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니스와프렘은작품의특성과주제에따라풍자와익살,그로테스크,블랙유머,언어의유희,패러독스와아이러니를적재적소에구사하였다.외계의낯선생명체와맞닥뜨린인간이겪는소통의문제,미지의존재와의갈등을통한인간본성에대한성찰,그리고기술의진보에따른인류의미래에대한탐구는렘의소설을관통하는주제다.이른바‘접촉삼부작’에해당하는『에덴』(1959)과『솔라리스』(1961),『우주순양함무적호』(1964)를비롯하여『행성으로부터의귀환』(1961),『주의목소리』(1968),『우주비행사피륵스이야기』(1968)등이이러한주제를집중적으로다룬다.그밖에도신랄한풍자와익살,그로테스크한작법이돋보이는우화적블랙코미디『이욘티히의우주일지』(1957)등이욘티히연작과『욕조에서발견된회고록』(1961),그리고‘로봇삼부작’이라일컬어지는『로봇의서』(1961),『로봇우화』(1964),『사이버리아드』(1967)가있다.소설뿐아니라특유의날카로운비평과자유분방한예술적상상력,치밀한과학적사고가어우러진논픽션(회고록,논평집,강연록,대담집,에세이등)을다수발표했고,가상의도서에대한서평과서문이라는참신한메타픽션장르를개척하기도했다.렘의작품은사십여개언어로번역되어전세계에서4500만부이상판매되었다.
렘에게SF문학이란‘인식의지평을여는실험실’이었다.그래서렘은진정한SF라면지금까지누구도생각지못한것을시도해야한다고믿었다.이러한작가적신념을반영하듯렘은20세기중반에이미인공지능과가상현실(시뮬레이션세계),검색엔진,유전자복제와수정,나노기술,e북과오디오북,항성공학,온라인교육등첨단과학기술의도래를정확히예측하면서우리시대에광범위한영향을끼쳤고무수히많은사람과다채로운분야에영감을불어넣었다.문학과철학,물리학과수학,역사학과종교학,우주학과생명공학등인류의거의모든성취를아우르는그의웅대한상상력은지금이순간에도생생히박동하고있다.
1961년에출판된『솔라리스』는폴란드를넘어세계SF소설의클래식으로자리매김했지만,놀랍게도제대로된영어번역본이나온시기는렘이사망하고난뒤인2011년이다.폴란드문학전공자인빌존스턴이최초로폴란드어원전을번역하여출간하기전까지영미권독자들이읽은버전은프랑스어판에서영어로중역된판본이었다.프랑스어판자체가원전의내용을임의로축약한데다오역도더러있었으므로이판본을통해중역된영어판또한여러문제를안고있었다.지금까지도종이책형태로독자에게판매되는영어판은바로이문제의중역본이다.폴란드어원전에서한국어로직접번역한이번민음사판『솔라리스』는폴란드어를제2의모국어로삼는최성은역자의애정과공력이돋보이는수작이다.
“크리스,한가지더물어볼게있어요……내가……당신의그녀와……진짜로닮았나요?”
“정말많이닮았다고생각했는데,사실지금은잘모르겠어.”내가대답했다.
“그게무슨말이죠……?”그녀가바닥에서일어서며커다란눈망울로나를마주보았다.
“당신의모습에가려지고난지금은아무생각도안나거든.”
“그런데당신은……당신이사랑하는게,그여자가아니고……나라는걸……확신해요?”
“물론이지,나는당신을사랑해.만약당신이본래의그녀였다면,사랑할수없었을지도몰라.”―본문에서
세차례에걸쳐영화화될정도로대중과아티스트의호감을산『솔라리스』를단순히로맨스로분류할수는없지만,‘타인’이라는영원한미지와의조우를절절히그려낸아름다운소설임은부정할수없다.작가의말을빌리면“어딘가에확실히존재하지만,인간의개념이나생각,이미지로는담아낼수없는어떤미지의대상과인간이서로만나는비전”을담아낸결과물이바로『솔라리스』다.우주공간을배경으로펼쳐지는이아름답고도기묘한텍스트는크게두축을중심으로전개된다.심리학자인크리스켈빈이‘솔라리스’라는미지의행성을탐사하기위해우주정거장으로갔다가십년전에자살한연인하레이를예전모습그대로마주하게되면서,불가사의한사건에휘말리는내용이주축을이룬다.또다른축에는주인공이자작중화자인켈빈이우주도서관에보관된문서와자료를열람하며읽어내려가는,솔라리스에대한인류의지난한연구와탐험의역사가있다.
인간은자신의내부에있는어두운구석이나미로,막다른골목,깊은우물,그리고굳게닫힌시커먼문들에대해서는제대로알지도못하면서,다른세계,다른문명과접촉하기위해머나먼행성까지진출하고야말았다.―본문에서
“다른문명과의접촉과교류.우리는지금그접촉을실현하는중이라네!현미경으로들여다보듯이우리자신의추악함과어리석음,그리고수치스러움과대면하게된거지.그것도엄청나게확대된형태로말야.”―본문에서
우리는주인공크리스가맞닥뜨리는기이한현상들을목도하며,그리고솔라리스학의장대한연구사를읽으며끊임없이의문을품게된다.두개의태양주위를공전하는솔라리스행성의정체는무엇인가?솔라리스의바다는무슨이유로우주정거장의연구자들에게‘손님들’을보내는가?F-형성물의중성미자가파괴되는것은인간의관점에서죽음과동일하다고볼수있는가?솔라리스의바다가복제를반복하며만들어내는미모이드는인간과의소통을원한다는의사표시인가?그렇다면솔라리스는인류의적인가,친구인가?
인간의이해력과사고력을훌쩍뛰어넘는솔라리스의수수께끼를풀기위해백년이넘는세월동안수많은과학자와탐사자,사상가들이온갖가설과추측,탐사와분석을시도하지만,소설의대단원에이르러서도명확히밝혀지는것은아무것도없다.결국솔라리스학의유구한역사가저장된거대한도서관이입증하는사실은단하나,솔라리스연구의‘불가지론’이다.그렇게소설『솔라리스』는제기된모든의문과질문,탐구와학설에관해확실한매듭짓기를거부한채끝을맺는다.도식적인정답을제시하기보다는모른다는자각을유도함으로써『솔라리스』는우리를고정관념이나편견이배제된,자유로운사색의너른땅으로데려다준다.‘소유’와동일시되는‘이해’의지평을넘어,타자와의진정한통섭으로나아가고자하는독자라면,이러한헤맴이필시반가울것이다.
솔라리스의바다를핵무기로파괴해야한다는청원이제기된것은,솔라리스연구가시작된이래,그때가처음이었다.하지만그것은단순한복수보다훨씬가혹한방식이었다.우리가이해할수없는것은모두파괴해야한다는식의대응책이었기때문이다.―본문에서
우리는고통이반복된다는걸알고,이러한무수한반복을통해고통이점점우스꽝스러운것이되고,우스꽝스럽기에그고통이더욱깊어진다는사실을알지않는가.인간존재의반복적인재생은그렇다고치자.하지만술에취한주정뱅이가주크박스에동전을넣고계속해서틀어대는진부한멜로디처럼재생할수밖에없는걸까?(……)하지만내안에는아직일말의기대감이남아있다.그것은그녀가내게남긴유일한자취다.내가여전히기대하는완결과환멸과고통은어떤것일까?나는아무것도모른다.그러나잔혹한기적의시대가아직은끝나지않았음을나는굳건하게믿고있다.―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