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12.29
Description
전통적인 여성관에 도전하며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나혜석의 글과 삶!
한국 근대 페미니즘 작가 나혜석의 페미니즘 걸작선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이 책은 나혜석의 삶을 나혜석 자신의 글로 읽고자 하는 독자들을 위해 나혜석이 남긴 열일곱 편의 소설, 논설, 수필, 대담을 가려 뽑고 현대어로 순화하여 엮은 것으로, 근대 여성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연구하고 있는 장영은 성균관대학교 한국학연계전공 초빙교수가 시대상을 생생하게 전하는 해설을 덧붙여 이해를 도왔다.

모두 5부로 구성된 책의 1부에는 소설을, 나머지 부에는 논설, 수필, 인터뷰, 대담을 수록하였다. 1부에는 나혜석의 가장 대표적 단편 소설인 《경희》와 나혜석의 문학관을 파악하기에 유용한 단편 《어머니와 딸》을 담았다. 2부에는 나혜석이 여성의 연애와 결혼에 대해 쓴 글을, 3부에는 나혜석이 이혼 이후에 발표한 조선의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이혼고백장》과 여성에게만 정조를 강요하는 남성 이기주의를 고발하는 《신생활에 들면서》를 실었다.

4부에는 나혜석의 페미니즘 육아관을 엿볼 수 있는 기존의 모성 통념에 반하는 글을 모았다. 마지막으로 5부에서는 나혜석의 정치의식을 담은 글과 근대 신여성의 직업관에 대한 글을 만나볼 수 있다. 각 부의 말미에는 나혜석과 함께 이광수, 김기진, 김억 등 네 명의 문인이 1930년대 당시 미혼 남녀들이 결혼을 늦게 하는 풍조를 비평하는 《만혼 타개 좌담회》를 부록으로 담았다.
시대를 앞서간 여성 지식인 나혜석에게 글쓰기란 은밀하고 사적인 취미가 아니었다. 그녀는 글쓰기를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여성들과 소통하며,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와 맞서 싸우려 했다. 조선이 가진 정조 관념과 가부장제의 모순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여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후 가족과 사회 모두로부터 분노와 혐오의 표적이 되었음에도 글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죽기 직전까지 글을 썼던 그녀의 논설과 소설, 인터뷰 등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영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보아도 전혀 낡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도 많은 울림을 주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저자

나혜석

정월나혜석(晶月羅蕙錫,1896∼1948)은1896년경기도수원에서부나기정과모최시의사이에서5남매중넷째,딸로는둘째로태어난다.부나기정은시흥군수와용인군수를지낸개화관료였다.나혜석의초명은아지(兒只)였고,진명여학교입학시명순(明順)으로불렸으나,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졸업때는혜석으로개명한다.1913년3월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최우등으로졸업하고,둘째오빠경석의권유로일본으로유학하여도쿄시립여자미술학교서양화부선과보통과1학년에입학한다.

1914년12월도쿄조선인유학생잡지[학지광]제3호에최초의글「이상적부인」을발표하고,오빠경석의친구인최승구와연애관계를맺는다.1915년아버지의결혼강요로여주공립보통학교교원으로1년간근무하여학비를마련하고,11월복학하면서고등사법과1학년으로전입했으나제대로다니지못한다.12월아버지가사망하고,애인최승구는결핵에걸려귀국하여요양을한다.1916년최승구가사망한뒤오빠경석의강력한권유로김우영과교제를시작한다.1918년3월[여자계]제2호에나혜석의대표작이자문학사적가치를지닌단편소설「경희」를발표하고,'H.S.'라는필명으로시「광(光)」을발표한다.사립여자미술학교를졸업하고,4월에귀국하여모교인진명여학교에서교편을잡았으나건강이안좋아그만두고,집에서그림공부를한다.9월[여자계]제3호에『회생한손녀에게」를발표한다.

1919년3월박인덕한신준려한황애시덕한김마리아등과3한1운동에여학생참가를의논하고,개성과평양으로가서자금모금과만세운동확산을위해이정자한박충애와만나의논한다.이화학당학생들이만세를부른사건으로체포되어5개월간옥고를치른후풀려난다.1920년김우영과결혼하고그와함께전남고흥군에있는최승구의묘지에찾아가비석을세우고돌아온다.1921년임신9개월의몸으로경성일보사내청각에서유화개인전람회를연다.4월첫딸을낳고,7월[신가정]창간호에「규원」을발표한다.9월만주안동현부영사로부임하는남편을따라만주로이주하고,1922년3월여자야학설립을주도한다.6월조선총독부주최제1회조선미술전람회유채수채화분야에출품한「봄」,「농가」가입선한다.

1923년1월첫딸을임신하여낳고돌이될때까지의심리적·육체적변화를솔직히기록한「모(母)된감상기」를발표한다.6월제2회조선미술전람회에「봉황성의남문」이4등,「봉황산」이입선한다.이후해마다조선미술전람회에유화를출품하여입선하며,1926년제5회조선미술전람회에「천후궁(天后宮)」이특선,「지나정(支那町)」이입선한다.1926년4월[조선문단]에『원한』을발표한다.

1927년만주안동현살림을정리하고귀국하여동래시집에서지내다가,6월남편과함께구미여행길에오른다.시베리아횡단열차를타고모스크바를거쳐파리에도착한다.스위스한벨기에한네덜란드등을여행하고,법률공부를위해남편이베를린으로간사이파리에서야수파화가인비시에르의화실에다니면서그림공부를한다.10월천도교도령(道令)으로파리에온최린을만나예술을논하고여행을하는과정에서연애관계를맺는다.1929년귀국하여9월수원에서'구미사생화전람회'라는제목으로전시회를연다.1930년김우영이서울에서변호사사무실을열었으나경제적으로어려웠고,파리시절최린과의연애에관한소문이나서남편과의관계가악화되고결국은이혼한다.

이후나혜석은실의를딛고그림작업에몰두하여계속조선미술전람회에출품해서좋은평가를얻는다.1932년금강산해금강에서제13회제국미술원전람회에출품하기위해그림을그리다가불의의화재로10여점밖에건지지못해충격을크게받는다.1933년생계와그림활동을위해서울종로구수송동에'여자미술학사'를열고운영한다.1934년김우영과만나연애하고결혼하고이혼하기까지의개인적인생활과심경을솔직하게서술한『이혼고백장』([삼천리],1934.8∼9)을발표한다.이글에서여성에게일방적으로강요되는정조관념을비판함으로써사회적논란을불러일으켰다.

그뒤사회의냉대로점점소외되었다.1935년생활비를벌기위해전시회를열었지만주목받지못했다.수덕사·해인사등을전전하며유랑생활에들어가정확한행적을알수없다.1946년서울자혜병원에서행려병자로쓸쓸히인생을마감했다.

조선최초의여성서양화가이자문인,언론인으로파격적인작품과사회비판적주장을통해봉건적제도와인습이라는금기에도전했다.다양한예술분야에서기념비적인작품들을남기며가부장제타파와여성의식화에주춧돌을놓았다.

목차

서문_장영은자기삶을스스로이야기하는여성의탄생

1부최초의근대여성문학
경희
어머니와딸

2부연애와결혼
독신여성의정조론
이상적부인
부처(夫妻)간의문답
우애결혼,시험결혼

3부사랑과이혼
이혼고백장
신생활에들면서

4부모성과육아
모(母)된감상기
백결생(百結生)에게답함
내가어린애기른경험

5부정치와삶
나혜석신문조서
나의여교원시대
회화와조선여자
내가서울여시장된다면?
영미부인참정권운동자회견기
나를잊지않는행복

주(註)
추천의글_이민경여성이직접기록한역사

출판사 서평

100년을앞서간페미니스트나혜석의아름다운투쟁
“여자이기전에사람이되기를원한다!”
영페미니스트를위한새로운나혜석선집

■나혜석에게글쓰기는‘사회적실천’
한국근대페미니즘작가나혜석의페미니즘걸작선『나혜석,글쓰는여자의탄생』이민음사에서출간되었다.열일곱편의소설,논설,수필,대담을가려뽑고현대어로순화한이책은나혜석의삶을나혜석자신의글로읽고자하는독자들에게보다나은독서경험을제공할것이다.그뿐만아니라근대여성지식인의삶과사상을연구하고있는장영은성균관대학교한국학연계전공초빙교수가시대상을생생하게전하는해설을덧붙여이해를도왔다.
나혜석의논설은(논설뿐만아니라소설이나인터뷰역시)지금영페미니스트의시각에서보아도전혀낡지않았다.약100여년이지났지만오히려생생하게살아숨쉬는듯하다.나혜석에게글쓰기는‘은밀하고사적인취미’가아니었다.그녀는글쓰기를통해자기존재를증명하고,여성들과소통하며,여성에게억압적인사회와맞서싸우려했다.

“남자는칼자루를쥔셈이요,여자는칼날을쥔셈이니남자하는데따라여자에게만상처를줄뿐이지.고약한제도야,지금은계급전쟁시대지만미구에남녀전쟁이날것이야.그리고다시여존남비시대가오면그사회제도는여성중심이될것이야.무엇이든지고정해있지않고순환하니까.”
―장영은,서문중에서(9쪽)

상대자의불품행을논할진대자기자신이청백할것이당연한일이거든남자라는명목하에이성과놀고자도관계없다는당당한권리를가졌으니사회제도도제도려니와몰상식한태도에는웃음이나왔나이다.마치어린애들장난모양으로너그러니나도이러겠다는행동에지나지아니했사외다.
―「이혼고백장」에서(178쪽)

그녀가이혼이후에쓴수기인「이혼고백장」에서보듯이,나혜석은자기생애를스스로공개적으로이야기했다는사실하나만으로도나혜석은페미니즘의기수로서충분한자격을갖추었다.또한나혜석은여성이글을쓰는행위자체가사회적실천이라고믿었다.단편소설「어머니와딸」에서나혜석이지닌사회적실천으로서의문학관을엿볼수있다.

공부를하면무엇을전문하겠어?/문학이요./문학?좋지./어렵지요?/어렵기야어렵지만잘만하면좋지.영애는독서를많이해서문학을하면좋을터이야.사람은개인적으로사는동시에사회적으로사는것이사는맛이있으니까.좋은창작을발표하여사회적으로한사람이된다면더기쁜것이없는것이야.
―「어머니와딸」에서(80쪽)

■페미라이터나혜석의글과삶,100년을앞서가다

나는열여덟살때부터20년간을두고어지간히남의입에오르내렸다.즉,우등1등졸업사건,M과연애사건,그와사별후발광사건,다시K와연애사건,결혼사건,외교관부인으로서의활약사건,황옥(黃鈺)사건,구미만유사건,이혼사건,이혼고백서발표사건,고소사건,이렇게별별것을다겪었다.
―「신생활에들면서」에서(218쪽)

나혜석이밝힌바와같이그녀는당대시대를앞서간여성지식인이었으나희대의스캔들에휩싸여35세에이혼한후고된말년을보냈다.그럼에도불구하고그녀는많은글을남겼으며,논설과문학을넘나드는문필활동을통해전통적인여성관에도전했다.
당시많은이들을자극한사건은외도와이혼사건이었다.남편김우영이경제적으로어려움을겪자나혜석이최린에게돈을부탁하는편지를보낸것이화근이었는데,그사실을알게된김우영은나혜석에게이혼을요구한다.결국1930년나혜석과김우영의결혼생활은끝이났다.나혜석의기구하고도억울한이혼과정은그가생전에일부번역하기도한희곡『인형의집』과거울의상처럼닮아있다.헨리크입센의로라도남편의병간호를위해빌린돈이화근이되어모든비난을뒤집어쓰고이혼당했다.
이혼이후나혜석은대중잡지《삼천리》에당대조선이가진정조관념과가부장제의모순을비판하는「이혼고백장」과「신생활에들면서」를발표하여사회적논란을일으켰다.그후가족과사회모두로부터분노와혐오의표적이된그녀는식민지조선에서철저하게패배한듯하다.1938년8월이후더이상글을발표하지못했기때문이다.그럼에도불구하고그녀는글을손에서놓지않았다.유족과관련기록에따르면그녀는죽기직전까지글을썼다.원고를“쌓은높이가적어도50센티미터는”되었지만,“원고더미가다락에쌓여만있다가6·25전쟁이나면서난리통에모두없어지고말았다.”고한다.가족의냉대속에신산한삶그러나불꽃같은삶을살다간나혜석이남긴글은100년이지난지금도많은울림을주고있다.

그녀의생애를몰락혹은파국으로표현하는사람들이있지만동의하기어렵다.나혜석은“자기를잊지않고살아가는데”패배란없다고생각했다.심지어고통도그녀에게는부차적인것이었다.“우리의가장무서워하는불행이언제든지내습할지라도염려없이받아넘길수있을것이다.거기에아무러한고통이있을지라도그고통중에서일신일변할지언정결코패배를당할이치는만무하다.”나혜석의말은옳다.이제그녀의글을다시읽어보려한다.나혜석은여성이말을하고여성이글을쓸때세상은달라진다고믿었다.그녀의목소리가널리전해지길바란다.
―장영은,서문중에서(12~13쪽)

■책의구성:신여성나혜석이남긴논설,소설,인터뷰,대담
이책은5부로구성하였다.1부에는소설을,나머지부에는논설,수필,인터뷰,대담을가려뽑았다.
1부에는나혜석의가장대표적단편소설인「경희」와나혜석의문학관을파악하기에유용한단편「어머니와딸」을실었다.특히「경희」는최초의한국근대여성문학으로,여성지식인으로서봉건적가부장제와인습에어떻게맞서싸워야할지고민하는나혜석의모습이담겨있다.2부에는나혜석이여성의연애와결혼에대해쓴글을가려뽑았다.가장대표적인페미니즘논설인「이상적부인」은‘현모양처는그야말로세속적가치에그칠뿐결코이상적인여성의모델이될수없으며,온양유순이라는개념또한여성을노예로만들기위해사용된것’이라는주장이담겨있는글이다.나혜석이김우영과결혼생활중에발표한「부처(夫妻)간의문답」에는남편김우영과의대화를공개했다.또한인터뷰‘우애결혼,시험결혼’에서는이혼의비극을막기위해시험결혼이필요하며,시험결혼기간동안에는산아제한이필요하다는전위적인결혼을소개하고있다.3부에는나혜석이이혼이후에발표한조선의가부장제를비판하는「이혼고백장」과여성에게만정조를강요하는남성이기주의를고발하는「신생활에들면서」를실었다.4부에는나혜석의페미니즘육아관을엿볼수있는기존의모성통념에반하는글을모았다.모성신화를부정하는논설「모된감상기」는당시에는물론현재로서도급진적인페미니즘논설중하나이다.마지막으로5부에는나혜석의정치의식을담은글과근대신여성의직업관에대한글을모았다.
각부의말미에는나혜석과함께이광수,김기진,김억이렇게네명의문인이1930년대당시미혼남녀들이결혼을늦게하는풍조를비평하는「만혼타개좌담회」가부록으로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