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한 파멸 (양장본 Hardcover)

장구한 파멸 (양장본 Hardcover)

$13.00
Description
기계적 신성의 시대를 비추는 실존의 파열음
안전한 행복 너머 불완전한 불행에의 고요한 사투
윤의섭의 여덟 번째 시집 『장구한 파멸』이 민음의 시 341번으로 출간되었다. 1994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생의 본질로서의 죽음을 꾸준히 묘파해 온 윤의섭의 시적 세계는 특유의 심미적 언어로 불안과 소멸의 미학을 생성해 왔다. 이번 시집에서 윤의섭은 현대적 삶의 조건이 된 인간성의 파멸을 그려 낸다. 문학이 인간 삶의 총체성을 구현한다는 오랜 믿음은 알고리즘이라는 세속적 신성에 정복된 듯하다. 스마트폰이 신체의 일부가 된 현대에 이르러, 알고리즘은 인간이 가진 모든 데이터를 분절시키고 탈맥락화하며 인간으로부터 역사성을 박탈한다. 시집의 첫 장이 ‘종말 중’에서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윤의섭이 그리는 종말은 일상의 얼굴을 하고 있다. 영원한 현재에 머물게 된 인간은 언제나 파멸 중인 것이다.
무엇을 잊었는지도 잊은 ‘슬픈 영원의 시작’을 그리는 이 시집은, 그러나 온전히 파멸의 그물에 갇히지만은 않는다. 윤의섭은 알고리즘이 카운트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공상’을 시적 세계 한 켠에 심어 둠으로써 인간성 회복의 계기를 마련한다. 효율, 성장, 수익 등의 키워드에 침식되지 않는 잔여의 대표물로서의 공상은, 바닥에 누워서도 스스로를 별자리로 만드는 폐타이어의 모습으로, ‘불행해야 행복해진다’는 믿기 힘든 결말에 투신하기 위해 탈출선을 탄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처럼 『장구한 파멸』은 기계적 신성에 지배된 현시대의 인간이 겪는 실존적 고투에 관한 비망록이자, ‘인간다움’의 보존 방법을 제안하는 희망의 노래이기도 하다.
저자

윤의섭

1994년《문학과사회》로등단했다.시집『말괄량이삐삐의죽음』,『천국의난민』,『붉은달은미친듯이궤도를돈다』,『마계』,『묵시록』,『어디서부터오는비인가요』,『내가다가가도너는켜지지않았다』가있다.

목차

제1장종말중
장구한파멸13
헌화15
암막16
파타모르가나18
카르만라인20
오즈22
곡예24
음속26
독채28
산책과눈과소멸에대한연구30
촉진32
무빙워크34
이류異類36
풍성음38

제2장징조의언덕
예고편43
파레이돌리아44
옴브로포비아46
안데스콘도르48
성장50
루비콘52
거울속의불54
흐르는56
만델라효과58
발생학60
구름의중쇄61

제3장기적또는적기
누설65
우리가초록에휩싸였을때68
저수지를걷는사람들70
기억흔적72
절망의끝이라는다독임74
물의언덕76
우연한간섭78
나의여럿80
CaliforniaDreamin´82
폐타이어의자세84
서바이벌85
정신이사납다는말88

제4장종말의탄생
리셋93
여독94
미혹96
폐화98
지음知音100
망연102
채석강의시간104
비동일성106
일정108
휴일사이110
병명112
컷114
종시終始116

작품해설-최다영(문학평론가)117
기계적신성의시대,영속하는파멸의비망록

출판사 서평

■구원없는세계를응시하는힘

너는지금까지도오래걸렸고마지막은멀었다는것을잘아는
앞뒤잘려나간장면
영문을모르는표정
너는너를구원할수없는구원자

너는죽을수있다
그러나죽을뿐이다
-「장구한파멸」에서

기계적신성에지배당한시대에는숏폼처럼‘앞뒤잘려나간장면’만이끊임없이재생산되며,그안에서‘나’는‘영문을모르는표정’으로겨우존재한다.인간이자신의전존재를걸고행하는최후의저항인죽음마저알고리즘안에서는더이상전복의힘을갖지못한다.인간의주체성은변혁의능력을잃은채로보존됨으로써폐쇄된다.희박해진주체에게신화는‘겨우조각만남은이야기’일뿐이고‘유통기한이지난신’은휴지통에버려진다.(「카르만라인」)현시대를향한윤의섭의냉정한시선은그러나냉소주의나패배주의로귀결되지는않는다.쉽사리끝나지않을듯한‘장구한파멸’의시대에주체의유통기한을연장할수있는방법에대해,윤의섭은기능의회복이아닌노이즈되기를제안한다.

■측정불가능한것이되기

결말을말해줄게나는멸망한지구로돌아가내가항해일지를조작한거였지

(……)

산다는건긴복선이다어떤떡밥은끝내회수되지못한다
산다는건그러니까긴예언이다불행해야행복해진다는믿기힘든결말도있다
-「서바이벌」에서

알고리즘은‘나’의선택을반영하여‘나’를중심으로세계를재편하는듯하지만,구성원리로부터주체를배제함으로써사실상주권박탈의기제가된다.인간의욕망을데이터화하고예측가능한것으로환원하려는알고리즘의눈을피해‘멸망한지구’로돌아가는움직임은알고리즘의사각지대를찾아가는일이다.알고리즘의궤도를벗어난곳에는‘멸망한지구’뿐아니라‘어머니의목소리’,‘늙은나무에서물흐르는소리’,‘구름끼리부딪치는소리’와같은‘환청’이있다.(「음속」)윤의섭의시편은기계적신성이포착할수없는잔여를조금씩만들어감으로써“인간적주파수”를보존한다.이렇듯『장구한파멸』은시라는형식속에서인간의유통기한을조금씩연장하는조용한저항의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