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파먹기

사랑 파먹기

$15.00
Description
소설가 권혜영의 첫 소설집 『사랑 파먹기』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2020년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권혜영은 데뷔작 이후 발표한 첫 작품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가 2021년 문학과지성사 ‘이 계절의 소설’에 선정되며 일찍이 평단의 주목을 받아 왔다.
소설가 권혜영은 삶도 게임처럼 잠깐 멈추었다 재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겠다는 듯 일시정지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게임은 완전한 멈춤이 가능하지만 진짜 삶은 자비 없이, 마치 인물들의 비참한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계속된다. “이 상황에서 작가가 베푸는 연민이 환상”(소설가 이희주)이라는 평처럼, 권혜영의 인물들은 각자 서 있는 자리에서 어김없이 기묘한 일들에 휘말린다. 이때 권혜영이 인물들에게 베푼 환상은 환상으로만 매듭지어지지 않는다. 현실에서 멀어졌던 인물들을 다시 삶 속에 되돌려놓음으로써 권혜영의 작품은 더욱 깊은 울림을 획득한다. 짜릿한 환상이 단지 유예된 현실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인물들은 슬프지만 이다음을 도모할 수 있다. 『사랑 파먹기』를 덮은 뒤, 독자들 역시 눈앞에 놓인 각자의 슬픔 너머 다시 이어질 현실을 보다 덤덤히, 그리고 기꺼이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권혜영

2020년실천문학신인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띠부띠부랜덤슬라이드7
당신이기대하는건여기에없다45
여분의해마77
사랑파먹기119
유예하는밤167
들개들의트랙리스트197
다음챕터231

작가의말271
작품해설
미래-증명,잠시중단합니다_최가은(문학평론가)275
추천의글_이희주(소설가)295

출판사 서평

궁극적으로누워있는상태에서바라보는세상

삶의물살이너무빠를때,그래서그물살이나와는상관없이흘러가기에바쁠때,권혜영의인물들은일단멈춰선다.멈춰선채로이대로살방법은없을지궁리한다.끝도없이이어지는비상계단에갇히고도맨손운동을하거나계단틈으로떨어지는등여러시도를하는사람들과는달리,‘나’는휴대폰에저장된노래를들으며계단참에가만히누워있기로한다.(「당신이기대하는건여기에없다」)화장실에갈때까지도메신저로보고하라는팀장의불합리한요구를묵묵히따르다어느날문득도서관으로도피한‘나’는그날로부터100일째도서관에산다.(「다음챕터」)인물들은누운채로도살수있는방법에골몰하며자신만의새로운삶의질서를발명해낸다.삶의물살이‘나’를지나쳐흘러간다면,‘나’역시물살과는관계없이물살위에서,혹은깊은물에서살아갈수있다는듯이.

내가만든사랑으로살기

누운자리에서사랑은일용할양식이다.‘누운채로살기’라는삶의방식을개발해낸인물들은,파먹고살만한사랑역시제힘으로만들어낸다.그사랑이만질수없는먼곳에있을지라도,그래픽으로만들어진가상의존재일지라도문제될것은전혀없다.인물들은이렇게묻는다.“진짜가아니면어때서?가짜를추구하면안되는건가?꼭진짜사람과몸을맞대고하는진짜사랑이아니면의미가없는건가?”(「사랑파먹기」)스스로선택할수없었던삶의비루한조건들과걷지말고뛸것을종용하며나를떠미는삶의비정함보다는,진짜가아닐지라도내가직접고르고만들어낸사랑쪽이오히려현실적이다.직접만든사랑을하나씩품에안아든인물들은또하루를살아갈만한양식과함께눈을뜬다.

다음챕터앞에서

그렇다면내가개발한삶의질서속에서내가만든사랑을파먹고사는일만으로도과연충분한걸까?“권혜영의세계가하지않는것은,소설집의일그러진표정을특별한종류의사랑과희망으로쉽사리대체하는일”(평론가최가은)이라는해설처럼,『사랑파먹기』에묶인소설일곱편의결말들은해피엔딩이라결론내리기에는어딘가찝찝한구석이있다.음악인으로서의자신을진정으로알아봐주는청자가등장하였다고해서(「유예하는밤」)내일이극적으로바뀔리없고,쓸모없는물건을넣으면가끔‘대박’이굴러나오기도하는미끄럼틀을발견하였다고해서(「띠부띠부랜덤슬라이드」)그것이모든불행을보상해줄리도없다.삶의파도를견디기위해나만의작은세계를수도없이부려놓은인물들은결국자신이그것들을딛고다음단계로향해야함을알고있다.마지막수록작「다음챕터」의주인공이문득내일로넘어가야할이유를고민할때작은열기를내뿜는것과같이,『사랑파먹기』는우리의불투명한미래에촛불하나만큼의작은온기를선사한다.너무뜨겁지도,너무미약하지도않은이불꽃은우리의하루를꼭맞게밝혀줄것이다.

[줄거리]

「띠부띠부랜덤슬라이드」
궁극적으로누워있는상태를꿈꾸며실업급여180만원으로하루하루살아가는‘나’.어느날,빵을먹고획득한희귀띠부씰을중고거래하러나간놀이터에서처음보는미끄럼틀을발견한다.미끄럼틀을둘러싼아이들중그누구도미끄럼틀을타지는않고,저마다챙겨온물건들을미끄럼틀안으로굴려보내기바쁘다.그날밤,‘나’는쓸모없는물건들을잔뜩챙겨놀이터를다시찾는다.

「당신이기대하는건여기에없다」
3교대마지막조근무를마친뒤자정이넘은시각귀가하여겨우잠에빠지려는찰나,화재경보기가요란스레울린다.다음날출근전까지잘수있는시간을가늠하며비상계단을내려가는데아무리내려가도계단이끝없이이어진다.휴대폰을들여다보아도전화도인터넷도먹통이다.오늘밤,나는과연잠들수있을까?이비상계단의출구는어디일까?

「여분의해마」
오랫동안사랑해온나의아이돌해마.구하기힘든포토카드를거래후,집에와확인해보니미세한스크래치가보인다.괜히비싼값을주었나하는후회도잠시,스크래치가커지더니사진속해마가내방안으로튀어나온다.영상과사진으로만만나던아이돌이눈앞에나타나다니,나는해마에게데면데면말을걸어본다.

「사랑파먹기」
‘최애’아이돌의사건사고에지친세나,여전히세나가좋아하던아이돌을사랑하는정인,사랑은자신에게멀고먼이야기처럼느껴지고하루하루살아가기에바쁜윤주.셋은우연한계기로한카페에서스친다.세나는포토카드를처분하러왔고,정인은이를구매하기위해,그리고윤주는그곳에서일일아르바이트중이다.사랑에열광하고,사랑에지치고,사랑에무심한이들셋을동시에구원할사랑이이세상에있을까?

「유예하는밤」
좋으니까계속한다는마음으로음악을해온혜진은이제음악도삶도그만두려고한다.할만큼했고,더이상하고싶지않고,무너졌다고느끼기때문이다.그렇게마지막을기다리며누워있을때,혜진의유튜브채널알림이울린다.혜진의노래를너무잘듣고있다는응원의댓글이달린것이다.그런데댓글을단사람은무언가단단히잘못알고있는것같다.혜진은그가알고있는자신이궁금해지기시작한다.

「들개들의트랙리스트」
누나부부가런던여행을즐기는동안강아지를돌봐주기로한‘나’.쾌적하고넓은집을구경하다문득,밴드멤버들에게오늘은연습실을빌리는대신이곳에서연습을하면어떻겠느냐고제안한다.그런데오늘따라이상한제안을하는리더형.설상가상강아지도보이지않는다.

「다음챕터」
‘나’는벌써100일째도서관에산다.씻는것은이른아침도서관화장실에서하고,부족한잠은영화감상실에서가장긴영화들을택해보충한다.그러고는하염없이책을읽는다.지척에집을두고‘나’가도서관에사는이유는무얼까.도서관살이는언제까지이어질수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