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죄송한데요 (이기준 산문집)

저, 죄송한데요 (이기준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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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십여 년째 사장이자 직원, 가장이자 주부로 지내 온 프리랜스 북디자이너 이기준이 첫 단독 산문집『저, 죄송한데요』. 간단한 일을 결코 간단히 넘기지 못하는 ‘쫀쫀한’ 화자의 성격은 1밀리미터의 세밀한 조정을 통해 2차원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가꾸어 나가는 그래픽디자이너의 천성이기도 하므로, 답답함보다는 소소한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 『저, 죄송한데요』는 우리 이웃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친근성, 그리고 주변에 없다면 주변에 두고 싶은 친근성이 새삼 매력으로 다가오는, 에세이의 정통적인 미덕을 잘 보여 주는 산문집이다. 간간이 등장하는 일러스트는 주인공의 외모는 물론 성격과 개성을 빼쏘았는데, 이 정도로 자기를 객관화하는 능력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지만,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은 “사십 년 관찰해 겨우 얻은 결과물”이다.
저자

이기준

저자이기준은그래픽디자이너.첫직장은두달만에그만뒀다.직장다섯군데를거쳐지금은사장겸직원,공부,살림을병행하는험난하고스릴넘치는생활을유지하고있다.

목차

이책은목차가없습니다.

출판사 서평

소심한행동이라는일각밑에숨은빙산규모의망설임!
잘못은하지않았지만,일단은죄송합니다

“『저,죄송한데요』는좋아하는외투주머니에슬쩍넣고함께산책하고싶은책이다.도시생활인의면면이담긴치밀하고도익살스러운일상에첫페이지부터미소짓게된다.세세한아름다움을끈질기게추구하는사람들을위한작고근사한책이우리를찾아왔다.”?정세랑(소설가)

십여년째사장이자직원,가장이자주부로지내온프리랜스북디자이너이기준이첫단독산문집을소개한다.“사장으로,직원으로,가장으로,주부로지내는삶이어떤것인지잘안다……고큰소리치고싶지만”어느입장도온전히체화하지못했다는그이지만,한편으로는어느쪽에도치우지지않아도되는상황을풍요롭게느끼는태평한성격이다.북디자이너로는꽤명성을쌓았지만,에세이스트로서는생경한그의이름은이번책『저,죄송한데요』를통해독자들에게각인될희망이보인다.속표지를넘겨차례가나옴직한페이지에는“아마이쯤에서차례가나오리라여기셨겠지요.”라는화자의문장이독자의방문을반기는데,마치육성으로읊어지는듯하다.말그대로이책에차례는없다.아무페이지나넘겨지는대로시작해도무방한장편집(掌篇集)이다.다만화자의소심함과쫀쫀함에실소를터뜨리다가도몇개에세이를읽어가는동안,읽지않은꼭지를빠뜨리지않기위해어느샌가첫페이지부터성실히정독하게되는소박한마력이담겨있는책이다.
간단한일을결코간단히넘기지못하는‘쫀쫀한’화자의성격은1밀리미터의세밀한조정을통해2차원적인아름다움을발견하고가꾸어나가는그래픽디자이너의천성이기도하므로,답답함보다는소소한경의를표하고싶어진다.『저,죄송한데요』는우리이웃에게서발견할수있는친근성,그리고주변에없다면주변에두고싶은친근성이새삼매력으로다가오는,에세이의정통적인미덕을잘보여주는산문집이다.간간이등장하는일러스트는주인공의외모는물론성격과개성을빼쏘았는데,이정도로자기를객관화하는능력에는혀를내두를정도지만,저자의말을빌리자면이것은“사십년관찰해겨우얻은결과물”이다.

우스울정도의조심성과배려가먼저눈에들어옵니다

단순한의식주에도긴장이고조되는형국이있고기승전결,클라이막스가있었다는사실을알고있었는가.먹고,입고,자는일이이렇게나복잡한활동이었다니,이렇게복잡다단한활동을매일같이반복하고어려움을느끼지않았던우리들을칭찬하고싶다.“언제부터세상이천재들로넘쳐나는지”모르겠다는저자의먹고입는일을소개한다.

저좀도와주세요!눈앞에햄버거가있습니다.높이가20센티미터쯤되어보입니다.입에들어가기는커녕손에잡히기나할지모르겠습니다.나이프와포크가세팅된걸보니도구를사용해서먹으라는뜻인가봅니다.아슬아슬하게층층이쌓인내용물이흘러내리지않게포크로눌러압력을가한채나이프로왕복운동을?이등분으로썰기가최선일듯합니다.내용물이전부쏟아져내려도괜찮다는전제아래서요.
두덩어리를한입효과로먹기위해허겁지겁칼질하는모습이그다지세련되지않습니다.A와B를동시에먹는것이원래디자인된맛이겠지요.동작이경박하고게걸스러워보여도어쩔수없습니다.이과정이중반에치달으면맨밑에깔린빵은소스에범벅이돼짓이긴밀가루반죽처럼보입니다.하아……산란한풍경에눈을감고싶어집니다.도중에눈을질끈감는행위역시햄버거설계에포함된과정은아닐것입니다.?21쪽에서
이정도로비에대비할작정이라면우산을챙기는편이차라리낫지않을까하는의구심이다시솟아오릅니다.이럴때초심을지켜야합니다.우산을챙기지않기때문에대비하는것이니까요.83쪽에서

적재적소에도구를썼을때의명료함이느껴지지않는다면,제대로된먹는법을아직익히지못했음이리라.입는것역시마찬가지.우산을챙기면날이개고,우산을넣어두고나오면어김없이소낙비를맞는체험은수천만머피들에게생경한풍경은아니다.다만이책의주인공은우산을챙기지않을요량으로,생활방수소재의재킷부터,물이밑창으로새지않는구두,자전거페달닿는부분에옷감이새로덧대진바지를입는번거로운라이프스타일을자랑한다.

그이웃이겪는일상생활속서스펜스에는독자도편집자도식은땀을흘린다.건강검진을받으러가서“하루에몇끼드세요?”라는영양사의단순한질문에도쩔쩔매는주인공,첫번째질문과첫번째대답사이의간격이참을수없이길어지면서,첫번째대답과두번째질문이더가까워지는초유의사태가발생하는지점에서는손에땀이난다.
급성식중독으로데굴데굴구르는상황에서조차첫‘들것’경험에앞서양말을챙겨신을지자연스럽게맨발로오를지고민하고,고속도로에서만난생선트럭운전수의넉살좋은제안앞에서는동선과동작을고심하여생각할시간을번다.모든생활인(인간)은모험가랄만한데다가,때때로진짜모험다운모험이펼쳐지기도하는것이인생인가싶다.

영양사는손가락을자판에얹은채제입을뚫어지게쳐다보며대답을기다립니다.게다가제뒤로대기자가점점늘어납니다.한질문에쓸수있는시간이라도좀알려주면좋겠는데요.“이제삼십초남았습니다.”하고방울종을딸랑울려주는센스를바라는건세상물정모르는바보의투정일까요?

“그런데사람생활이일년내내같을수는없잖아요.온갖변수로가득하고,예외가언제생길지모르는데어떻게일주일에몇번이라고말하죠?올해엔두번생긴일이작년엔다섯번생겼을수도있고재작년에는스무번생겼을수도있는데,그걸일주일로압축해서패턴을찾는일이가능한가요?”“단순한질문이라보통은바로바로대답들하시는데요.”단순한질문이라니…….언제부터세상이천재들로넘쳐나는지모르겠군요.31쪽에서

들것에실리기는처음이라출발지는방이지만병원에도착하면바로병실침대로옮겨지는지우선맨바닥에내려서야하는지모르니까요.게다가오줌이라도마려우면화장실에가야하고.검색해보려다너무유난떠는듯해그만두고상식적으로판단하기로했습니다.응급상황이라는점을고려해맨발에신발만신기로마음먹었습니다.자다실려가는만큼맨발이아무래도자연스럽겠다고생각했습니다.이것도외출이랍시고양말까지챙겨신고온걸보면간호사들이놀릴지도모르니까요.95쪽에서

생선을가져가라고?돈도안내고?팔찌사기단처럼포장뜯게해놓고나중에돈달라는거아냐?그런데정말로그저선심쓰려는사람의뜻을잘못받아들이는거라면?그렇다면의심자체가몹쓸짓이겠지.선의의대가로의심을받는다면사람사이의불신이불어날테고이내세상은진짜로혼탁한곳이되겠지.……이건옳지않아.좋은사람에대한예의가아니야.하지만그반대라면?생선으로꾀어납치해달아난다면?아직젊고할일도많은데별로적성에맞지도않는새우잡이를하며여생을보낼순없잖아…….131쪽에서

책을덮으면그진지한삶의태도에웃음기가걷힙니다

엄마아빠가귀찮아할정도로호기심이왕성한아이이상으로,순진한동시에의구심많은어른의이야기는확실히우습고사랑스럽지만,자동적으로치르는많은일들속에사실은부자연스러운점이숨어있지는않은지반문하는에너지가올바르고정의로워서반갑기도하다.정상은언제부터정상이었고비정상은언제부터비정상이었을까.동의를하지않으면다음단계로넘어갈수없는액티브엑스같은삶속에서때로지치고낮게불평하고싶어지는때가우리모두에게있지않은가.

다만‘정상’이라는소견에한가지의문이들따름입니다.술을지나치게마시거나밥을불규칙하게먹은결과로위염이생겼다면정상이겠지요?나이먹는세월만큼줄곧신체를사용하기마련이니일부가닳아제대로작동하지않는다면그역시정상이겠지요?마흔해썼는데도신품과마찬가지라면비정상이겠지요?소견서의‘정상’이라는표현은어떤의미일까요?37쪽에서

“교환,환불은태그가제거되지않은상태로,구매영수증을가지고십사일이내에방문하시면가능하십니다.”사용전이라면문제가있는지알수없고사용후에는문제가있더라도교환이불가능해지는겁니다.교묘한술책아닙니까.인터넷으로뭘살때마다각종‘동의’버튼을눌러야하는것처럼요.말이‘동의’지동의하지않으면다음단계로넘어가지못하는데그게어찌동의란말인가요.한편으로는제탓도해봅니다.신발을신었을때의느낌을충분히전달했나하고요.상대는전문가일뿐점쟁이나독심술사는아니므로제가말하지않은사실을몰랐다는이유로비난할수는없겠지요.41쪽에서

물론모든인생에는교훈이있고뭇교훈은값지지만,값진만큼무거워야하는것만도아니다.쫀쫀한주인공의행동반경이잘고빈틈없기는해도치사하고인색하게느껴지지않는것은,‘인생’은비극적이고곤란해도‘인생들’은재미있고따뜻한희극풍이기때문이다.소시민적인내생활밖으로눈을돌리면나와비슷한,닮은,답답하고심심한다른인생들이있고,이‘인생들’이옹기종기모여만들어낸스펙트럼은꽤화사하다.이말쑥한산문집에서만나는교훈이바로이것이다.
이런일화가한보따리입니다.이쯤되면자신의안목이세상의공감을두루얻으리라확신하기힘듭니다.
자,그러면어떤사람들이디자이너를찾아올까요?당연히디자인의힘으로상품의위력을높이려는
사람들입니다.자신의취향이대중과거리가얼마나먼지깨달은마당에어떻게자신있게의견을펼치겠습니까.여기에어설픈겸손까지더해집니다.내견해가아무리마땅해보여도어디까지나내견해일뿐다른사람이옳을가능성은언제나있다는것.이렇게저는제의견을내세우지않는반쪽짜리디자이너가되었습니다.?11쪽에서
디자이너는쫀쫀해야합니다.“신은디테일에있다.”라는말도있지요.글자크기나선두께를정하려고소수점아래두자릿수수치까지쪼개어검토하곤합니다.폰트의쉼표모양이나마침표크기가마음에안든다며다른폰트와섞어쓰는건다반사고그과정에서미묘하게달라지는문자나구두점의높낮이를맞추기위해기준선을조정합니다.중점과대시등각종약물의전후간격도일일이고칩니다.149쪽에서

언젠가세상을지탱하는질서를발견하게되리라믿어왔지만그런건원래없을지도모릅니다.뿌리없이둥둥떠다니는것들이서로맞물리는힘의아슬아슬한균형으로겨우유지되는곳이세상일지도모릅니다.153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