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자기만의 방” 이후, 이 방을 채워 가는 일에 관하여
혹은 우리의 인생을 우리로부터 따돌리기 위하여 방 바깥을 헤매는 일에 관하여
혹은 우리의 인생을 우리로부터 따돌리기 위하여 방 바깥을 헤매는 일에 관하여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시적이고 미묘하며 감각적이고 외설적인 새 단어뿐 아니라 열정들의 새로운 서열이다. -「질병에 관하여」에서
20세기를 ‘옛날'로 부르는 데 어느 누구도 스스럼을 느끼지 않는 지금, ‘오늘날'이라는 낱말과 함께 근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빈번히 소환되는 이름,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을 넓은 강당에서 연설하던 그와 『등대로』에 가감없이 그려진 가정의 끈적한 그림자 속 딸 사이에는 몇 개의 연결고리가 빠져 있을까. 이 순간도 우리가 버지니아 울프를 가장 공적인 자리에서 언급하고 가장 사적인 자리에서 묵독하는 것은, 버지니아 울프가 평생 천착해 파고든 ‘자기'라는 주제가, 결국 우리 여성의, 우리 인간의 유의미한 케이스스터디인 까닭일 터다. 2019년의 마지막 달, 민음사 쏜살문고에서는 버지니아 울프의 내밀한 기록을 가려 뽑은 산문집과 회고록을 소개한다. 겉으로 드러내도 손상되지 않는 내밀함이 있으리라 믿으면서.
거리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거리는 드러나기도 가려지기도 한다. 여기 문들과 창문들이 대칭적으로 쭉 늘어선 거리들이 아득하게 이어진다. 저기 가로등 아래 섬처럼 떠도는 흐릿한 빛 사이로 남자들과 여자들이 환히 모습을 드러내며 재빨리 지나간다. 가난하고 초라한 행색임에도 그들은 어떤 비현실적 표정,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그들이 인생을 따돌렸기에 인생이 먹잇감에 속아 빼앗기고 계속 더듬거리는 듯이. -「런던 거리 헤매기」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인생의 주인이 나라고 믿는 이들에게, 인생의 먹잇감 역시 나라고 얘기한다. 가끔은 인생의 눈을 피하고 인생을 따돌려도 된다고, 그렇게 해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기를 바란다는 듯.
여러분은 지금껏 오로지 남성들만 소유했던 집에서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큰 노고와 노력을 들여야 하지만 임대료를 낼 수 있게 되었지요. 여러분은 연간 500파운드를 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유는 시작일 뿐입니다. 그 방은 여러분의 것이지만, 아직 휑하니 비어 있습니다. 그곳에 가구를 비치하고, 장식하고, 공유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가구를 비치하고 어떻게 장식할까요? 누구와 공유하고, 어떤 조건에서 공유하게 될까요? -「여성의 직업」에서
울프의 「자기만의 방」 선언 이후, “~만의 방" “~만의 것이 아닌 방"과 같은(닮았으나 닮지 않은) 논의가 나올 때마다 문득 매우 좁은 삶의 반경과, 나와 타인, 개인과 사회의 접촉에 대해 돌이키게 된다. 때로는 우리 삶을 그가 와서 봐 줬으면 싶다. 특유의 관찰력으로 무언가를 포착하고, 거기 관한 견해를 들려주고, 기꺼이 거절당할 수 있는 의견을 제안하는 울프와 ‘함께하고' 싶다. 이런 가정법의 희망을 떠올린 적 있는 이라면 「여성의 직업」이라는 말-글을 쉽게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휑하니 빈 ‘자기만의 방’을 채우고 공유하는 일을 자랑스레 당신에게 맡기는 그의 목소리는 분명 여운 이상의 언어다.
20세기를 ‘옛날'로 부르는 데 어느 누구도 스스럼을 느끼지 않는 지금, ‘오늘날'이라는 낱말과 함께 근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빈번히 소환되는 이름,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을 넓은 강당에서 연설하던 그와 『등대로』에 가감없이 그려진 가정의 끈적한 그림자 속 딸 사이에는 몇 개의 연결고리가 빠져 있을까. 이 순간도 우리가 버지니아 울프를 가장 공적인 자리에서 언급하고 가장 사적인 자리에서 묵독하는 것은, 버지니아 울프가 평생 천착해 파고든 ‘자기'라는 주제가, 결국 우리 여성의, 우리 인간의 유의미한 케이스스터디인 까닭일 터다. 2019년의 마지막 달, 민음사 쏜살문고에서는 버지니아 울프의 내밀한 기록을 가려 뽑은 산문집과 회고록을 소개한다. 겉으로 드러내도 손상되지 않는 내밀함이 있으리라 믿으면서.
거리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거리는 드러나기도 가려지기도 한다. 여기 문들과 창문들이 대칭적으로 쭉 늘어선 거리들이 아득하게 이어진다. 저기 가로등 아래 섬처럼 떠도는 흐릿한 빛 사이로 남자들과 여자들이 환히 모습을 드러내며 재빨리 지나간다. 가난하고 초라한 행색임에도 그들은 어떤 비현실적 표정,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그들이 인생을 따돌렸기에 인생이 먹잇감에 속아 빼앗기고 계속 더듬거리는 듯이. -「런던 거리 헤매기」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인생의 주인이 나라고 믿는 이들에게, 인생의 먹잇감 역시 나라고 얘기한다. 가끔은 인생의 눈을 피하고 인생을 따돌려도 된다고, 그렇게 해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기를 바란다는 듯.
여러분은 지금껏 오로지 남성들만 소유했던 집에서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큰 노고와 노력을 들여야 하지만 임대료를 낼 수 있게 되었지요. 여러분은 연간 500파운드를 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유는 시작일 뿐입니다. 그 방은 여러분의 것이지만, 아직 휑하니 비어 있습니다. 그곳에 가구를 비치하고, 장식하고, 공유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가구를 비치하고 어떻게 장식할까요? 누구와 공유하고, 어떤 조건에서 공유하게 될까요? -「여성의 직업」에서
울프의 「자기만의 방」 선언 이후, “~만의 방" “~만의 것이 아닌 방"과 같은(닮았으나 닮지 않은) 논의가 나올 때마다 문득 매우 좁은 삶의 반경과, 나와 타인, 개인과 사회의 접촉에 대해 돌이키게 된다. 때로는 우리 삶을 그가 와서 봐 줬으면 싶다. 특유의 관찰력으로 무언가를 포착하고, 거기 관한 견해를 들려주고, 기꺼이 거절당할 수 있는 의견을 제안하는 울프와 ‘함께하고' 싶다. 이런 가정법의 희망을 떠올린 적 있는 이라면 「여성의 직업」이라는 말-글을 쉽게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휑하니 빈 ‘자기만의 방’을 채우고 공유하는 일을 자랑스레 당신에게 맡기는 그의 목소리는 분명 여운 이상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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