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살아가는한,우리모두를찾아오는근원적인고독
어느죽음을둘러싼삶의이야기를통한고독의성찰
1928년9월12일오후두시삼십분부터세시까지,이제는은퇴한대령한사람,남편에게버림받은대령의딸,그녀의열살짜리아들이함께앉아있는그시간은기이할정도의고독과적막으로가득차있다.
지난밤,대령의친구인‘의사’가세상을떠났고이세명은의사의시체가마을묘지로향하기전시체를지키고있었다.그러나시체는사람들의반대에부딪쳐망자의안식을취할수없게된다.의사의죽음이자살이라는이유로신의대리인인마을사제도묘지매장을반대하고나섰으며,의사가정치적인혼란기에시민의편에서서민중봉기부상자들을치료하지않았다는이유로마을의대표인읍장도반대에표를들었던것이다.
시간이영원히멈춰버린듯한공간안에서아버지와딸과손자는저마다과거와현재와미래의일들을되새기며사람과사건과역사들사이에서거미줄처럼이야기를확대해나간다.
우리는죽은사람이있는집으로갔다.굳게닫힌방은더위로숨이막힐지경이다.거리에서태양이이글거리는소리가들린다.공기는콘크리트처럼꼼짝하지않는다.강철판을비롯해모든것을뒤틀어버릴수도있다는인상을준다.시체가놓인방은여행가방냄새가나지만,나는어느곳에서도그런가방을볼수없다.구석에그물침대하나가있다.그한쪽끝이고리에매달려있다.쓰레기냄새가풍긴다.우리는망가지고거의깨져버린것들로둘러싸여있다.
―본문중에서
이제나는읍장이마을사람들의깊은증오심에동조하고있다는걸안다.그것은십년동안쌓여온감정이다.그것은마을사람들이부상자들을진료실문앞으로데려와소리쳤을(의사가문을열지않고집안에서말했기때문에)때부터시작되었다.사람들은의사에게소리쳤다.“의사선생님,이부상자들을돌봐주세요.다른의사들은치료해주려고하지않아요.”그런데도문은열리지않았다.
―본문중에서
바나나회사가마을에들어오면서‘썩은잎’처럼변한사람들,모든부정한것들에서자기자신을유폐한어느기인,기묘한애정의화신이자소문의주인공인원주민하녀,부유하고아름답던시절에대한회상과세상의적개심에노출된무력감,바람에부유하는낙엽처럼수많은이야기와생각과감정이종횡무진펼쳐지는가운데마침내소설의시곗바늘은세상에서가장고독한죽음과그죽음을지키며각자의고독을견디는세사람을가리킨다.친구이자이웃이었던의사를위하여적개심에불타는마을사람들을향해밖으로나가려는그순간,오후세시.이책을펼친독자모두마지막장을덮는순간자신의삶에서가장고독한‘결정적순간’을경험하게될것이다.
■2014년타계한현대의거장이보여주는‘문학의원점’
가르시아마르케스의천재성을증명하는탁월한데뷔작
데뷔작은작가의천재성을증명하는데매우유효한단초이다.한사람의독자에서한사람의작가가되는순간,앞으로의운명을결정하는첫작품이기때문이다.그리고노벨문학상을수상하며전세계에라틴아메리카문학의‘붐’을일으켰던불세출의거장가르시아마르케스의이‘데뷔작’은결론부터말하자면처음부터완성된작가였던그의천재성을훌륭하게증명하고있다.
스타일,세계관,상징까지작가의작품세계를구성하는수많은요소들을데뷔작에서명료하게찾아내기란쉬운일이아니다.그러나이작품은강렬한이미지와막힘없는스토리텔링,책장을넘기는손을멈추지못하게하는탄력적인구성등가르시아마르케스특유의스타일이이미일정부분정립되어있을뿐만아니라생의터전이자삶의원류인가상의지역마콘도,일가를거치며내려오는연대적인역사의서술,거대자본이가져온파국의양상,치명적이고절대적인사랑,인간본연의고독등그가일관되게천착해온주제의식이생생하게살아있어놀라움을더한다.
이작품의진가는『백년의고독』,『콜레라시대의사랑』등무수한베스트셀러로전세계독자들의사랑을받는한편,높은문학적성취로평단과문단의갈채를받으며‘작가의작가’로이름을남긴가르시아마르케스의소설적토대를최초로한눈에조망할수있는작품이라는데에있다.또한마콘도라는마술적세계로들어가는길잡이로서,21세기독자들을포함한수많은세대를사로잡은마콘도세계를구체적으로처음다루었으며,마술적사실주의를이해하고그세계로들어가는데필수적인작품이기도하다.
매혹적인필력으로읽는이의마음을사로잡아온우리시대거장가르시아마르케스,그의이‘마술적’인데뷔작은환상적이고마법같은저기나긴이야기의‘원류’를만나는기회를선사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