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본 역사 (개방, 경합, 공생 / 동아시아 700년의 문명 교류사)

바다에서 본 역사 (개방, 경합, 공생 / 동아시아 700년의 문명 교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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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 동아시아 역사에 관한 내용을 담은 전문서적입니다.
저자

하네다마사시

도쿄대학이사겸부학장.도쿄대학동양문화연구소교수.역사학자.이슬람건축사와근세이슬람사를전공했다.1953년에오사카시에서태어나,조부하네다도루(羽田亨)와부친하네다아키라(羽田明)를이어동양사를전공했다.교토대학사학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원에서서남아시아사석사과정을수료한후파리제3대학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자신의전공인아시아의역사와문화를주제로하는책을다수펴냈으며,국내에소개된책으로는『동인도회사와아시아의바다』와『17~18세기아시아해항도시의문화교섭』,『새로운세계사』가있다.

목차

프롤로그바다에서본역사로의초대
1우리의바다지도
2바다의환경과배

1부열려있는바다,1250~1350년
1시대의구도
2해역교류의무대배경과주역들
3해상이확장하는해역교류:개방성의확대
4몽골의충격이가져온것:개방속의폐쇄성
5물품과기술의왕래:저변의확대와쌍방향성

2부경합하는바다,1500~1600년
1시대의구도
2대왜구시대:동아시아무역질서의변동
3해상들의시대
4다양하고뒤섞인문화의전개

3부공생하는바다,1700~1800년
1시대의구도
2해상들과‘근세국가’의‘공생’
3교류와거류의압축과집중
4바다를넘나드는물품과정보

참고문헌
책을마치며
집필자·집필협력자
옮긴이후기

출판사 서평

바다를중심으로다시쓴동아시아700년의역사

동아시아의역사에서바다는어떤의미일까?오늘날동중국해와남중국해에서분쟁이끊임없이일어나는까닭은무엇일까?『바다에서본역사』는동아시아의바다가고요하고정체된바다였다는기존의통념을깨뜨린다.동아시아의바다는상인과해적,승려,선교사,이주자등다양한개인과집단이활발하게경쟁하고공존한무대였다.바다의바람과물결은지식과정보,문화,상품,군대를실어나르며교류를촉진해동아시아세계를하나로연결했다.바다를육지와동등한역사의공간으로서조망한이책은지난700년간동아시아의바다에서펼쳐진역동적인드라마를전지구적관점에서추적한다.이를통해오늘날의동아시아세계와그흐름을만들어낸토대가바다에서비롯되었음을밝힌다.

육지의역사에서벗어나해역사의새로운지평을열다
스물여덟명의역사가가완성한동아시아사의마스터피스

우리는흔히역사를육지에기반을둔국가를중심으로이해하려고한다.땅에발을디디고살아가기에당연한일이라고볼수도있지만,그러다보면시야가좁아지는일을피할수없다.일국사의관점에머물기에십상이고,고개를든다고하더라도몇몇이웃만이눈에들어온다.그러나바다의관점에서보는역사는다르다.바닷길을통해연결된수많은이웃이시야에잡히면서인식의범위를크게확장한다.『바다에서본역사』에서바다는육지의부속물이나자연의경계가아니라‘해역’이라는주체적인역사공간으로제시된다.
이책은여러역사가가모여명확한문제의식을토대로함께만들었다는점에서주목할만하다.도쿄대학부학장인석학하네다마사시를필두로일선에서활발하게활동하는소장학자들에이르기까지스물여덟명이참여했다.각자독립된글을쓰는대신에유기적으로연결된하나의글을썼다는점도돋보인다.저자들은약3년간에걸쳐모임을거듭한끝에각자가전공하는한국사와중국사,일본사,베트남사,류큐사,대외관계사,해역아시아사,회화사,문학사,문화사,고고학,군사기술교류사등을아우르는통섭적인결과물을만들어냈다.그결과한·중·일삼국에그치지않고동남아시아와인도양,유럽까지다룰뿐아니라,정치와경제,외교,문화,사상까지망라하는책을내놓을수있었다.집단지성의힘을유감없이발휘한셈이다.
이책의저자들은바다에서본동아시아의역사를다음과같이크게세시기로나누어구체적으로서술한다.

1부:1250~1350년,열려있는바다
2부:1500~1600년,경합하는바다
3부:1700~1800년,공생하는바다

한국어판의번역에는고려대학교역사교육과의조영헌교수와정순일교수가참여해번역의완성도를높이고전문성을더했다.기존의역사관을바꾸어놓는이책은우리에게는비교적낯설고생소한해역사가무엇인지보여주는동시에역사에접근하는새로운패러다임을제시함으로써역사서술의영역을확장한문제작이라고할수있다.

개방,경합,공생-세가지키워드로보는바다의역사

“개방”:세계제국몽골이바닷길을잇고동서교류를촉진하다
서양의도약은대항해시대를기점으로시작되었다고보는것이일반적이다.여기에바다로진출한서양과는달리문을걸어잠근동양은결국뒤처지고말았다는논리가뒤따른다.이러한통념을『바다에서본역사』는정면으로반박한다.동아시아에서바다는미지의영역이아니었다.이미당제국시절부터중국의대도시와항구는바다를건너온상인과사절,승려로붐볐다.바다와그건너편에서온사람과물품은익숙한존재였다.
13세기에등장한몽골(원)은동아시아의바다가지닌개방성을더욱강화했다.유라시아를아우르는제국이탄생하면서‘팍스몽골리카(몽골의평화)’시대가도래함에따라바닷길또한전보다더긴밀하게연결되었다.이탈리아의마르코폴로와모로코의이븐바투타는이시기에중국을여행하면서세계최대의항구인천주의번영에관해기록을남기기도했다.한편원제국의개방적인태도는동아시아에무역의활황을가져오기도했지만,군사적긴장또한불러일으켰다.원은고려와연합해일본을공격하고동남아시아의자와(자바)섬을침공함으로써바다까지지배하려는의도를드러냈다.

“경합”:유럽세력이등장하고동아시아의바다가지구전역과연결되다
16세기에이르러동아시아의바다는격변을맞이했다.명제국의해금(海禁)정책과조공체제가흔들리면서전통적인질서가무너지는가운데유럽인들이본격적으로무대에올랐다.1571년에는에스파냐가필리핀에마닐라시를건설함으로써멕시코의아카풀코와연결되는태평양항로가탄생했다.『바다에서본역사』는지구전역을연결하는무역이시작되면서나타난경쟁의양상에주목한다.1591년에에스파냐령필리핀을다스리는총독은중국의복금지령을반포했는데,이듬해에국왕펠리페2세에게올린보고에는그내막이잘드러난다.

유감스럽게도화인(중국인)과의무역은유해합니다.그들은이제도에서대량의은을해외로반출해버리기때문에그것은금지해야합니다.주요한무역품은면포입니다만,화인은현지에서원료인면화를수입한후그것을짜서수출하고있습니다.(……)그외에화인이들여오는것은극히조악한싸구려면입니다만,생사와방적(紡績)한실도운반해옵니다.우려스러운것은후자는에스파냐본국에서수입하는양을넘어서고있기때문에그라나다와무르시아,발렌시아(의견직물업자)로부터오는왕실의세수입에손실을입힐것입니다.

총독이경계하고우려했는데도필리핀의은은계속해서중국으로유출되었다.바다를건너유입되는중국산물품의홍수앞에당해낼도리가없었던탓이다.중국산물품은페루에도도달했다.에스파냐에정복당한인디오유력자들조차중국산물품을쓸정도였다.싼값의‘메이드인차이나’때문에현지산업이쇠퇴하는현상은400여년전에도다를것이없었다.중국산물품은필리핀뿐만아니라지구반대편그라나다에있는견직물업자의시장도빼앗았다.

“공생”:육지의정치권력강화와함께해양세력들이자립성을상실해가다
중국에서는명이청으로교체되고,일본에서는에도막부가성립하면서육지의정치권력은그어느때보다도강성해졌다.동아시아각국은강해진힘을바탕으로해양세력들을공격하기시작했다.청제국은대만을점령했고,에도막부휘하에있는사쓰마번은오키나와의류큐왕국을침공했다.『바다에서본역사』는육지의정치권력이바다를어떻게통제하고활용했는지를보여준다.
류큐왕국은사쓰마번에패했는데도멸망하지않았다.그대신에사쓰마번과에도막부의속국이되었다.다만대외적으로는일본에복속된사실을숨기고계속해서중국에조공을바쳤다.일본은류큐왕국이중국을상대로조공무역을하면서얻는이득을노렸던것이다.그렇다면이러한사실을당시에청에서는몰랐을까?여러정황을볼때청은류큐왕국이일본에복속되었음을이미알고있었다.하지만류큐왕국이청에고개를숙이는한굳이그사실을들추어내려하지않았다.
이처럼실리를중시하는자세는국가간무역에서도발견된다.조선과일본은큰전쟁을치렀는데도쓰시마를매개로교류를지속했다.나가사키를방문한청의상인들에게일본이무역허가증인신패(信牌)를발급받으라고요구했을때도청의강희제는외교문제로삼지않았다.청과일본사이에는정식국교가없었지만,강희제로서는명분을크게해치지않는한무역에서얻는이득이더중요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