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유령 (장진영 소설집)

우아한 유령 (장진영 소설집)

$15.00
Description
“매번 처음 듣는 것처럼 웃었다.
바보같이 실실거렸다.
바보인 척. 하여튼 온통 거짓말.”


아픈 기억은 지워 버리고
잔인한 현실은 농담으로 웃어넘기기
삶의 중력을 가뿐하게 벗어나는
유령들의 우아한 생존 방식
장진영 소설집 『우아한 유령』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장편소설 『치치새가 사는 숲』, 『취미는 사생활』 등을 통해 거침없이 발화하면서도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인물과 예측 불가한 전개로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한 장진영 작가의 신작이다. 2019년 《자음과모음》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할 당시부터 장진영은 특유의 리드미컬하고 유머러스한 문장, 과감한 은유와 생략의 화법으로 독자와 평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아 왔다. 장진영은 수다와 침묵, 농담과 폭로를 이음새도 없이 매끄럽게 오가며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진 비밀에 바싹 다가서는 데 능한 작가다. 『우아한 유령』은 그러한 장진영의 개성과 강점을 만끽할 수 있는 여덟 편의 소설로 엮여 있다.
『우아한 유령』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웃는다. 하나같이 곤경에 처해 있는 이들은 아픈 기억은 다 잊어버렸다고 시치미를 떼고, 잔인한 현실을 농담으로 웃어넘기며 상처를 덮는다. 그런 비밀과 거짓말은 타인보다 자기 자신을 향해 있다. 장진영의 인물들은 적극적으로 속는다. 이들의 기억은 진짜와 가짜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고 망각으로 커다란 구멍이 군데군데 나 있다. 그 기억 속에서 존중과 방임, 사랑과 착취, 비명과 웃음, 가해와 피해는 구분할 수 없도록 혼재되어 있다. 자기기만으로 완성된 기억은 모호하지만 아름답고, 믿고 싶을 만큼 아늑하지만 복잡하게 사악하다.
그러나 백온유 소설가의 말처럼, 이들이 외면한 진실은 “꿈에서, 미래에서, 삶의 한 모퉁이에서 언제까지고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실을 『우아한 유령』의 인물들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상처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그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끝없이 맴돌고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이들은 자기기만을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망각한 진실이 덫처럼 널려 있는 기억 속을, 위험으로 가득한 삶을 환한 웃음을 지으며 가벼운 몸짓으로 건넌다. 환상적인 곡예를 펼치듯 아슬아슬하고도 아름답게.
저자

장진영

저자:장진영
2019년《자음과모음》신인문학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마음만먹으면』,장편소설『취미는사생활』『치치새가사는숲』,단편소설『나의사내연애이야기』『김용호』등이있다.

목차


입술을다물고부르는노래7
도청자39
우아한유령71
아란101
용서135
허수입력167
첼로와칠면조203
임하는마음237
작가의말273

작품해설276
네게만이야기해줄게,이야기의비밀을_이희우(문학평론가)

추천의글298
_백온유(소설가)

출판사 서평

깔깔대는그늘들

『우아한유령』의인물들은안전장치하나없이현실의위협에고스란히내몰려있다.「임하는마음」의아이들은보호받지못한채방치되어위태롭게거리를헤매고,「첼로와칠면조」의아이는인정받고싶은마음에어른의불순한의도를알면서도그애정을갈구한다.여성은「허수입력」에서처럼생애내내성폭력의불안에시달리고,그불안은때때로「아란」에서처럼가장가까운사람에의해현실의공포가된다.그러나무엇보다가장강력한위협은가난이다.「입술을다물고부르는노래」처럼가난은미래를상상할엄두도내지못할만큼현재의시간을모조리빼앗으며삶을지배하고,「도청자」와「우아한유령」에서처럼사랑조차손쉽게착취와배신의수단으로뒤바꾼다.
그삶의한가운데서이들은끝없이실없는농담을던진다.가만히있어도저절로나쁜쪽으로쓸려가고,안간힘을써서지키던것은여지없이무너지는순간에도.속절없이최악으로내몰리며더나쁜쪽으로,더많은것을철저히무너뜨리는방식을스스로택하는순간에도.이들은끊임없는수다로공백을채운다.마치농담과웃음만이이들이가진유일한무기이자생존방식이라는듯.

기억의공백

장진영은기억의양가적속성을누구보다깊이꿰뚫어보고능수능란하게다루는작가다.장진영의소설에서‘기억’은가장친밀한타인같다.기억은자기만의세계를완성하는중요한재료인동시에,그렇게완성된세계를한순간부술수있는강력한위협이된다.『우아한유령』의인물들에게기억은자유롭게실존할수있는유일한장소처럼보인다.이들은서슴없이진짜와가짜를이어붙이고,원치않는기억은지운다.「허수입력」의화자는과거를공유한이가말해줘도성추행당한기억을떠올리지못하고,「아란」의화자는자신이성폭행당한피해자로서의기억도,친구를악의적으로해친가해자로서의기억도모두모호한채로살아간다.과거앞에서이들이지어보이는무표정은얼핏태평해보이지만사실은그렇지않다.기억의공백은불안으로채워지기때문이다.
『우아한유령』에서불안은나도모르게이를악물거나주먹을꽉쥐는기이한습관으로,이런습관은불안을키워이해할수없는소음같은착란과망상으로이어진다.그착란과망상너머에거대한구멍,기억의공백이있다.그앞에서이들은굳게침묵한다.그구멍아래숨겨졌던진실이어렴풋이모습을드러내는순간에도.

소리없는말

장진영의소설에서말은진심을드러내기보다감추는데쓰인다.그렇게쏟아내듯말하고깔깔대며웃던『우아한유령』의인물들이돌연소리없이입모양으로만말하는순간들이있다.진심으로사과할때다.「용서」의‘엄마’는자기아이를죽인가해자를용서해준그날밤남몰래입모양으로만아이에게미안하다는사과를전하고,「임하는마음」의‘나’는보육원을무단이탈했다돌아온뒤,나를걱정한보육원언니에게입모양으로‘다녀왔어요.’하고반갑고미안한마음을대신한다.말보다소리없는시선이마음을끌어올때도있다.「입술을다물고부르는노래」에서청각장애인인‘미조’와그의학습보조일을하며장학금을받는대학생‘나’의대화는모두입모양과금세쓰고지우는타이핑으로이루어진다.이들의주된대화는서로의표정과몸짓을주시하는시선이다.이시선을통해의무로시작한이들의대화가점차우정으로흐른다.내내무덤덤하고냉랭한‘나’의말과달리,이들사이에생겨난선의와호감은어떠한말도없이소설을가득채운다.
입모양으로말하기는서로를마주하는동안에만가능한소통이다.그순간에대한기억은오직그입술을주시한사람만이가질수있다.『우아한유령』의인물들을따라우리는이소리없는움직임들을골똘히바라본다.이들이주고받는진심은아주작고미약하지만,가장믿고싶고절박하게붙들고싶은단한순간이기도하다는점에서결코미약하지만은않게느껴진다.어쩌면이순간이야말로구원일것이다.절대잊히지않음으로써언젠가먼미래에자신을구할기억이될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