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의 심장 - 민음의 시 312 (양장)

조금 전의 심장 - 민음의 시 312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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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홍일표

1992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등단하여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매혹의지도』『밀서』『나는노래를가지러왔다』『중세를적다』,청소년시집『우리는어딨지?』,평설집『홀림의풍경들』,산문집『사물어사전』등이있다.

목차

1부

서쪽13
설국15
검은강16
증언18
파편들20
일식22
외전(外傳)24
검은개26
미지칭28
겹겹30
여행32
발신34
배경36
무지개를읽는오후38

2부

동백43
수혈45
멍46
슬그머니48
패러디50
땅끝52
낮달54
눈사람유령56
육탈?보길도암각시문58
예언자60
마네킹62
우리너무확실해졌어64
불면66
화석68

3부

독주73
공회전75
도서관76
외경(外經)78
극장80
유리부족82
데스마스크84
춤86
재구성하는너88
녹턴90
고물상92
기일94
풍선너머96
웃음의기원98
질주100

4부

문자들105
동사(動詞)106
실종108
지상의극장110
저녁이오나봐112
서쪽의이력114
색116
뿔118
만두꽃120
모과스님122
무명씨124
모르는사람126
심우장을지나다128
등대130

작품해설-오연경(문학평론가)133

출판사 서평

잘보여서더컴컴해진쪽을향해

천사와악마의이름이태어났다
세계는뚜렷해졌으나한쪽눈만가진괴물도여럿나타났다
잘보여서더컴컴해진날들이이어졌다
―「검은개」

홍일표시인의시에는언어바깥의세계에서발견한작고미묘한반짝임과기척으로가득하다.『조금전의심장』에서이반짝임과기척은“빛속에서지워지는밀어”(「설국」),“기록되지못하고공중에서흩어지는날벌레”(「파편들」),“손끝에잡혔다사라지는그림자”(「패러디」),“언어밖으로사라진표정”(「여행」)처럼알아채는순간사라져버리는존재들의흔적으로나타난다.이들은인간이우주만물에이름과의미를부여하며세계가점점뚜렷해져간다고믿는동안여전히컴컴한곳에남아있는존재들,미지에속한‘무명의존재’들이다.시인은환히밝혀진언어의세계로이들을끌어내지않는다.오히려그들이속한“잘보여서더컴컴해진”쪽으로몸을돌려나아가며,그들과같은무명의존재가된다.기꺼이자기자신을지우고‘아무것도모르는채’로그세계에녹아든다.깊은어둠속,무명의존재들이제빛을드러내며말을걸어오는곳에도착한시인은이들이각각온전히“혼자남아백야처럼환해지는”(「낮달」)풍경을마침내마주한다.

눈사람의언어로

소리를만진다
몸으로만지는소리에는거친거스러미가있다
울퉁불퉁한흉터도있다
―「발신」

이제시인은보는것을멈추고소리에집중한다.도착한곳마다안개,구름,강물,비,바람,파도같은형상들이수시로나타나시야를가로막는『조금전의심장』에서화자는시각을제외한모든감각에집중해세계가말을걸어오는방식그대로감각하려애쓴다.오연경문학평론가의작품해설에서처럼“온몸의감각기관을재배치하여세계의감각기관과조응”하는방식이다.그로부터새로운감각이탄생한다.소리는만져진다.소리의“거친거스러미”가느껴지고“흉터”가보인다.인간에게‘말이되지못한말들’,흔한소음일뿐이었던무명의존재들이내는소리는홍일표시인의시를통해다른감각이되어다가온다.그렇게우리는세계의신비를몸으로감각하며그려볼수있게된다.“안개를읽다가죽은이의손을”(「겹겹」)잡기도하고,이름도기호도없이“숨은얼굴”을마주하거나“무한으로출렁이는노래”(「미지칭」)를듣는다.『조금전의심장』으로세계를감각하는일은끊임없이생성되고사라지는세계의박동과다르지않은내몸의심장박동을새로이감각하는것과같다.우주만물과함께고동치는‘나’의몸을느끼는일,그“무정형의리듬”에가만히귀기울이는일이다.

책속에서

눈을감아봐
빗소리를데리고비가오잖아
비가그치면
빗소리는어디가나

눈을떠도
여기는칼바위오르는길
조금전의심장
조금전의빗소리와함께
---「외전(外傳)」중에서

바람불고꿈이희미해진다
안개가벗겨지면서보이는
발밑의모래알들
이목구비가지워진뼈의마지막결심들

꿈속에서꿈을꾸는
이뻔한장난
너무가까워서서로가서로를보지못하고멀어진다
---「겹겹」중에서

너는없다
너는느닷없이태어나고느닷없이사라진다없는것으로존재하는
너는늘수상하다

사람들은한순간너를알아챈다
한마리새가겁없이날아와죽는것을보고
유리는빠져죽기좋은호수라고말한다
돌처럼딱딱한허공이라고말한다
---「유리부족」중에서

나는나를조문할방법이없다
몸이없는데
검은상복을입은그림자가상주처럼바닥에엎드려있다
---「저녁이오나봐」중에서

멀리떨어진풀숲에서너를발견한것은
눈밝은태양이었지
커다란눈으로너를찾던불붙은심장이었지

오도카니앉아있는작은암자한채였어
연줄을끊고외진곳으로날아간반달연이었어
---「모과스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