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지옥에서 산다는 것 - 매일과 영원 7 (양장)

가만한 지옥에서 산다는 것 - 매일과 영원 7 (양장)

$14.00
Description
“내 생각과 이야기를 드러내고 싶고, 그것이 읽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썼지만, 어떤 날은 내가 그런 글을 썼다는 사실이 무서워진다.”

무엇을 쓰고 싶은가? 잘 쓸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도망칠 수 없는 질문들에
최선의 슬픔과 비관의 미학으로 답하고자 애쓰는,
취중과 진심을 오가는 소설 쓰기에 대한 고백

2015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여 2020년 첫 소설집 『아이젠』을 펴낸 소설가 김남숙의 첫 번째 에세이가 ‘매일과 영원’ 시리즈 일곱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2020년 민음사 블로그에 「진탕 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글들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소설 쓰기에 대한 회피와 회고, 잃어버린 타인에 대한 환영과 환멸을 담아 『가만한 지옥에서 산다는 것』이라는 한 권의 산문집이 완성된 것이다. 첫 번째 소설집을 출간할 당시 김남숙은 “익숙해져 버린 비루한 삶의 모습을 독창적인 화풍으로 새롭게 형상화하는 작가”라는 평을 받았다. 그의 소설은 자주 비관적이고 대개 우울하며, 날것의 이미지와 언어 들로 날선 인상을 주지만, 정을 주지 않으려 애쓰는 문장으로 쓰여진 소설들은 무척이나 정에 약하고, 정 때문에 자주 슬퍼지는 사람들을 그리는 듯하다. 무기력하고 비관적인 인물을 그리게 된 작가에게는 어떤 생활과 생각이 자리하고 있을까? 왜 그렇게 써야 했고, 그렇게밖에 쓸 수 없었을까? 에세이를 쓰는 내내 김남숙은 스스로에게 그런 것을 묻는다. 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이제는 독자가 작가의 질문 속을 거닐게 될 것이다. 가만한 지옥 같기도, 사소한 천국 같기도 한 한 권의 책 안에서.
저자

김남숙

1993년출생.2015년문학동네신인상에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아이젠』이있다.

목차

1부
준코9
아무관련없는인물들15
중국인J20
용서24
랄로쿠라의원형29
숨참고마시는맥주33
종로39
금요일43
일요일48
내가아는현주52
만두먹고술먹고,모든게잘되진않았어도56

2부
선생과사이다63
아주예리한칼68
5월에쓴소설72
매일무슨일이일어나는것인지79
어제83
단조롭고건조하게88
곰팡이와몸93
감자98
장호원-만두마을이야기103
장호원2109
이력서112
너무시끄러운고독118

3부
주디125
잠129
그와메뚜기134
눈140
제사144
포천148
좋은소식과나쁜소식150
그럴수없지만그런척하고싶은것들154
토니와수잔157
정확한진단162
개똥같은167
가만한지옥에서산다는것170

4부
치과,브루클린버거177
사랑하지않았던사람들182
사진,여름186
밑장이까여서190
옛날사람193
꿈에서만보는사람들198
아무것도할수없다,그렇지만202
내가집에두고온것205
그런생각210
어떤기대213
유치하고우스운말217

에필로그223

출판사 서평

내가사는곳은지옥이야,사랑하는사람들을잃어버린채혼자니까

“내소설에는항상누군가들을기다리거나혹은기다리지않는인물들이나온다.계속해서기다리거나기다리다가결국그기다리기를포기한인물들.”
-「토니와수잔」에서

『가만한지옥에서산다는것』은첫소설집을묶은뒤한소설가에게찾아오는생활의변화와그와는무관하게오래이어져온감정의파고,소설을쓰는일과읽는일,그반대편에서꾸려지는생활의일을담고있다.모르는사이에소설과삶을연관짓게되는에피소드들이다.주로먹고마시고떠나간누군가를생각하고또생각하는일상.현재의나와가장멀었던과거의나를,과거의친구를,과거의공간을자꾸만소환하는지독한습관들로가득하다.어쩌면김남숙이머물기에가장익숙한공간은술을마시다죽을수도있다는사실,모든이별을견디기어려워하는자신의모습,잊으려고애써도자꾸만등장하는옛사람들로엉킨꿈일지모르겠다.담담한얼굴로가만한지옥에서사는일상을들려주는작가.혼자임을견딜수없지만동시에너무나혼자있음에안도하는사람.우울과비관으로성실한생활을이어가는아이러니.목적을모른채털레털레내딛는걸음과온힘을다해웃는동시에비어져나오는울음을참는표정.김남숙이에세이로보여주는그의얼굴은그의소설과닮았다.어쩌면그가처음열어보이는그의생활을다룬에세이『가만한지옥에서산다는것』은김남숙의소설세계에대한하나의평행우주,미래의김남숙이쓰고말소설에대한작고단순한예언,에세이처럼빚어진또다른소설인지도모르겠다.

악몽에서깨어나다시걷기,읽은것들과써낸것들을생각하며

“내가소중하다고여기는것을쓰레기라고말하는사람앞에서,소중한것에대해계속해서말하는사람이되고싶다.이것좀봐.제대로좀봐,말하고싶다.”
-「좋은소식과나쁜소식」에서

산문집의초반부에서김남숙은“꽤오랫동안글을쓰지않았다.”고고백한다.쓰고싶지않은상태,쓰지못하는상태를지날때의김남숙이적은독서리스트는역설적으로그가쓰고자했던것,여전히쓰고자하는것을알려준다.김남숙은자신을여러권의책을많이읽는사람이아니라한권의책을오래들고다니며거듭다시읽는사람이라고소개한다.『가만한지옥에서산다는것』에는그런작가가몇번이고펼쳤을몇권의책에대한감상이담겨있다.로베르토볼라뇨의『살인창녀들』에실린소설「랄로쿠라의원형」을읽고“나는소설에서어떤방식으로든사소하게혹은시시하게복수를하는편이었다면볼라뇨는반대였다.”고말한다.서보머그더의소설『도어』를“정말잔인한배반에관한이야기”라고정의한다.또한,“분명칼로찌른사람과칼에찔린사람은서로사랑했던사이일것이라고”예측한다.모든감상들은김남숙이작가로서말하는자신의쓰기와자신이하고자하는쓰기,혹은쓰지못할것을알기에더욱사랑하는쓰기에대한고백에다름아닐것이다.우리는김남숙의일기를통해그가소설을쓰기위해하염없이걷던길,자주들춰본책,자주악몽에서깨어나던시간을알게된다.악몽에서깨어난소설가는어떤소설을쓰게될까.『가만한지옥에서산다는것』을읽는일은과거에빚진한작가가오늘을지나내일의쓰기로가는길을함께걷는일이될것이다.

작가의말

나는늘소설이나에게가장단순한것이라고생각했지만뒤돌아보면오히려나에게가장복잡한숙제였다는것을알게된것같다.늘싫다와좋다를번복하며말해왔지만시간이지난지금나는소설을전보다조금더좋아하게된것같다.이다지도별로인내가그래도나를그대로바라볼수있었던이유중의하나가소설이었다는것을,나는잠깐잊고있었던것같다.(……)어설프지만나는여전히남몰래사랑에애쓰고있다.언제다시돌아갈지는모르지만,지금내가있는지옥은동전이든주머니처럼조금은가볍다.

책속에서

새해가밝은지세달이훌쩍넘었다.하지만나는여전히새해인사를하듯이술을퍼마시고사람들을만난다.나는새해인간이다.여전히술을퍼마시니까,그건새해인간이다.1월마지막까지는술을먹기전에늘새해복많이받으세요,라는말을달고다녔다.(……)이제더는새해가아닌데,나도잘아는데,나는여전히새해에있는것같다.올해의속도를따라가기가힘들다.
---p.9

시간이지날수록,소설을쓰면쓸수록단단해진고있다는느낌보다물렁해지고있다는느낌이더강하게든다.어떤생각도,습관도,고집도전부다고무처럼물러지고있다는느낌.단단했던것들이한번씩깨어지고다시재조립되는중이라면좋을텐데,나는아직깨어진채로만시간을보내고있다는생각이든다.이상태가얼마나더길어질까.깨어진것들이붙기는할는지.
---p.31

나는숨을참고꿀꺽꿀꺽맥주를들이켰다.숨을참고맥주를마시는기분이꼭오늘울음을참던기분과비슷했다.코가찡하고,눈가가촉촉해지는기분.
다마신맥주캔이계속해서늘어갔고,울고싶었는데,딱히울이유가없어서울지않았다.
---p.38

소설을쓰는동안에는항상동네를걸었다.같은자리를빙빙돌면서혼잣말을하기도했다.잠옷바람비슷한차림으로슬리퍼를직직끌고돌아다니면서어떤생각에잠겨있었는데사실그건생각이라기보다기분에가까울것이었다.그렇게한참을빈손으로털레털레걷다보면슬리퍼밑에채이는돌멩이처럼무언가를툭알게될때가있었다.
---pp.7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