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세상이 지금과 달리 흥미진진하던 시절, 당대의 예술가들과 어울리던 지식인이자 작곡가였던 대니얼은 이제 동네에서 늙은 동성애자라는 소문에 휩싸여 산다. 어린 엘리자베스는 우연히 학교 숙제로 이웃 사람 인터뷰를 하러 그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와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이십 년 후, 엘리자베스는 대니얼의 영향으로 미술사를 전공한 대학 강사가 되고, 백한 살이 넘은 대니얼은 요양원에서 주로 잠들어 꿈을 꾸며 지낸다. 그 ‘투표’ 이후 엘리자베스가 겪는 매몰찬 도시의 분위기와 차가운 사람들, 대니얼의 꿈속에 복기되는 옛 시절에 대한 추억들, 그리고 그와 쌓은 우정의 근원과 영향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추억들을 오가며 순환을 이루던 이야기는 점차 늦가을을 향해 나아간다.
■ 현재 영국 사회를 진단하는 ‘포스트 브렉시트’ 소설
매일 아침 그녀는 어쩐지 속아 넘어간 것 같은 기분으로 잠에서 깬다. 그러면 어느 쪽에 투표했든 속았다는 기분으로 일어나는 사람이 온 나라에 몇 명이나 될까 하는 것으로 생각이 이어진다.(본문 256쪽)
『가을』의 배경은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전후의 시점이다. 탈퇴 찬성 51.9%, 반대 48.1%로 근소한 격차로 여론이 나누어진 영국 사회는 반으로 갈라져 뒤숭숭해졌다.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브렉시트 논의는 이 소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니얼이 문화적 축복 아래 보낸 20세기 중반과 2010년대 현재의 모습과의 비교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소설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그렇다고 거대한 역사 소설은 아니다. 삼십 대인 엘리자베스가 스쳐 지나가는 동네 풍경들, 관공서에서 대기하는 주민들의 모습들이 배경처럼 등장인물들을 휘감으며 현재 영국이 어떤 분위기인지 생생히 전달한다. 특히 엘리자베스가 여권을 새로 신청하기 위해 우체국에서 하염없이 순서를 기다리거나 우체국 직원과 대화하며 ‘머리 크기가 규격에 맞지 않기 때문에’ 여권 신청을 거절당하는 장면은 이 사회가 가진 관료주의적 성격을 정확히 꼬집는 명장면이다.
청구서를 꾸며서 인쇄하기도 지극히 쉬운 일이에요. 어떤 사람인 척하기도 마찬가지죠. 엘리자베스가 말한다.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또 어떻고요? 인쇄된 종잇장에 이름이 박혀 있다는 게 어떻게 자신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죠?(본문 138쪽)
특히 엘리자베스의 ‘신분 증명’에 대한 논의는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데, 급하게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가지만 증명할 방법이 유효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대학교 교직원증밖에 없는 장면은, 현재 한국에서도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는 고등교육법안 이슈를 떠올리게 한다. 대학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르는 시간강사의 처우와, 그와 무관하게 돌아가는 시스템의 횡포는 눈여겨볼 만하다.
한편 엘리자베스의 엄마 웬디는 작품 내내 딸 엘리자베스와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로 등장한다. 웬디는 딸이 나이 든 동성애자와 우정을 나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딸이 공부하는 예술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게 반응해 딸과 항상 마찰을 빚는다. 한마디로 기존 사회에 순응하며 현재에 대해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웬디는 한국의 「TV쇼 진품명품」과 비슷한 영국 TV 프로그램에 일반인 출연자가 되면서, 사라지고 잊힌 영국의 골동품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새롭게 전환된다. 엘리자베스가 미처 몰랐던 그녀의 과거에 대한 열정과 또 그 프로그램 출연으로 인해 새로이 맺어진 조이와의 동성애 관계를 아우르며, 웬디는 전통의 가치를 간직한 동시에 변화가 가능한 인간의 모습으로 새롭게 조명한다. 이렇듯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을 품은 채 혼란스럽기 이를 데 없는 한 나라의 다양한 인물들이 ‘가을’이라는 계절적 키워드와 함께 천천히 순환해 나가는 모습을 앨리 스미스는 함축적 장면 묘사와 대화들을 통해 군더더기 없는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 타자를 포용하는 이웃의 가치
엘리자베스는 어릴 적 ‘이웃과 인터뷰하기’ 숙제를 하기 위해 옆집 노인 대니얼 글럭의 집을 방문하려고 하지만, 엄마는 대니얼이 늙은 호모라는 소문이 있다면서 가까이 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결국 엘리자베스는 대니얼과 친구가 되며, 대니얼은 십 대의 그녀의 삶에 가장 중요한 가치들을 일깨우며 엘리자베스가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하게끔 도와주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 바깥의 일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영국, 스코틀랜드, 유럽, 비유럽 등 사람들은 끊임없이 선을 긋고 ‘나’와 ‘타자’를 구분 지으려 한다. 이미 유럽 사회는 난민 문제로 인해 큰 홍역을 겪고 있다. 터키 해변에서 발견된 세 살 난 아이의 주검 문제는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된 적 있다. 작가는 작품의 첫 부분부터 그 장면이 떠오르는 장면을 삽입했는데, 이는 독자들을 향해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알려 주는 상징적인 행위인 셈이다.
그는 해안에 널려 있는, 조수에 밀려온 시체들을 바라본다.
아주 작은 아이의 것들도 있다. 그는 부풀어 오른 한 남자의 시체 옆에 쪼그려 앉는다. 지퍼로 잠긴 남자의 상의 속에서 아이가, 아니 아기가 입을 벌린 채 바닷물을 흘리고 있다. 부풀어 오른 남자의 가슴에 머리를 대고 죽어 있다.(본문 25쪽)
타자 혐오는 어제오늘 일의 일이 아니며 다만 변화하는 세계 속에 자리 잡고 있던 문제가 이제는 수면 밖으로 터져 나오는 시기이다. 난민에 대한 포용 문제는 유럽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제주 예멘 난민 사태에서 보듯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단계에 있다. 이때 문학은 무엇을 전달할 수 있는지 앨리 스미스는 우아하고도 날렵한 태도로 사회의 현 모습을 가리킨다.
온 나라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옳은 일을 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른 일을 했다고 느꼈다. 온 나라에서 사람들은 구글에서 “유럽 연합은 무엇인가”를 검색했다. 온 나라에서 사람들은 구글에서 “스코틀랜드 이주”를 검색했다. 온 나라에서 사람들은 구글에서 “아일랜드 여권 신청”을 검색했다. 온 나라에서 사람들은 상대방을 잡년이라고 불렀다. 온 나라에서 사람들은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다.(78~79쪽)
늙은 동성애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로 확대된다. 소설 속 엘리자베스는 대니얼 덕에 옳고 그름을 고민하는 깊이 있는 인간으로 성장했으며, 대니얼 역시 사회적 소수자로서 비참한 삶의 노년을 맞이하는 게 아니라, 엘리자베스라는 가까운 이의 도움으로 자신이 이루어 낸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 곁에서 인간적 존엄을 지키며 보낼 수 있게 된다. 이웃이 되는 경험은 특별하다는 것을,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시간은 인간이 서로 미워하고 울타리를 쳐도 영원한 순환을 반복하리라는 것을 앨리 스미스는 이 소설을 통해 역설한다. “왜 하필이면 그 사람인데?” 하고 엄마가 묻자 “우리 이웃 사람이니까요.”라고 말한 어린 엘리자베스의 말은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명장면 명대사’일 것이다.
■ 변치 않는 창조의 중요성
대니얼은 십 대인 엘리자베스에게 다양한 인문적 감수성을 질문과 대답의 방식을 통해 깨닫게 한다. 대니얼은 작곡가였으며, “세상이 지금보다 더 흥미진진하던” 시절에 다양한 예술가, 지식인과 교류하던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단 한 명 사랑했던 여자는 실존 인물인 영국의 팝아티스트 ‘폴린 보티(Pauline Boty)’로, 작가는 이 예술가의 실제 이야기에 허구인 대니얼의 이야기를 섞어 솜씨 좋게 풀어낸다. 여성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던 시기에 눈부시게 활동하다 짧은 생을 마감한 폴린 보티, 그리고 그녀의 작품 도록을 헌책방에서 발견해 그녀를 평가절하하는 지도교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정하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무심한 세상 속에서도 번뜩이는 창조력을 지닌 이들과 그들을 알아봐 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만든다. 허구의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어린 엘리자베스의 질문에 대한 대니얼의 대답은, 소설가가 이야기를 짓는 행위에 대한 가치에 대한 작가의 확고한 신념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을 만들어 내는 건 아무 의미 없어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실제 세상이 이미 있으니까요. 그냥 세상이 있고, 세상에 대한 진실이 있어요.
네 말은 그러니까 진실이 있고 그것의 가짜 버전이 따로 있는데 우리는 그 가짜를 듣고 산다는 거로구나. 대니얼이 말했다.
그게 아니라 세상은 실재해요. 이야기들은 만들어지고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덜 진실인 건 아니지. 대니얼이 말했다.
그건 초강도 헛소리예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만들어 낸단다. 대니얼이 말했다. 그러니까 늘 네 이야기의 집에 사람들을 반겨 맞으려고 해 보렴. 그게 내 제안이다.(본문 157~158쪽)
■ 현재 영국 사회를 진단하는 ‘포스트 브렉시트’ 소설
매일 아침 그녀는 어쩐지 속아 넘어간 것 같은 기분으로 잠에서 깬다. 그러면 어느 쪽에 투표했든 속았다는 기분으로 일어나는 사람이 온 나라에 몇 명이나 될까 하는 것으로 생각이 이어진다.(본문 256쪽)
『가을』의 배경은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전후의 시점이다. 탈퇴 찬성 51.9%, 반대 48.1%로 근소한 격차로 여론이 나누어진 영국 사회는 반으로 갈라져 뒤숭숭해졌다.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브렉시트 논의는 이 소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니얼이 문화적 축복 아래 보낸 20세기 중반과 2010년대 현재의 모습과의 비교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소설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그렇다고 거대한 역사 소설은 아니다. 삼십 대인 엘리자베스가 스쳐 지나가는 동네 풍경들, 관공서에서 대기하는 주민들의 모습들이 배경처럼 등장인물들을 휘감으며 현재 영국이 어떤 분위기인지 생생히 전달한다. 특히 엘리자베스가 여권을 새로 신청하기 위해 우체국에서 하염없이 순서를 기다리거나 우체국 직원과 대화하며 ‘머리 크기가 규격에 맞지 않기 때문에’ 여권 신청을 거절당하는 장면은 이 사회가 가진 관료주의적 성격을 정확히 꼬집는 명장면이다.
청구서를 꾸며서 인쇄하기도 지극히 쉬운 일이에요. 어떤 사람인 척하기도 마찬가지죠. 엘리자베스가 말한다.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또 어떻고요? 인쇄된 종잇장에 이름이 박혀 있다는 게 어떻게 자신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죠?(본문 138쪽)
특히 엘리자베스의 ‘신분 증명’에 대한 논의는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데, 급하게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가지만 증명할 방법이 유효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대학교 교직원증밖에 없는 장면은, 현재 한국에서도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는 고등교육법안 이슈를 떠올리게 한다. 대학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르는 시간강사의 처우와, 그와 무관하게 돌아가는 시스템의 횡포는 눈여겨볼 만하다.
한편 엘리자베스의 엄마 웬디는 작품 내내 딸 엘리자베스와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로 등장한다. 웬디는 딸이 나이 든 동성애자와 우정을 나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딸이 공부하는 예술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게 반응해 딸과 항상 마찰을 빚는다. 한마디로 기존 사회에 순응하며 현재에 대해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웬디는 한국의 「TV쇼 진품명품」과 비슷한 영국 TV 프로그램에 일반인 출연자가 되면서, 사라지고 잊힌 영국의 골동품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새롭게 전환된다. 엘리자베스가 미처 몰랐던 그녀의 과거에 대한 열정과 또 그 프로그램 출연으로 인해 새로이 맺어진 조이와의 동성애 관계를 아우르며, 웬디는 전통의 가치를 간직한 동시에 변화가 가능한 인간의 모습으로 새롭게 조명한다. 이렇듯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을 품은 채 혼란스럽기 이를 데 없는 한 나라의 다양한 인물들이 ‘가을’이라는 계절적 키워드와 함께 천천히 순환해 나가는 모습을 앨리 스미스는 함축적 장면 묘사와 대화들을 통해 군더더기 없는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 타자를 포용하는 이웃의 가치
엘리자베스는 어릴 적 ‘이웃과 인터뷰하기’ 숙제를 하기 위해 옆집 노인 대니얼 글럭의 집을 방문하려고 하지만, 엄마는 대니얼이 늙은 호모라는 소문이 있다면서 가까이 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결국 엘리자베스는 대니얼과 친구가 되며, 대니얼은 십 대의 그녀의 삶에 가장 중요한 가치들을 일깨우며 엘리자베스가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하게끔 도와주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 바깥의 일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영국, 스코틀랜드, 유럽, 비유럽 등 사람들은 끊임없이 선을 긋고 ‘나’와 ‘타자’를 구분 지으려 한다. 이미 유럽 사회는 난민 문제로 인해 큰 홍역을 겪고 있다. 터키 해변에서 발견된 세 살 난 아이의 주검 문제는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된 적 있다. 작가는 작품의 첫 부분부터 그 장면이 떠오르는 장면을 삽입했는데, 이는 독자들을 향해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알려 주는 상징적인 행위인 셈이다.
그는 해안에 널려 있는, 조수에 밀려온 시체들을 바라본다.
아주 작은 아이의 것들도 있다. 그는 부풀어 오른 한 남자의 시체 옆에 쪼그려 앉는다. 지퍼로 잠긴 남자의 상의 속에서 아이가, 아니 아기가 입을 벌린 채 바닷물을 흘리고 있다. 부풀어 오른 남자의 가슴에 머리를 대고 죽어 있다.(본문 25쪽)
타자 혐오는 어제오늘 일의 일이 아니며 다만 변화하는 세계 속에 자리 잡고 있던 문제가 이제는 수면 밖으로 터져 나오는 시기이다. 난민에 대한 포용 문제는 유럽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제주 예멘 난민 사태에서 보듯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단계에 있다. 이때 문학은 무엇을 전달할 수 있는지 앨리 스미스는 우아하고도 날렵한 태도로 사회의 현 모습을 가리킨다.
온 나라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옳은 일을 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른 일을 했다고 느꼈다. 온 나라에서 사람들은 구글에서 “유럽 연합은 무엇인가”를 검색했다. 온 나라에서 사람들은 구글에서 “스코틀랜드 이주”를 검색했다. 온 나라에서 사람들은 구글에서 “아일랜드 여권 신청”을 검색했다. 온 나라에서 사람들은 상대방을 잡년이라고 불렀다. 온 나라에서 사람들은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다.(78~79쪽)
늙은 동성애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로 확대된다. 소설 속 엘리자베스는 대니얼 덕에 옳고 그름을 고민하는 깊이 있는 인간으로 성장했으며, 대니얼 역시 사회적 소수자로서 비참한 삶의 노년을 맞이하는 게 아니라, 엘리자베스라는 가까운 이의 도움으로 자신이 이루어 낸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 곁에서 인간적 존엄을 지키며 보낼 수 있게 된다. 이웃이 되는 경험은 특별하다는 것을,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시간은 인간이 서로 미워하고 울타리를 쳐도 영원한 순환을 반복하리라는 것을 앨리 스미스는 이 소설을 통해 역설한다. “왜 하필이면 그 사람인데?” 하고 엄마가 묻자 “우리 이웃 사람이니까요.”라고 말한 어린 엘리자베스의 말은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명장면 명대사’일 것이다.
■ 변치 않는 창조의 중요성
대니얼은 십 대인 엘리자베스에게 다양한 인문적 감수성을 질문과 대답의 방식을 통해 깨닫게 한다. 대니얼은 작곡가였으며, “세상이 지금보다 더 흥미진진하던” 시절에 다양한 예술가, 지식인과 교류하던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단 한 명 사랑했던 여자는 실존 인물인 영국의 팝아티스트 ‘폴린 보티(Pauline Boty)’로, 작가는 이 예술가의 실제 이야기에 허구인 대니얼의 이야기를 섞어 솜씨 좋게 풀어낸다. 여성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던 시기에 눈부시게 활동하다 짧은 생을 마감한 폴린 보티, 그리고 그녀의 작품 도록을 헌책방에서 발견해 그녀를 평가절하하는 지도교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정하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무심한 세상 속에서도 번뜩이는 창조력을 지닌 이들과 그들을 알아봐 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만든다. 허구의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어린 엘리자베스의 질문에 대한 대니얼의 대답은, 소설가가 이야기를 짓는 행위에 대한 가치에 대한 작가의 확고한 신념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을 만들어 내는 건 아무 의미 없어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실제 세상이 이미 있으니까요. 그냥 세상이 있고, 세상에 대한 진실이 있어요.
네 말은 그러니까 진실이 있고 그것의 가짜 버전이 따로 있는데 우리는 그 가짜를 듣고 산다는 거로구나. 대니얼이 말했다.
그게 아니라 세상은 실재해요. 이야기들은 만들어지고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덜 진실인 건 아니지. 대니얼이 말했다.
그건 초강도 헛소리예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만들어 낸단다. 대니얼이 말했다. 그러니까 늘 네 이야기의 집에 사람들을 반겨 맞으려고 해 보렴. 그게 내 제안이다.(본문 157~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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