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말 혹은 침묵 : 아니 에르노 장편소설

그들의 말 혹은 침묵 : 아니 에르노 장편소설

$14.00
Description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에게 가닿기를 갈망하지만
끝내 고독의 언저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배반당한 청춘의 기록
저자

아니에르노

1940년9월1일프랑스릴본에서태어나노르망디이브토에서성장했다.프랑스작가이자문학교수이다.루앙대학교에서문학을공부한뒤중등학교교사,대학교원등의자리를거쳐문학교수자격을획득했다.자전적요소가강한그녀의작품들은사회학과밀접한관계를이루고있다.유년시절과청소년기를노르망디의소읍이브토Yvetot에서보냈고,노동자에서소상인이된부모를둔소박한가정에서태어났다....

목차

그들의말혹은침묵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가끔내게비밀이있다는느낌이든다.그런데비밀은아니다.그것에대해누군가에게말하고싶은욕구가없고,누군가에게말할수있는성질의것도아니니까.-본문에서

“내삶에서불가피하게직면해야했던시기가있습니다.바로1958년의여름,나의열일곱살무렵말입니다.나는그시기를사회역사적으로그려내기를바랐고,이를테면오토픽션의방법으로『그들의말혹은침묵』을썼습니다.”-아니에르노

『그들의말혹은침묵』은아니에르노의두번째장편소설로,작가의초기작중에서도가장실험적인글쓰기와문체를선보인독특한작품이다.이작품의문학적관심사와주제의식은데뷔작『빈옷장』,세번째장편소설『얼어붙은여자』의테두리에서크게벗어나지않는다.아니에르노는『그들의말혹은침묵』에서도여지없이‘여성’과‘노동자계급출신’이라는자신의조건을집요하게파고든다.즉문학을통해이두가지지위(계급과성)가사회적규범속에서어떠한역학관계를가지고표리부동하게작동하는지를잔인할정도로,‘사회학적자기성찰’이자‘문학적사회과학’이라할수있을만큼신랄하게들여다보는것이다.특히이번작품에서는작품의주제를드러내고조형해내는‘말’에집중해볼필요가있다.아니에르노의글은작가의이름을가리고읽어도대번에알아챌수있을정도로독특한음성,스타일을지닌다.이른바‘칼같은글쓰기’,‘밋밋한(평평한)글쓰기’라고불리는그것말이다.언젠가“나는경험하지않은것을쓰지않”고,“노동자계급에속한부모님에게편지를쓸때의언어로글을쓴다.”라고작가스스로밝힌바있듯이,그의독창적문체는주제의식(자신의계급과성정체성)과깊이결부되어있다.아니에르노의문학적신조를그대로반영하듯,이번작품의화자,즉중학교를졸업하고고등학교입학을앞둔사춘기소녀‘안’의이야기는딱그시기의언어(비속어와은어,준말등),의식의흐름(가다듬어지지않은성마른충동)을따라서경이로울만큼핍진하게그려진다.『그들의말혹은침묵』은바로이러한아니에르노의글쓰기,그시작과발전과정을오롯이살필수있다는점에서귀중할뿐아니라,거장의문학적변곡점(혹은전환점)을목도할수있다는의미에서흥미롭다.

우리부모는노동자니,난그들의현재모습이아니라그들이말하는것이되어야만한다.여전히지금도교사가되고싶긴하지만,거기도달할수있을지모르겠다.늘걱정스럽게바라보면서,정말신경질나게해,아버진.맨날책에코를처박고있으면골치가안아프냐?독서가그의강점은아니다.기껏해야지역신문《파리-노르망디》나읽고중앙일간지《프랑스수아르》를조금읽는정도니.가끔,글을읽을때방심하면입술을우물거린다.어쩌면그가옳을지도.공부는너무힘들다.-본문에서

난그가이렇게거칠게행동하는까닭이,이를테면,그가다른사람의뒤를이어받은셈이어서그러는것임을깨달았다.틀림없이그는내내생각했던거였다.난,그가이전에함께잤던여자들을궁금해하지않았다.그가그러는이유는제대로밝혀지지않았는데,그에게난남자를밝히는여자로만,그것말고는다르게보이지않음을느꼈다.숙소로날만나러와.거절했다.돌아가는길에,그는내마음에들었던그여자교관이자기여자라고말했다.걔귀에아무런말도들어가지않는편이낫겠지만,오,뭐,중요하지않아.처음으로남자애들과나사이에무시무시한구렁이생겨났다.-본문에서

『그들의말혹은침묵』은사회적성공의첫단추라고할수있는명문고등학교에진학한주인공‘안’이작문과제를받으면서시작한다.항상글을쓰고싶어함에도노동자계급의부모로부터아무런언어(이른바문학적이고교양적이며학식있는언어)를물려받지못한주인공은자신이뿌리박혀있는조건(경험)과고등교육기관의담론사이에서비틀거린다.‘안’은가까스로지난여름방학의기억을길어올린다.부르주아와엘리트를경멸하는듯굴다가도정작그들에게벌벌떨며동경하고숭배하는,노동자계급의삶을딸에게결코대물림할수없다면서발악하는주인공의부모는매일같이‘안’을닦달하고,혹시나(계급의사다리위에서)삐끗할까봐노심초사한다.하지만이미부모의품,그들의언어와사유로부터놓여나기시작한‘안’은부모의모순적태도에서연민과염증을느낀다.그러던중성에눈을뜬화자는그동안철저히금지되어있던,그래서더욱간절한자기만의‘쾌락’을거머쥐고자매순간골몰한다.어느날‘안’은동네근처의방학캠프에서강사로근무하는대학생무리와어울리게되고,마침내오래도록고대해온성경험을하는데성공한다.그러나그들(남성들)은계급투쟁,소외,해방등온갖이론을설파하며자유연애와육욕을긍정하면서도막상‘안(여성)’에게는이중잣대를들이대고,일종의물건처럼취급하기를서슴지않는다.이제‘안’의눈앞에는작문과제를적어야할종이한장이놓여있고,기억저편으로는지난여름의메아리가진동하고있다.알베르카뮈의『이방인』같은작품을갈망하지만번번이실패하고마는‘안’의손끝,텅빈백지위에는자신의출신과고등교육사이의불화,성을둘러싼모순과차별만이떠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