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이웃비 (박지영 소설집)

이달의 이웃비 (박지영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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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나는 아무나가 아니잖아요.”
“그럼요?”
“나는,”

아무나와 누군가 사이,
매일 마주치는 이웃에게
이달의 이웃비를 지불했나요?

『고독사 워크숍』 박지영 첫 소설집
이웃이 되기 위한 필수 지출 비용
‘이웃비’에 대한 8편의 이야기

‘고독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은밀한 워크숍’을 다룬 장편소설 『고독사 워크숍』으로 화제를 모은 소설가 박지영의 첫 번째 소설집 『이달의 이웃비』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2010년 등단작 「청소기로 지구를 구하는 법」부터 2023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쿠쿠, 나의 반려 밥솥에게」까지 8편의 소설이 실렸다. 10여 년을 가로지르는 소설들은 모두 수많은 연결로 어지러운 세상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고독한 사람들이 맺는 관계를 들여다본다. 『고독사 워크숍』이 “고독사 워크숍을 시작하시겠습니까?”라는 초대장에서 시작했다면, 『이달의 이웃비』를 관통하는 질문은 ‘이달의 이웃비를 지불했나요?’다.

■ 이웃, 아무나와 누군가 사이
이웃이란 누구일까? 가까이 살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좋은 이웃’도 있지만, 어쩌면 이웃은 ‘아무나’와 ‘누군가’ 사이의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존재다. 잦은 마주침과 새어 나오는 소리로 누구보다 내밀한 정보들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척 지나치는 사람. 층간소음이나 이런저런 귀찮은 부탁으로 마주칠 일이 없을 때 가장 좋은 사람. 그러니까 서로 빚지지 않아야 좋은 관계. 빚을 지지 않는 것은 이웃뿐 아니라 친구와 가족 사이에서도 미덕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박지영의 소설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떤 이유로든 옆 사람에게 빚을 지고야 만다. 치매에 걸린 강만석(「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 정신 장애가 있는 병식(「이달의 이웃비」), 누군가의 후원이 필요한 미연(「경주는 왜냐하면」). 이들은 이웃의 도움이 있어야만 살 수 있고 어쩔 수 없이 이웃에게 불편을 끼친다. 살아가며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다.

■ 이웃비, neighborhood fee
소설집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이웃비’는 이웃에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의미한다. 『고독사 워크숍』은 “고독사하는 데도 돈이 든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데, 이때 ‘고독사 비용’은 월세와 장례비일 뿐 아니라 죽음 이후 나를 돌볼 이웃 사람들에게 치를 일종의 ‘이웃비’라고 할 수도 있겠다. 워크숍의 참가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고독사를 준비하며 서로 연결된다. 스치는 인사와 짧은 댓글은 모두 이웃에게 지불하는 ‘이달의 이웃비’다. 박지영은 우리가 살아가며 이웃비를 주고받는 순간들을 포착하며, “접속되는 모든 것이 서로의 안전을 위협”(「팀파니를 치세요」)하는 세상에서 타인과의 접촉이 외로운 이들을 건져내 살게 하는 순간들을 보여 준다.

■ 별것 아닌 것을 주고받기
이웃비는 별것이 아니기에 별것이다. 「경주는 왜냐하면」에서 경주는 미연에게 계속해서 ‘별것 아닌 것’을 건넨다. 가끔은 그것들을 별것이라고 착각하면서. 하지만 실제 그것이 별것인지 아닌지보다 중요한 것은 별것 아닌 것을 건네받아 그것을 허투루 써 버리는 것, 스스로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는 걸 경험하는 일이다. 결국 별것 아닌 것을 주고받는 마음이야말로 별것이다. 이 주고받음은 경주와 미연이 자신들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가게 만든다. 「누군가는 춤을 추고 있다」에서 ‘나’가 모욕당한 민주에게 건넨 작고 귀여운 와펜들은 두 사람이 서로가 겪어 온 모욕에 대해 이야기하며 함께 ‘모욕 모자’를 만드는 일로 이어진다.

■ 별것 아닌 것, 이웃비의 의미
별것 아닌 것, 쓸모없는 것들이 모여 가장 아름다운 것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데에 박지영 소설의 매력이 있다. 사람들이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물건들을 모으는 청소기 수리 기사는 자신이 모으는 쓸모없는 것, 먼지 덩어리가 아름다운 지구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청소기로 지구를 구하는 방법」) 좌표 위 어디에도 찍히지 못한 숫자, 정수가 아닌 허수들의 만남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허수의 탄생」) 별것 아닌 것들을 주고받으며 얽혀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독자들 역시 나도 모르는 새 건네받은 것, 손에 쥔 따뜻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저자

박지영

2010년《조선일보》신춘문예를통해등단했다.장편소설『지나치게사적인그의월요일』로2013년조선일보판타지문학상을수상했다.장편소설『고독사워크숍』이있다.

목차

쿠쿠,나의반려밥솥에게7
경주는왜냐하면63
이달의이웃비137
청소기로지구를구하는법225
내글에서냄새나?261
팀파니를치세요297
누군가는춤을추고있다347
허수의탄생397
작가의말443
작품해설447
결국은빈괄호에있다_김미정(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쿠쿠,나의반려밥솥에게
치매걸린아버지의간병인을자처한강선동은그대가로형과누나에게자신이제공하는서비스와애정에대한보상을요구한다.다정한말과포옹에대한비용은별도부과.하지만기대와달리돌봄노동에책정되는최소한의비용만을받게된강선동은치매걸린아버지의일상을영상화해인기유튜버가되려는꿈을꾼다.

*경주는왜냐하면
매듭장인인엄마의공방을물려받은경주에게는‘지독하게얽히고싶은’사람이있다.미연은자기를후원해달라고천연덕스럽게말하는여자애,꼴랑그만큼후원해줬다고자기인생에개입할생각은아니지않냐고당돌하게말하는여자애다.경주는성인이된미연이계속자기에게의지하기를바란다.‘침해적관계’를원한다.인류학자마거릿미드는다친사람을치유해준흔적,부러졌다붙은흔적이있는뼈가문명의상징이라고말했다.하지만어쩌면,곁에붙잡아두려고의도적으로부러뜨린뼈야말로인류문명의시작이아닐까?

*이달의이웃비
정신장애가있던형이죽었다.평생의짐이자두려움이었던형이죽은후,동석은당근마켓에서주기적으로이웃들과거래하는병식을만난다.병식은필요치않은물건을구매하고거리를청소하고실종된이들을찾아다닌다.이웃으로남기위해지불하는비용,이달의이웃비다.동석과형에게이웃은한번도되거나가질수있다고생각하지못한것이다.어쩌면동석도누군가의이웃이될수있을까?동석은병식과함께사라진이웃들을찾아다니기시작한다.

*청소기로지구를구하는법
남자는고객들의집에방문해청소기를고쳐주는수리기사다.잘못된방법으로청소기를사용하는수많은사람들.집안에서물건을잃어버리고도잃어버린줄모르는사람들.고객들의집에서고객들이잃어버린물건들을하나씩가져오면서,남자는자신도누군가잃어버린물건같다고생각한다.하지만언젠가는쓸모없는것들로가장쓸모있는것을만들수있지않을까?평범한누구든영웅이될수있는시대니까.“매일아침하찮은나자신으로살기위해깨어난다는것”은큰용기가필요한일이다.

*내글에서냄새나?
‘나’는개인홈페이지에「창조적살인을위한99가지제안」이라는만화를올리기시작한다.마지막100번째연재를앞두고,‘나’는알수없는냄새의원인을찾아방안의상자를연다.악취나는상자안에는‘나’의과거의얼굴아흔아홉개가들어있다.웃어야해서웃었던얼굴들.생존을위해뒤집어썼다가상자속에가둬버린초라한얼굴들.냄새나는얼굴들을하나씩꺼내어닦고서야100번째연재의상이그려진다.

*팀파니를치세요
시나리오「사이렌」은27년동안방공호에갇혀산남자의이야기다.남자의영상을보며주요멘트들을정리하고프리뷰대본을만드는것이연수의일.그런연수를피시방아르바이트생무영이지켜보고있다.무영은연수의입모양을따라말해본다.그런무영의목소리가폴리아티스트명에게전해진다.너무많은소리에지쳐버린명은무영이보내온영상을보다가그동안자신에게만들려왔던환청같은소리,뜻을알수없는단어를듣게된다.‘노포크의만두여왕님.노포크의만두여왕님.’

*누군가는춤을추고있다
구립아트센터에소품강좌를하러가던‘나’는민주가모욕당하는장면을목격한다.모욕하려는의지가분명한말들과그말을듣는사람.민주는황급히자리를떠나려는‘나’를불러세워자신의모욕을지켜봐달라고부탁한다.집으로돌아가는길,‘나’는민주의손에작고귀여운와펜들을쏟아놓는다.이후민주가‘나’를찾아와말한다.“모욕모자를만들고싶은데요.”모욕모자를만들기위해두사람은그동안모욕인줄도모르고받았던모욕들을꺼내놓기시작한다.

*허수의탄생
구시가지의가로수들이주사된독극물로인해죽는일이발생했다.도대체누가이런일을벌이는걸까?수학학원에서강사로일하는봉서는범인을찾아나선다.상가앞의죽은가로수를좌표(0,0)으로삼고걷기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