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대기의 수줍음 (유계영 에세이 | 양장본 Hardcover)

꼭대기의 수줍음 (유계영 에세이 | 양장본 Hardcover)

$14.00
Description
유계영 시인의 첫 번째 에세이집

동물과 인간, 인간과 세계의 틈을 벌리는 시인의 시선
그 사이로 비로소 보이는 깊은 마음들, 시가 될 장면들

“우리는 나무들에게 배운 대로 주춤주춤 서로에게서 물러난다. 꼭대기의 수줍음처럼. 만지는 것 말고 다가가기. 마음에 마음 닿아 보기. 이것이 내가 두 팔을 활짝 벌려 포옹하는 방식.”
저자

유계영

저자:유계영
1985년인천에서태어났다.동국대학교문예창작학과를졸업했으며2010년《현대문학》신인추천으로등단했다.

목차

서문9

1부밤마다밤이이어진다
검은차창을바라보는중국인꼬마15
너자신을잡아당겨보라,끊어지기직전의고무줄처럼21
밀어올려도굴러떨어지는거대한돌30
만일바다도산도대도시도싫어한다면36
지난여름의일기40

2부나는미래에대한밑그림을그리지않지
안개속에서선명해지는것65
여행식물72
얼마간은이웃79
백년후의서점86
노동없이노동하며사랑없이사랑하는93

3부물결치는너의얼굴보고싶다
흰종이,거의검은종이에가까운흰종이105
뿔과뿌리111
특별한등116
점과백122
보고싶어,너의파안128
듣고싶어,속살거림속살거림132
닿고싶어,물처럼넘쳐서물처럼흘러서137

4부나무의잠이궁금하다
이불을털다가주저앉아꼼짝없이143
봄에꾼꿈이이듬해다시떠오르는것148
물그림이마르는동안158
새벽5시의단편들165
누구의손입니까?168

5부천진난만하게투명을떠다니는빛
사랑스러운빛177
새가말을건다면대답할수있겠니?185
백년을기다렸고오늘나는죽는다193
아침인사199

부록:완벽하게너그러운나의친구203

출판사 서평

●영원을담은매일의쓰기,문학론에세이시리즈‘매일과영원’
하루하루지나가는일상과,시간을넘어오래기록될문학을나란히놓아봅니다.매일묵묵히쓰는어떤것,그것은시이고소설이고일기입니다.우리의하루하루는무심히지나가지만그속에서집요하게문학을발견해내는작가들에의해우리시대의문학은쓰이고있으며,그것들은시간을이기고영원에가깝게살것입니다.‘매일과영원’에담기는글들은하루를붙잡아두는일기이자작가가쓰는그들자신의문학론입니다.내밀하고친밀한방식으로쓰인이에세이가,일기장을닮은책이,독자의일상에스미기를바랍니다.

유계영시인의첫번째에세이집『꼭대기의수줍음』이민음사에세이시리즈‘매일과영원’으로출간되었다.2010년데뷔한유계영시인은이후『온갖것들의낮』,『이제는순수를말할수있을것같다』,『이런얘기는좀어지러운가』,『지금부터는나의입장』등네권의시집을출간하며슬픔이후까지시선을뻗는섬세한시세계를구축해왔다.유계영시인은왜자신은큰일에는무감한데작고사소한일에는항상가슴이요동치는것인지반복해서되묻는사람이다.자신을향한질문으로부터출발한책『꼭대기의수줍음』에는시인의마음을흔드는마주침들이가득하다.이만남들은깊이주의를기울이지않는다면그냥지나쳐버리기쉽다는점에서는작고사소하지만,한사람혹은한생명체를이해하는출발점이자한편의시가될지도모를장면들이라는점에서는결정적이고특별하다.책제목‘꼭대기의수줍음’은높이자란나무들이맨아래의식물들까지빛을볼수있도록가지와가지사이에틈을벌리는현상을일컫는말이다.나무들의조심스러운태도는유계영시인의시선을닮았다.큰나무사이로스민빛덕분에작은풀들이자라날수있듯,시인의시선은삶의작은기척들이한편의글로쓰일때까지오래살핀다.『꼭대기의수줍음』은그렇게완성된글들의첫번째화원이다.

■너무가까워지면납작해질수있습니다

더욱많은사람들과더욱긴밀히연결되고싶은가?
아니오.
-53쪽

『꼭대기의수줍음』에는많은사람들이등장하지만유계영시인은항상그들로부터얼마간떨어져있다.사람들사이에있을때자신이“납작해진다”고느껴서다.시인은의례적으로주고받는작별의말들이부담스러워북적이는술자리에서말없이빠져나와집으로간다.시를가르치는학생들의마음이궁금할때는불쑥질문을건네는대신학생들의물건들을바라보며왜이물건이예쁘다고생각했을지그고민을짐작해보는쪽을택한다.카페맞은편에앉아있는이가테이블밑의강아지에게손부터뻗을때에는왜만지고싶으냐고질문을건넨다.직접만지지않는방식으로당신에게완전히다가갈수있을까.역설적인말인것도같지만대상과거리를두는것으로부터시작되는관계가있다.멀어진거리만큼촘촘해진헤아림이나와당신사이를보다견고히잇는다.

■무능,쩔쩔맴,쑥스러움의가능성

인간이정복할수없는절대적인영역이있다는사실을확인받을때에나나는잠깐희망적이다.인간의무능만이좋다.인간의불가능성만이세계의가능성.
-41쪽

‘거리두기’의미학을잘아는시인이지만그럼에도시인이가장사랑하는것은사람이다.시인은“좋아하는것이라곤이제거의사람밖에남지않은”듯사람을좋아한다.대체삶을어떻게살아나가야하는지누군가와대화를나눌기회가주어진다면,시인은내가그방법을잘알고있다며단언하는사람보다는도무지모르겠다며오답만내놓는사람쪽을사랑한다.자신의무능을마주하고좌절하는사람,예상밖의일에쩔쩔매는사람,쑥스러움을많이타는탓에자신의솔직한마음을뺀모든것을이야기하는사람을오래바라보고그와대화나누는법을,시인은잘알고있다.시인역시그런사람이기때문이다.삶의방식에정답따위있을리가없으므로이들이나누는오답만이삶의무한한방식에대한하나의가능성이다.

■시는나의완벽하게너그러운친구

시는사람이무한히담기는,주둥이가한없이넓은사발.언어를질료로삼음에도언어라면기필코다쏟아버리고사람만남기는희한한골동사발.가끔은사람자체인것처럼도보이는.
-90쪽

시인이‘완벽하다’라는,단언적인표현을쓰는유일한대상이있다면바로‘시’에대해서다.시는시를열렬히사랑하는이를소외시키는법이없다는점에서완벽하게너그럽다.사랑했던모든것은시간이지나면서조금씩변한다.시인이내심좋아하고귀여워하던이마의혹이불편했던친구가어느날혹제거수술을받은일이나오늘시인의방창가에찾아와한참동안노래를부르던새가내일은찾아오지않는일처럼한때사랑을쏟았던일들이하루아침에사라지는것은흔한일이다.그때마다섭섭해지는마음을아닌척감추는일도점점익숙해진다.하지만시는처음부터“임시적”이다.오늘시였던것이내일은시가아닐수도있지만,오늘은시가아니었던것이내일은시가될수도있다.그렇게시는“주둥이가한없이넓은사발”을벌리며무한한사람을품는다.유계영시인은매일새로운눈과귀를열고오늘의시가전하는말에귀를기울인다.시인의일상과시인이쓰는시가계속되는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