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냉동위험취급주의
이서하가‘위험하다’고지목하거나분류하는것들은물과가까운성질을띠는것처럼보인다.시집의도처에는시인이감각하는위험들이불쑥불쑥튀어나오는데,그것은삽시간에불어나는물,갑자기쏟아져내리는비,그리하여예기치못하게물에빠지고젖게되는우리의몸과옷과집이다.난데없이물을뒤집어쓰게된시인은비명을지르거나발을구르는대신이상태를어떻게규정하고수집할지고민한다.위험의종과수,생태와번식을관찰하고연구하기위해그표본을수집하는위험학자가된듯,우리를적시는위험을담아보려애쓴다.위험을담기위한시인의도구는이상하고고유하다.“엉성하게엮인매듭”(「가장위험한심심하지않은」)으로이루어진주머니와“옛것에각별한”“삽”(「가장위험한제자리는어디에」),“어중간”한“실내화가방”(「가장위험한한때」)과“무엇이든올려놓을수있는”“숟가락”(「가장위험한뜬구름」).이것은시인의무기이자장기,흐르고쏟아지는위험을구체적인모양으로단단하게얼리는시의언어다.이서하가급속냉동한위험은이제우리의손안으로들어온다.그것을쥘수있고집어들어주머니에담을수있다.오래들여다볼수있다.뜬구름잡듯슬퍼하지않고건조하고딱딱한채로슬퍼할수있다,이서하는자신의소중한위험채집통을우리앞으로밀어준다.우리역시위험을연구해야할필요가있음을미리아는듯이.
■덧쓰기,이어쓰기,새로쓰기
시인이그렇듯,우리가가장자주맞는위험-물벼락은‘상실’일것이다.가장자주헛디뎌빠지는슬픔-웅덩이에도역시살아가며잃을수밖에없는갑작스러운이별과상실들이찰랑이고있다.위험이내릴까하늘을두리번거리며,슬픔에빠질까땅을샅샅이보며걷는이느린걸음의나날에,‘조금진전있음’을알려주는유의미한깨달음은“고독을면할길이없다”(「가장위험한녹았다언아이스크림」)는사실이다.상실은보이는것보다깊은구덩이다.얕은웅덩이인줄알고금세젖은발을털수있을것같지만실은구덩이가아닌구멍이어서영영빠져나오지못할지도모른다.상실이라는구멍을메우고,바닥을만들기위해시인은책을빌린다.책의문장,책의두께,책의시간과파편을쌓아상실한자리의디딜곳을마련한다.그러다가남이쓴책이여의치않으면스스로책을만들어낸다.『파란하늘』과『검은색하늘』(「가장위험한전집」,78쪽)이그것이다.상실의구덩이에서올려다볼수있는상상의하늘을쓰기.우리가잃어버린것이우리에게새로운것을주기도한다는사실을시인은알고있다.독서와인용은구덩이로부터올라오게하는사다리가되고,전체의구멍을메우는퍼즐의마지막조각이되고,상실한현실을덧쓰는새로운현실이된다.시인은말한다.“이상실에대한경험으로그에게새로운구석하나를만들수있는구실이되었다는것은얼마나기괴한가.”(가장위험한감상문,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