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파라다이스

당신의 파라다이스

$17.00
Description
세계문학상 ㆍ 4.3 평화문학상 수상 작가 임재희의 첫 장편 소설
임재희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자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당신의 파라다이스』 개정판이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2025년 민음사에서 새로 출간되었다. 『당신의 파라다이스』는 20세기 초 일제강점기의 조국을 떠나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노동 이민을 떠났던 두 남자와 두 여자, 네 인물의 엇갈린 운명을 따라가며 낯설고 척박한, 그러나 새로운 땅에서 자신의 소중한 삶을 지키려 했던 우리나라 최초 이민 세대의 의지와 희망을 재현한 소설이다. 작가는 1985년 하와이로 이민을 떠나, 하와이 주립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소설가에 대한 꿈도 포부도 품지 않았던 대학 시절 우연히 수강한 ‘하와이 초기 한인 이민사’ 수업에서 접한 이민 1세대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겼던 작가는 “소설가에게 ‘쓰고 싶은’ 이야기와 ‘써야 할’ 이야기가 분명 존재한다면, 이 소설은 나에게 언젠가는 ‘써 내야 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직감했고, 훗날 한국에 돌아와 문학 창작을 공부하며 소설의 첫 문장을 썼다. 그리고 그 소설 『당신의 파라다이스』로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하와이 이민 1세대의 사랑과 우정, 이별을 섬세한 인물 묘사와 긴장감 있는 플롯으로 잘 그렸다. 한국 이민 소설의 새 장을 여는 이정표가 되리라 확신한다.”_세계문학상 심사평
저자

임재희

저자:임재희
최전방부대3사단에아버지가근무하실때,강원도철원에서태어났다.세살무렵서울로이주,1985년하와이이민길에올랐다.하와이주립대학교에서사회복지학을공부하며한국에올때마다트렁크가득시집과소설책들을사가곤했다.한국어로쓰인책들을읽으며생존의언어와사유의언어가다를수밖에없는이민자-나-의언어세계를받아들였고,한국도미국도아닌어정쩡한‘중간지점’을살고있다는소외감과결핍감에서벗어나양쪽을다볼수있는‘보석의눈’이될수도있음을깨닫게되었다.중앙대학교대학원문예창작학과를다니며소설을썼다.2013년세계문학상우수상수상작『당신의파라다이스』를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장편소설『비늘』,소설집『어디에도속하지않은폴의하루』가있으며,『라이프리스트』,『블라인드라이터』,『예루살렘해변』,『모호한상실』,『오로라』등을우리말로옮겼다.2023년『세개의빛』으로제11회‘제주4·3평화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짝―긴이야기속으로9
캠프나인사람들46
낙원을꿈꾸며57
세남자76
제안의것들94
파파야가익어가는시간102
기회의땅,힐로130
스텔라,사랑을믿다147
너무도사소한것들169
목마른사람들182
먼곳을바라보는일198
어둠속으로210
부유하는사람들225
죽음의골짜기,칼라우파파236
돌아온여인,순례243
새로운인연260
편지285
대륙에서온남자292
따뜻한인사,마할로누이312
밤은긴그림자를남기고333
사랑의방식349
동지촌371
가벼워진생애―너무많은이름속에서385

작가의말394
추천사398

출판사 서평

“우리모두를위한결정인가요?”

강희와나영은어린시절부터한집에서친자매처럼서로의지하며자랐다.나영은부유한아버지슬하에서남부러울것없이자랐으나,아버지가세상을일찍떠나는바람에불의에강희네몸을의탁했다.나영아버지의은덕으로생계를꾸릴수있었던강희아버지는강희보다나영을귀하게살피며둘을키웠다.강희아버지마저세상을떠나고살길이점차막막해지던중두사람은하와이에서온중매쟁이를통해‘사진신부’로하와이이민을떠나게된다.(‘하와이사진신부’는1900년대초하와이에이민노동자로정착한남자들의‘사진’만보고그들과결혼하기위해뒤따라이민을떠난여성들을뜻한다.이들의결혼은미국의반이민정책속에서가족을꾸릴방법이막힌이민남성들과경제적또는사회적이유로탈출구를찾던여성들의절박한선택이었다.)

하와이에도착한강희와나영은그들을사진신부로초청한창석과상학을만나게되는데,나영은자신의짝상학을보자마자결혼약속을무효로하고다시조선으로돌아가겠다고떼를쓴다.사진을보며고향에서상상했던‘한인사회지도자’상학이실은삼십대중반의나이든남자라는현실을맞닥뜨리자마자“달콤하고싱그러운풀냄새”가득하고“사철꽃이피고과일이뚝뚝떨어지는”이상적인낙원에걸었던기대가한순간물거품이되었기때문이다.

나영은“작고눅눅하고퀴퀴한냄새가나는방”에서나이많은남자와사느니차라리고향으로돌아가겠다고고집을부린다.“일본놈들이득실거리고배고프고희망없는”땅으로돌아가겠다는무모한결정을내리는나영을혼자떠나보낼수없었던강희는애초에결정되어있던서로의짝을바꾸자고제안한다.결혼을약속하며주고받은사진과편지로강희에대한사랑을마음속깊이키워오던창석은강희의돌연한제안에마음을추스르기어렵지만,힘겨운이민노동의삶속에서맏형처럼믿고따랐던상학마저그것이네사람을위한최선의선택이라는듯무언의동의를하자강희의결정을따르기로하는데……그순간부터네주인공의삶은예기치못한시련과혼란의소용돌이에휘감긴다.

“이게우리모두를위한결정인가요?”
강희가물었다.
“모두를위한결정?”
창석이이해할수없다는듯물었다.상학과나영의문제아니었냐고강희에게묻는표정이었다.
강희는‘모두를위한결정’이라는말을다시곱씹었다.다같이살아내는일이었다.고민은오래해도결정은한순간이고,어떤결정은인생을바꿔놓는다는교회여자의말이틀리지않았다.자신의결정으로모두의운명이바뀔거라는생각이들자숨소리마저잦아들었다.
“처음정해졌던짝을바꾸기로하면,지상의낙원이라는이섬에서모두살수있어요.”
강희는놀랍도록차분한목소리로말하는자신을믿을수없었다.(44쪽)

“그녀를위해그가할수있는건,여기에서멈추는것이었다.”

나영은어리석은욕심과이기적실수를거듭하면서도좌절하지않는다.어떤고난에도무너지지않고삶을끝까지붙잡는민초들의원기가가장핍진하게투영된인물이다.창석과결혼한나영은딸도낳고,남편의사업번창으로행복한시간도보낸다.그러나창석이불치병(한센병)에걸려몰로카이섬에격리되면서그녀는세상사람들의멸시를견뎌야하는나락으로떨어지고,홀로아이를키우며그고난들을헤쳐나간다.철없고충동적으로보이는나영은다른한편으로는원초적생명력과꺾이지않는현실적강인함을지녔다.창석과결혼한후에는그에게아낌없이마음을바쳤고,그를떠나보낸뒤에도여전히사랑을믿고새로운인연에운명을걸며동지촌에서또다른가능성을시도한다.

강희와결혼한후에상학은창석에대한미안함으로힘든시간을보낸다.강희에대한창석의진심을뒤늦게깨닫게되면서강희를차마아내로대하지도못한다.젊은날등떠밀려혼인하여낳았던아들세욱을고향에혼자두고온데대한죄책감도그의삶에어두운그늘을드리운다.이민자들의공동체캠프나인에모인사람들의고난과슬픔을함께나누며보살피고,그들을교육하는것에서만미약하게나마살아있는의미를찾는다.강희를알아가며삶의희망를되찾아가던상학은그녀를자신에게서떼어놓으려는창석의속마음을간파하고도그의부탁을받아들여임시정부에독립자금을전달하기위해상해로떠난다.

새로운땅에서새로운삶을꿈꾸었던강희는자신이마음을주었던창석을나영에게떠나보낸후상학과의헛헛한결혼생활과고된노동속에서꿋꿋하게살아간다.은연중에도늘자신에게희생을강요했던나영에대한원망스러운마음에서벗어나하와이로향할때다짐했던굳은결의를되새긴다.결혼을통한신분변화를꾀하는것이아니라농업공동체캠프나인사람들과의연대속에자신의고유한역할을만들어가며한사람의주체적인간이져야할삶의무게를받아들이고점점단단해진다.하지만가슴밑바닥에묻었던창석에대한애틋한감정을끝내외면하지는못한다.
삶에대한포부와열정이넘쳤던창석은사진속강희를처음보았을때부터그녀에게호감을느꼈고,나영과결혼한후에도강희를마음에서떠나보내지못한다.그녀를잊기위해사업에만악착같이전념한창석은양화점과호텔업으로이민자로서는드물게큰부를쌓는다.시간이흐른뒤에도강희에대한사랑을접지못했던창석은한번더일생일대의결단을내리고마침내강희에게자신의마음을고백한다.하지만그를기다리고있는것은또한번의뼈저린고통과이별이다.

멀리업타운에서새벽안개를헤치고내려오는마차가보였다.창석은강희를부르며뛰어가다멈췄다.그녀를위해자신이할수있는건,여기에서멈추는것이었다.이제강희가사는세상과자신이살아가야할세상이다르다는걸온몸으로느낄뿐이었다.멀리에서그녀를바라보았다.온마음으로그녀의앞날을축복해주고싶었다.
칼라우파파로떠나오기전창석은기다려달라고그녀에게말했다.진심이었다.멀리도망가자고말했다.살아돌아오겠다는약속이고의지였다.강희가그의마음을모를리없었다.창석은이제다른세상에서살아가는자신을받아들이고싶었다.살아서이섬을나갈수없다는걸더분명하게느낄뿐이었다.희망과도작별할시간이온것이었다.오롯이지금의현실에투항하는것.그가할수있는마지막선택이었다.(283쪽)

“어디에있든살아있기를,풀처럼꼭살아있기를!”

강희와나영을맞아준캠프나인사람들저마다의일대기에는일제강점기에희망없는조국을떠나낯선땅에서새삶을추구했던하와이이민1세대들이겪었던고난과애환이아로새겨져있다.강희,나영,상학과창석외에도,남편과시어머니의학대에서벗어나고자어린두딸을데리고태평양을건너캠프나인의어머니같은교육자가되는심영,상학의조력자이자창석의사업파트너로언제나보이지않는곳에서공동체의유대를돌보는태호,자신을성폭행한이웃의손에남편을잃고타지를떠돌다마우나케아산에서신내림을받게되는순례,첫사랑의아이를출산하지만,아이를빼앗기고도한인간의존엄을지키기위해홀로당당하게성장해가는스텔라,최초의이민선겐카이마루호에서시작된이들의이야기는모두가난,질병,사별등개인적상실과식민시대의역사적역경속에서조금더나은미래를그리는생존의서사다.

나아가『당신의파라다이스』는살아감의의미가되어주는사랑의여러얼굴을보여주는소설이다.강희를향한창석의헌신적인사랑,강희와창석에대한죄책감을떨치고책임감으로주변을보살피는상학의희생,이민공동체안에서여성들사이의연대의중요성을깨달아가는강희와나영의화해,이민자로혹독한노동을감내하며굳건해지는상학,창석,태호의형제애,사회적인종적계급적장벽을두려워하지않은스텔라의용감한사랑,스텔라를지키기위해고통스러운선택을강행하는심영의모성애,아들을잃은상학과아버지를잃은홍석이구축하는새로운가족의유대,고립과죽음에대한공포속에서도창석에게공존의안도감을가르쳐주는라니의슬픈사랑,깊은상처를입었음에도영적인각성으로공동체를지키는순례의자기해방등,무수한고난을넘어저마다자기만의낙원을꿈꾸었던이들의이야기가촘촘히얽혀멀고도가까운디아스포라의삶에바치는,그들이남긴사랑의힘에바치는노래를완성한다.

상학은운구차가교회를벗어나사라지는모습을끝까지지켜보았다.한사람의일생이저물어가는뒷모습이었다.어쩔수없이창석이몹시그리웠다.한사람의죽음이다른한사람의죽음까지불러와상실감을더했다.누가먼저가고나중에가는것은그리중요하지않았다.누구든한번은다시는돌아오지못하는곳으로갈뿐이었다.거기에승리나패배따위는존재하지않았다.살아냈다는것만남았다.심영과창석은자기방식대로그걸해냈다는생각이들었다.(390쪽)

저자의말

2013년,‘작가의말’첫문장을이렇게썼다.
“이소설은한시대를흔적없이살다간사람들에대한애도의한방식이다.”
지금도그마음은유효하다.
1903년,제물포항에서출발해태평양을건너하와이에도착한사람들의이야기는내게우연히찾아왔다.하와이대학교재학시절이었다.졸업필수과목중하나로소수민족사를수강해야했는데,나는이덕희선생님의‘하와이초기한인이민사’를망설임없이선택했다.대강아는내용일거라짐작했고,조금쉽게학점을받겠다는기대도있었을것이다.
그시대의이야기를소설로쓸거라는상상도,계획도없었을때였으나나는매번강의내용에마음을빼앗겼다.언제부턴가그시절그땅에서분명히‘존재했을법’한사람들의이야기가내게말을걸어왔다.모두빛나는조연들의치열한삶의이야기는오랫동안나와함께살았다.한국에서대학원첫학기를마친어느여름날,나는소설의첫문장을썼다.한국어문장이,그것도소설을쓴다는게어색하고많이서툴때였다.내가어떻게미친듯그시대속으로걸어들어가‘겁없이’초고를완성할수있었는지,여전히의문이다.‘이민대선배’들의삶을소설로쓰면서비로소나의자리를되돌아본것은아니었을까.이제야문득그런생각이든다.
_임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