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엉차는 우는 사람에게 좋다 (양장본 Hardcover)

우엉차는 우는 사람에게 좋다 (양장본 Hardcover)

$13.28
Description
신 없는 세상의 순례자가 되어
희미한 시대에 바치는 기도문
2022년 《현대시》 신인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다래의 첫 번째 시집 『우엉차는 우는 사람에게 좋다』가 민음의 시 335번으로 출간되었다. “막연히 관조하지도, 무례하게 자기 시선을 강요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이 관찰하는 대상을 성찰하게끔 하는”, “자기만의 호흡”을 지녔다는 데뷔 당시 심사평은 이미 고유한 세계를 구축한 젊은 시인을 향한 기대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박다래의 시는 사라짐의 주위를 맴돈다. 시적 화자들은 끊임없이 이동하지만, 도달하려는 목적지는 없다. 그들에게는 오직 이동한다는 행위만이 남아 있다. 무언가를 태우며 사방으로 퍼지는 연기처럼. 도시인의 여유로운 산책도 아니고 근대인의 낭만적인 방랑도 아닌, 불에 타 훼손되는 의미의 흔적을 좇는 성실한 이동. 이것은 사라진 신을 위한 순례와도 같다. 불타는 세계를 감지하며 그곳에 머무는 일. 구원 없는 세상의 잔잔한 몰락에 함께하는 일. 이는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진보나 초월과는 무관하다. 『우엉차는 우는 사람에게 좋다』가 갖는 미덕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신이라는 거대한 원천이 자리를 비운 시대를 살고 있다. 원인에서 결과로, 믿음에서 구원으로 나아가는 명확한 가치 체계의 확립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에, 박다래의 시집은 독자들에게 낯선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것은 “우엉차는 우는 사람에게 좋다”는, 우연히 맞아떨어진 말장난으로부터 전에 없던 의미의 길을 만들어 내며 시작된다.
저자

박다래

저자:박다래
1991년서울에서태어났다.2022년《현대시》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1부
기름부으심을받은자13
콘셉시온18
우리셋은다같아19
두고온것22
레지나와함께하는밤산책25
어느낮처럼선명하게보일것이라고28
메모리얼서비스30
절두산34
오늘의운세36
우엉차는우는사람에게좋다38
열린문40
가까운곳에사찰이있어모기가적은편은아니었지만43

2부
로스안데스49
엘리는나의오랜선생님52
그것과무관했다55
민호에게집은현대미술이다58
그러다가영원히못쓰게된다고60
계귀국62
콕콕64
아이들은내가지나갈때만캐치볼을한다69
존스몰츠70
야외수업74
마른눈76
광교78

3부
부암(付岩)83
자연사박물관84
소곤소곤별86
친구에게빨간운동화를선물했다88
말리부오렌지색91
지선은소파를밖에내놓는다94
숲과초원은아파트가건설된후에만들어졌다97
보호구역100
푸른살구101
얼어있는숲104
한밤의음독106
자하(紫霞)108
암전111
수경재배114
바깥의당신은그것을모른다116
서치라이트118

4부
남자의이름은정수123
구파발126
높은성128
이사130
노들131
마중말134
지혜씨의무화과136
Babushka138
패치워크141
윈드밀142
양고기스프144
디펜스146
좋은사촌147
야앵150

해설-남진우(시인·문학평론가)
불타는예배당에서흰토끼구하기153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단지오래됐다는이유로가치가증명될수있다면
나는고려시대의이름을가졌지

오래된운석으로조각한좌상
닳고닳은
석가여래옆에서

흐르는천에소원을던졌다
소원은익숙한방식으로이루어지지는않아
향을피우는시간
-「가까운곳에사찰이있어모기가적은편은아니었지만」에서


나는집을나와절벽쪽으로걸어간다.

몸이물로흠뻑젖는다

등뒤에서엘리의펜촉소리가들린다.

재묻은손가락을펴며
절벽아래를바라보며
나는
-「엘리는나의오랜선생님」에서


지선의언어가아니었던것이
시멘트안에서빛난다

아직은살아있으니까
지선은자국을남긴다

시멘트담사이에는조각난
물이갇혀있다
흐르는

무엇도네탓은아니야,
끝도없는여름

갇혀서
흐르는물소리를들으며
가라앉은곳으로가까이가지못하길

병뚜껑자국이이틀째손바닥에남아있다
지선은흐르는곳에서두고온것들을찾는다
-「지선은소파를밖에내놓는다」에서


발자국이있다고해서그것이공룡이살았다는흔적은아닐지도몰라
그냥잠시머무른것일지도우리처럼

너는잿빛수건으로모래를털며말했다
마루위에서걱서걱쌓이는조각들
방안에목이긴그림자가드리워진다

해변에아직도수많은비치타올이깔려있다
나는젖은흔적들을바라보다가

달려온길과돌아갈생활에대해생각하다
한번도돌아갈만한생활을한적이없음을떠올린다
-「높은성」에서


걸을수록그의풋프린트는비뚤어지고
나는그의풋프린트위에발맞춰걷는다
나무들사이로저녁의빛이내려앉는다
진하게풋프린트를새기며나는

이곳의족흔적을확인하러올어느범죄심리학자에대해생각한다

한사람과같은풋프린트
연구실에서분석된우리의발자국에대해

잎들이우리의목소리를머금고
흙위에우리의일부가침투한다
숨을내쉬며우리는
-「친구에게빨간운동화를선물했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