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들 (이동욱 장편소설 | 반양장)

핸들 (이동욱 장편소설 | 반양장)

$17.00
Description
“여보세요? 기사님 지금 어디 계세요?”

유령처럼 고요히 운전에 몰두하는 대리기사와
뒷좌석 가득 하루 몫의 이야기를 부려놓는 승객 사이,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흩어지고 마는 깊은 밤의 슬픈 독백들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후 시와 소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각적 세계를 단단히 구축해 온 이동욱의 첫 번째 장편소설 『핸들』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핸들』은 1년 차 대리기사인 화자가 매일 밤 고객의 운전대를 잡고 도시를 달리며 바라보는 한밤의 풍경, 켜켜이 쌓인 기억, 뒷좌석에서 날아드는 이야기 조각 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풀어낸 장편소설이다. 찻길을 중심으로 밤의 도시는 낮과는 또 다른 면모를 드러낸다. 저녁 무렵 서소문동 일대로의 출근부터,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의 늦은 밤 정체와 야경, 서울의 도시 구획과 역사, 휴대폰에 뜨는 콜을 기다리며 땅을 보고 걷는 대리기사들, 뒷좌석에 앉아 하루분의 삶을 쏟아내는 고객들까지. 술기운과 피로로 점철된 귀갓길, 혼곤한 머릿속은 오래된 기억과 오늘 막 생긴 상처들로 난장이다. 누군가 하루를 꼬박 버텨낸 뒤 기나긴 밤을 앞두고 있다면, 『핸들』을 펼쳐보기에 더없이 좋은 때다. 혼자 남고 나서야 겨우 내보일 수 있는 쓸쓸함을 책과 조금은 나누어 짊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이동욱

저자:이동욱
2007년《서울신문》신춘문예에시가,2009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이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여우의빛』,시집『우리의파안』『나를지나면슬픔의도시가있고』등이있다.

목차


낙하물9
나는나를기만한다14
폐소공포증에대한소수의견30
핸들41
내가가장예뻤을때71
인터뷰이81
밤을걷는기사105
흔들리는꽃들속에서121
경찰과변호사와빈체로132
모두가번화가를찾아서154
도로는검은뱀의등에서반짝인다164
신실한당신의이름은172
네손을위한판타지아191
그대의영혼은선택된하나의풍경200
제7의봉인216
나이트메어앨리226
내마지막내연기관231

작가의말242
작품해설_양윤의(문학평론가)244

출판사 서평

또하나의세계를운반하는밤의기사

차는운전자에대한수많은정보를품고있다.대리운전기사인‘나’는운전대를잡는순간차주의성격과성향,습관과강박을감각한다.그러나아이러니하게도대리기사는자신을지우는법부터배운다.달리는차안은고요하기그지없지만,‘나’는원치않아도들려오는고객에대한정보를지우고,자신의이름과나이,그리고자존심을지우고,그렇게자신을비워내는법을배우려분투중이다.침묵속에서치열하게자신을지워나가는대리기사와,하루치삶의무게를양어깨가득떠안은고객이앞뒤로앉은차는도시의혈관과도같은도로를불빛으로물들이며목적지로향한다.마침내고객의집에도착한뒤차에서내리면,도시를누비던하나의작은세계는막을내린다.핸들을잡는대신걷기시작한‘나’는또다른작은세계를만나기위해,그세계를이곳에서저곳까지운반하기위해,가벼운반주를하는직장인들이많은서울역인근순화동,서소문동,중림동일대를하염없이맴돈다.자신과마찬가지로휴대폰만들여다보는동료들을알아보면서,그리고그들을그저지나치면서.도시의밤은이토록길고,치열하며,고요하게이어지고있다.

또하루를매듭짓는마지막표정

‘나’는대리기사로일하며매일자신을지우는훈련을거듭하지만,그럼에도미처없앨수없는흉터들이있다.운전중갑작스레앞좌석으로넘어오는고객들의무례,대리기사로서의평가에치명적인영향을미칠접촉사고,아내의수술경과를기다리던병원복도의냄새.이처럼영영지울수없는상흔들은뒷좌석의고객역시품고있는터라,기억이불쑥고개를내밀때마다‘나’와고객의얼굴은나란히외로워진다.창문에스치는야경,그안의수많은사람과기억들을배경으로대리기사와고객은서로하루를끝맺으며짓는마지막표정의목격자가된다.떠올리는장면은저마다다를테지만꼭같은표정이되고마는이들의얼굴은도시가기나긴하루를마치며내보이는마지막모습이기도하다.그눈빛이손에잡힐듯생생한것은이들의고독이곧우리자신의,동시에우리곁의얼굴들이기때문이다.늦은밤귀갓길문득쓸쓸함에사로잡힐때면함께『핸들』을손에쥐어보자.서로의목격자가되는것만으로도해소되는감정들이있을것이다.

책속에서

나는1년차대리운전기사다.
이일을하면서지금까지나는일생동안만나볼모든유형의사람들을만났고,평생가보지못할곳을찾아다녔으며,상상만하던차들을운전했다.신발을보면그사람을알수있듯,차를운전해보면차주의성향을알수있다.과시욕강한사람,검소한사람,실용적인사람,허세가심한사람,꼼꼼한사람,강박증이있는사람,게으른사람.차주와대화하는일은드물지만,대신자동차가더많은얘기를해준다.
-「나는나를기만한다」에서,15~16p

대리기사는기본적으로운전에필요한최소한의동작과조작만가능하다.음악을바꿀수없고,뒷좌석으로고개를돌릴수없다.시선은언제나전방을향해있지만또다른시선을느낀다.뒷자리에앉아내뒤통수를바라보는,혹은대시보드위휴대전화를띄워놓은내비게이션을쳐다보는차주의시선을느낀다.확인할수없지만느낄수있다는점에서이건마치유령과같지않은가.그렇다면나는유령과함께운전하고있는것인가.
-「폐소공포증에대한소수의견」에서,32p

걷다보면어느순간알게된다.나는혼자걷고있구나.이시간에거리를걷는사람은없다.걷는사람을보면알게된다.어떤목적을가지고,분명한목적지를향해걷는사람은걷는자세부터다르다.모습이다르다.늦은밤,돌아가야할곳으로가는사람의자세에는긴장감이없다.편안한발걸음으로천천히풍경을즐기며걷는다.나는그렇지않다.나는누군가와함께걷지않는다.언제나혼자걷는다.콜이뜨기전에번화가로가야한다.콜이떴다면그콜을잡기위해그곳으로가야한다.목적지는수시로바뀌고그곳을향해최대한빠르게이동해야한다.아무도강요하지않지만모두그렇게하니까,그렇게해야한다고생각한다.경쟁은보이지않는순간에도이뤄진다.
-「밤을걷는기사」에서,117~118p

저끝까지가보죠.
끝까지요?
네.
거기도없으면어떡하죠.돌아나올길이있나요.
아니요.막다른길입니다.
돌아올수없는길.남자는아내와헤어졌다.자신을보고싶어하는아들이있지만보고싶을때마다볼수없다.매번잘못된선택이지금의그를만들었다.선택을되돌릴기회는몇번있었을것이다.하지만언제나그러지못한이유가그래야하는이유보다앞섰다.결국어떤결정도이상황을변화시키지못한다.
-「경찰과변호사와빈체로」에서,152~153p

대리기사도저마다출근하는곳이있다.아무곳에서나무작정일을시작하지않는다.다들몇번의경험을통해자신에게맞는출근지가생긴다.첫콜이중요하다.첫콜로좋은도착지를좋은가격에배정받아야한다.좋은도착지는다음콜을받기용이한곳.그리고그곳까지이동하는비용이높아야한다.내가출근하는곳은서울역인근순화동이다.순화동은빌딩밀접지역으로하루업무를끝낸회사원들이저녁식사겸반주를하고집으로가기위해대리운전을부르는일이많다.손님대부분이만취한경우는거의없으며매너가좋다.또한시청을비롯한관공서와도가깝다.또한서소문동과서울역뒤편중림동도빠른걸음으로도착할수있다.
-「모두가번화가를찾아서」에서,15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