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방 (전석순 소설집)

모피방 (전석순 소설집)

$13.00
Description
“아내가 방을 비우는 동안
너는 아버지가 떠난 세탁소를 비워야 했다.”

삶이 자꾸만 허술한 테두리만 남아도
가족의 얼굴이 낯설고 희미하게 떠올라도
나를 둘러싼 것들이 전부 사라지지 않도록
힘을 빼며 버티기, 휘청이며 균형을 잡기
200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해, 2011년 『철수사용설명서』로 제11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소설가 전석순의 첫 번째 소설집 『모피방』이 출간되었다. 제목인 '모피방'은 한때 중국에서 유행했던 인테리어 방식으로, 내부에 기본 골조 외에 어떤 다른 옵션도 없는 방을 뜻한다. 이 방은 기본적인 인테리어가 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화장실이나 부엌 등 기능이 명확한 곳 역시 정해져 있지 않아 세입자의 결정에 따라 직접 배관이나 수도 공사를 해야 한다. 애초의 의도는 리모델링이 필요 없이 처음부터 취향대로 인테리어를 할 수 있도록 비워 둔 방이었으나,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주로 소득이 낮은 이들이 이곳을 찾게 되었다. 취향대로 인테리어를 할 수 없는 이들이, 변기도 수도도 놓여 있지 않은 텅 빈 방에 들어가 지내게 되는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과 무한한 갈팡질팡의 대명사처럼 보이는 모피방이라는 공간의 방식. 전석순의 소설에는 그 방식을 닮아 눈이 부시게 하얗기만 한 날들 앞에서 알맞은 자리를 찾으려는 이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자리는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에 의해, 혹은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지고 만 사회 재난에 의해 휘청이고 무너지거나 사라진다. 작가는 막막한 삶의 소용돌이 앞에 조용히 서서 가만히 손가락을 꼽아 보는 인물들을 그려 낸다. 자신에게 닥친 일들이 자신의 잘못인지, 슬퍼해도 괜찮은지,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같은 것들을 생각하는 이들. 전석순의 인물들은 눈이 멀 듯한, 거리와 깊이를 알 수 없는 백색의 고통 속에서 천천히 과거를 되짚어 보려고, 미래를 가늠해 보려고 애쓴다. 오래 서 있다 보면 원근감과 방향감을 잃을 듯한 평면의 날들이 지속되어도 입체의 생을 살기 위해, 질감과 색감을 찾기 위해 다시 자세를 잡는다. 자신이 걸어온 거리와 걸어갈 방향을 찾으려 노력하는 이들이 『모피방』에는 있다. 휘청거릴지언정 균형을 잡고 포기할지언정 버텨내는 인물들은 소설을 읽는 우리가 삶에서 백색 공간을 마주했을 때 각자의 방향 잡기를 도와줄 것이다. 우리는 이 수줍은 도움을 받아 모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갈 것이다.
저자

전석순

《강원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장편소설『철수사용설명서』로〈오늘의작가상〉을받았다.장편소설『거의모든거짓말』,중편소설『밤이아홉이라도』가있다.

목차

모피방7
사라지다43
때아닌꽃79
달걀113
수납의기초149
회전의자183
벨롱217
전망대253
작가의말285
작품해설
빛과그림자의세계_임정균(문학평론가)290

출판사 서평

■서로다른세계사이에자리잡기
작가는오랜시간을견뎌왔으나이제는사라질일을앞둔과거의공간과예비가불가능하고지속이불안정한현재의공간을나란히놓는다.수록작「회전의자」는고향에서물난리가발생해손에잡히는것만건져임시대피소에머무는어머니와그곳을떠나홀로자신의좁은공간을꾸려가야하는딸의통화로시작한다.젖지않은곳이없고아무리기다려도마르지않는축축한마을과금세눈알이뻑뻑해지고흘린눈물도흔적없이메말라버리는건조한자취방이나란히놓인다.표제작인「모피방」에는'너'의부부가곧입주하게될,아직기능도역할도채워지지않는백색의새집과'너'의아버지가평생동안운영해온빽빽하게걸린옷과세탁기계들로가득찬낡은세탁소가나란히등장한다.화자는자신이속해있었고속하고있는두세계를오가며축축함과버석거림사이에선자신의삶들을생각한다.두세계사이에선인물들의마음은약하지만결코작지않다.자신이담겼던곳과담길곳을생각하는마음은커다란존재감으로두세계사이에자리를잡는다.비록사라질세계와미정인세계사이에웅크리듯자리를잡았으나,작가가그리는인물들은휘청이기만하지않는다.선자리에언젠가단단히뿌리를내릴수있도록,"울상처럼보이지않도록"웃어보려는의지를심어둔다.

■결국하나가아닌우리의자리
전석순이그리고자하는서로다른세계는비단보금자리뿐만이아니다.사람과사람사이에서,관계속에서우리의자리에적힌이름이얼마나많은지,단일하지않은지에대해서얘기한다.수록작「수납의기초」의아버지는철거현장에서일하던노동자로,현장에서일어난사고이후해고된실직자다.부당하게해고를당한피해자인동시에그로인한경제난을함께짊어져야하는가족에게는'미안하다'는말을건네지않는무심한아버지이자남편이기도하다.수록작「달걀」의화자역시복잡다단한상황속에서거듭자리가바뀐다.어느날학교선생님으로부터걸려온전화는화자의아이가학교폭력을저질렀다고알린다.화자는가해자의어머니인동시에장사를하던상가건물에서일어난화재사고로다친남편을둔피해자의아내다.상가에서알고지내는상인들사이에서역시그녀는추모비건립을지지하거나반대하는사람들의격렬한차이그한가운데있다.화재사고를잊지말아야한다는마음과털어버릴것을털어버리고다시상가로사람들이모였으면하는마음사이에.작가는함부로정의내릴수없는관계의자리에대해모노톤의색채를입히고조용한내레이션을얹어보여준다.선명한색채가아니어서유심히들여다봐야하고,작은목소리기에귀기울여야하는것.그것이바로우리모두가서게될하나가아닌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