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의 지옥 - 민음의 시 325 (양장)

백합의 지옥 - 민음의 시 325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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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천국도 연옥도 없는 이 시대의 신곡(神曲)
영원히 불투명한 이물(異物)들의 지옥
최재원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백합의 지옥』이 민음의 시 325번으로 출간되었다. 최재원 시인은 첫 시집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로 2021년 제40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의 도발적인 제목이 한눈에 보여 주듯, 최재원의 등장은 파격 그 자체였다. 끊임없이 변형되고 뒤틀리며 낯설어지는 형식, 방대한 이론과 형이상학을 넘나드는 언어, 성역도 금기도 없는 속된 말들이 한데 모여 우글거리고 충돌하며 만드는 에너지는 최재원의 시가 가진 독보적인 개성이다.
“일상과 세속에 직접 육박해 들어가는 과감함”(이수명 시인)이라는 평이 보여 주듯, 최재원 시인이 형식과 언어를 뒤틀고 충돌시키며 돌진해 들어가는 곳은 다름 아닌 우리의 진짜 삶이다. ‘시적인 것’보다 시가 되지 못한 ‘잔여’로 가득 찬 시간, 어쩌면 기억도 못 할 순간들이다. 최재원은 그 ‘잔여’들로 시를 쓴다. 첫 시집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을 통해 ‘잔여’의 언어로 삶의 생기와 욕망을 다채롭게 보여 주며 ‘시적인 것’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 데 이어, 『백합의 지옥』에서는 ‘가치 있는 것’과 ‘잔여’가 분리되기 전 삶을 통째로 올려 낱낱이 들여다볼 거대하고 독창적인 무대를 설계해 보인다.
『백합의 지옥』의 무대는 사후세계에 지어진다. 최재원의 사후세계에는 가치의 위계를 정할 신이 없으므로 신의 집인 천국도, 신을 기다릴 장소인 연옥도 없다. 오직 무가치하고 성스럽지 못한 이들을 위한 지옥만이 남아 있다. 대부분의 순간이 시적이지도, 가치 있지도, 성스럽지도 못하다면, 삶은 잔여물, 이물들의 집합일 것이다. 최재원은 가치와 의미가 그토록 희소하다면 ‘삶’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일 수 있는지 이 지옥을 통해 우리에게 되묻는다. 각자의 삶에 관해 각자의 의미조차 찾을 수 없다면 삶에 관한 한 우리는 영원한 이방인일 것이다. 최재원 시인은 이 지옥 입구에서 우리의 운명을 이렇게 선언한다. “영원히 불투명한 이방”을 “그대여 담담히 맞이하시오”라고.
저자

최재원

저자:최재원
거제도,창원,횡성,뉴욕그리고서울에서자랐다.프린스턴대학교에서물리학과시각예술을,럿거스대학교메이슨그로스예술학교에서그림을공부했다.2018년Hyperallergic을통해미술비평활동을시작했다.한영·영한번역과감수를하고있다.시집『나랑하고시픈게뭐에여?』로제40회김수영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목련나무아래에서

1장15
2장16
3장17
4장19
5장20
6장22
7장25
8장27
9장30
10장31
11장33

geodesics

geodesics37

별늪

부끄럼쟁이상어위스퍼51
제멋대로올챙이오페라52
배고픈물뱀나르샤54
위스퍼오페라나르샤56
바다의바닥57
심심한넙치누가바58
위스퍼오페라나르샤누가바60
마그마라는이름의마그마61
위스퍼오페라나르샤누가바마그마62
별늪63

소년의가죽

너는목련67
영원의다른이름은없나요68
업스테이트69
너를그리는데이름은필요없으니78
림샷79
머리카락84
나오늘생일이야87
그대의손끝이물레를돌린다93
기브앤테이크94
우리는뭐냐고100
초상104
식탁위에쪽지가놓여있었다몇장이가지런히106
네가어디있든상관없어너를찾고말테니114

세상의죄를사하러온백숙

아구117
세상의죄를사하러온백숙119
산화121
머리가슴배125
차오름127
상형문자128
바다는자물쇠가없어133
비엔나소시지135
무덤151
날파리의노래152
사는게넘행복해아153

목련은죽음의꽃

목련은죽음의꽃156

푸가

손의행방319
실종사건321
단무지324
X325
나무342
누구도보지못한차는주차를했다고할수있는가?343
ㅁ345
푸가350

태양의탄생

쏠미미이파레레에357
낙산공원363
시368
형369
한량374
시375
오버나이트376
굴레377
아이아이379
깰세라381
태양의탄생1382
태양의탄생2383
태양의탄생3384
태양의탄생4386
태양의탄생5388
태양의탄생6389
태양의탄생7390
아이대아이391
이방인397
아이대아이400
이름없는바람의여행403
당신이아직있었다면405

시는언제나뜬눈일것

내마음을손에든너에게409
새벽의다른이름은없나요410
잘들어봐419

추천의글―김혜순(시인)421

출판사 서평

실존하는허상들의지옥
[가시]살아남기란쉬운일이아닙니다실존하는허상의가시라면더더욱
-「10장」에서

『백합의지옥』에단한번도등장하지않는‘백합’처럼,이시집이펼쳐보여주는지옥에는‘허상’들이가득하다.최재원시인이시를통해보여주는‘허상’은우리가의심없이받아들이고믿는개념들이다.기하학의‘삼각형’이나‘점’처럼건물을세우고우주여행을만드는기술에쓰이지만실제로는‘근사치’일뿐인허구의개념들,그러나실존하는사물들보다더욱진실로믿어지고통용되는것들이다.『백합의지옥』을여는첫번째이야기‘목련나무아래에서’의‘가시’는이런세계에서자신의존재는“실존하는허상”이라고말한다.자신이가진“실제의뾰족함”에위기감을느끼고,누군가를찌르고죽일수있는자기능력에절망한다.‘가시’의고백으로부터지옥의입구가열린다.그지옥은시작과끝이없는“무형의행렬”,“허수의계단”을오르는길과미로,“추상”을통해자유로워지는장소다.『백합의지옥』은바로이곳에서우리가우리자신이라믿은‘실체’를잃어보기를권한다.뾰족함과단단함을잃은‘가시’처럼자유로운‘추상’이된우리자신을다시바라보기를.

TV쇼처럼펼쳐지는지옥도
깜깜한바닥에닿았다

바닥이꿈틀거렸다
-「바다의바닥」에서

『백합의지옥』은80여편,432쪽분량의방대한시를9개의부로나눠구성되었다.각각의부를서로다른인물과이야기로명확히구분해채워놓은시인의의도에따라『백합의지옥』속이야기들은마치쉴틈없이주의를잡아끄는TV쇼처럼다채롭게펼쳐진다.블랙홀살해사건을추적하는‘목련나무아래에서’,아름다운이의얼굴에밀착해미세한색깔들을하나하나탐닉하는‘geodesics’,애니메이션처럼바닷속동물들이함께모험을떠나는‘별늪’을지나‘소년의가죽’,‘세상의죄를사하는백숙’을열면우리의일상과마음이낱낱이펼쳐진다.이일상끝에‘목련은죽음의꽃’이펼쳐진다.160쪽이라는압도적인분량으로다섯목소리가동시에울려퍼지는이단한편의시는그자체로‘죽음’같다.그러나『백합의지옥』은‘죽음’이후로도우리일상으로다시돌아간다.이미죽어도착한지옥에서는죽음으로이야기를끝낼수없으므로.이제이야기는어디로흘러갈까?죽음이후에도상실은두렵고,몸은수치스럽고,타인에대한적의가멈추지않는다면.최재원은죽음을넘어이지옥의끝까지우리를데리고간다.

오직우리여럿
여기는아무도없잖아오직우리여럿
-「geodesics」

경계의지워짐,표면과내면의뒤섞임혹은뒤바꿈은최재원의시가가장능수능란하게보여주는변신이자역동이다.첫시집『나랑하고시픈게뭐에여?』에서는신체의가장바깥인피부의감각,입밖으로내뱉는말을통해‘경계’에대한독특한사유를보여주었다면,이번시집에서는한사람의내면에깃든여러마음의겹들을포착한다.하나의마음을겹겹이싸고있는겹과경계,그사이사이에빼곡히들어찬‘이물’과‘타자’를들여다본다.「목련은죽음의꽃」은한사람의내면에있는‘광장’혹은‘극장’같은공공의장소를펼쳐보여주는독특한시다.장례식장에서죽음을생각하다가죽음처럼외로운자신의삶을생각하는‘불법자라’의독백을시작으로,네개의목소리가따라등장한다.장례식장에틈입한‘목련의향기’처럼급작스럽게.다섯목소리는각자의말을한다.혼잣말하는듯하다가도서로의말을이어부르는노래처럼따라하고,일시에침묵하다가도합창하듯소리를내지른다.최재원시인은이목소리들로죽음만큼고독한이의내면의풍경을바꾼다.이제그곳은단한사람의위축되고어둡고텅빈장소가아니다.한사람에게깃든다른누군가,그누군가로부터내면에서새로태어난또다른누군가가서로의말을주고받고공명하고울려퍼지며차오르는동시에점점커지는목소리들의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