「트로피」

전수오의시에서환생이빛의움직임을좇아촘촘하고밀도높게구현된시적환상이라면,게임과같은가상세계에서환생은환상보다‘리셋’버튼하나로간단히실행되는기본설정에가깝다.『빛의체인』1부가빛의움직임을좇아죽음과환생을그렸다면,2부에서는제목에서부터직접적으로게임을지칭하는「작물게임」,「원예게임」,「생존게임」을비롯한여러시를통해가상세계에본격적으로진입한다.전수오의시에서화자는게임의‘주인공’이아닐뿐더러선악으로나뉜게임속이분법구도와도무관한제삼자처럼보인다.「작물게임」에서‘나’는농부나사과가아닌침묵하는사람이며,「원예게임」의‘나’는설계자나식물이아닌꿈을꾸는사람이고,「생존게임」에서‘나’는주인공에의해사냥당하는여러‘몹’들중하나이다.

전수오시인은그들을통해무수히리셋되는세계를끈질기게응시하며,그세계를운영하는원칙을꿰뚫어본다.주인공을비롯한모든캐릭터는무수히되살아날수있지만,생존을위해서누군가를반드시죽여야만한다는‘원칙’과승리혹은패배로정해진‘결말’을바꾸진못한다.전수오시인은“왜이세계의가능성은늘피투성이입니까?”(「원예게임」)라고직접적으로발화하는식물을통해,게임을지배하는원칙과결말이현실과무관한지우리에게묻는다.이질문은『빛의체인』끝까지떠나지않고이어지며,우리에게더는회피하지말것을요구한다.우리가이미알고있는답으로부터,폐허를향하고있는미래에대한예감으로부터.

추천사

전수오는우리를외롭고신비한환생극장으로안내한다.이극장은일인용이다.한사람만이들어갈수있는작고검은방.환등기가돌아가면그의시─판타스마고리아앞에서우리는변전하는삶을마주한다.향기였다가파도였다가진주조개였다가어느이야기에도등장하지않은아이들이었다가광합성을하는생명체였다가…….전수오가보여주는환생의장면을관람하는사이우리는어느덧“빛의체인”을이루는하나의고리가된다.“밝은것들의덫”에걸린짐승이된다.“내몸아닌것들이간지”럽고내게속하지않은것들이사무치게된다.한사람만이들어갈수있는작고검은방.전수오의극장에서우리는벽으로인해열린다.벽이있어빛은읽힌다.벽이있어다른삶은비친다.벽이있어우리는막막한그리움에사로잡히고우리가“빛을앓는”존재라는것을상기한다.“서로의벽이되”어서로에게닿는기적을,이시집을통해만난다.
-신해욱(시인)

시인은빛을향해걸어간다.눈앞의빛은등지는대신,또다른빛을향해.컴컴한어둠밖에보이지않는등뒤,“검은점”으로밖에는보이지않는곳이라할수도있겠지만,“그곳으로언뜻/과자부스러기같은빛이”(「유리구」)든다고느꼈다면그것만으로도시인에게는뒤란을살필이유가충분하기에.그작은빛을확인하기위해서는우리역시뒤를돌아봐야만한다.
-소유정(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