핌 오렌지빛이랄지

핌 오렌지빛이랄지

$17.00
Description
“바다 전부에 내리고 있는 빗소리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닿고 있을 것이다.”

흐르고 마주치며 희미한 현재를 살기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분명한 과거를 바라보기
찰나와 영원 사이, 가상과 실제 사이 텅 빈 미래를 기다리기
감각적인 문장과 독보적인 스타일로 한국문학에서 고유한 위치를 점한 소설가 이상우의 신작 소설집 『핌ㆍ오렌지빛이랄지』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수록작 「핌」과 「오렌지빛이랄지」를 공동 표제작으로 삼은 이번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두 작품에 각각 대응하는 이미지가 앞뒤로 삽입된 양면 책 커버다. 공중으로 떠오르는 듯한 꽃나무와 지면 바깥으로 달려 나갈 듯한 바이크 이미지는 이상우가 『핌ㆍ오렌지빛이랄지』를 통해 그려 낸 세계의 모습과 꼭 닮았다. 선명한 과거와 텅 빈 미래 사이 인물들의 끝없는 헤맴으로 가득한 시간의 흐름이나 가상인지 실제인지, 환각인지 현실인지 모호한 공간적 배경은 금세 어디론가 솟구치거나 사라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다.
『핌ㆍ오렌지빛이랄지』에 수록된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의 흔적을 직간접적으로 감각하고 좇으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미래로부터 과거로 추방당한 난민, 그와 기억이 동기화되는 순간만을 바라며 연인의 데이터를 찾아 헤매는 기병대, 기병대의 도망을 돕고자 했던 형사 등 각 작품의 인물들은 연쇄적으로 이어지고 반복되며 독자들로 하여금 특정 인물보다는 그들이 엮여 든 세계 전체를 조망하게 만든다. 인물들이 위치한 좌표 사이사이로는 산발적인 기억과 중요한 부분이 훼손된 이미지, 번지수를 잘못 찾은 음악이 흘러들며 장면마다 수많은 질문을 남긴다.
기억은 한 개인만의 소유물일까, 교체 가능한 데이터일까? 행운처럼 생겨나는 우연하고도 결정적인 마주침은 삶에서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고 체념해야 하는 걸까, 그것이 다시 가능해지도록 애써 봐야 하는 걸까? 이상우는 독자들이 고른 선택지에 따라 장면들이 달라지는 소설(「핌」), 화자의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들이 문장 사이사이 삽입된 소설(「오렌지빛이랄지」) 등의 형식 실험을 통해 독자들에게 일종의 체험을 제공한다. 복잡하고 다층적인 세계의 전체를 조망하며 순간순간 고개를 내미는 질문들을 직접 겪어 내 보기. 『핌ㆍ오렌지빛이랄지』를 읽는 일은 곧 우리의 세계를 구성하는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신비를 몸소 감각해 보는 일과 같다.
저자

이상우

소설가.지은책으로『두사람이걸어가』『warp』『프리즘』『모닝빵』(공저)『바로손을흔드는대신』(공저)등이있다.

목차

머리전달함수5

졸려요자기15

핌55

좆같이못생긴니트조끼를입은탐정137

응우옛은미래에서왔다159

레이트레이싱187

배와버스가지나가고193

오렌지빛이랄지247

출판사 서평

죽은친구들과함께하는오늘
『핌오렌지빛이랄지』속인물들의친구들은그들의곁에있질않고막너머에존재한다.죽음이‘영원히그대상을직접만나지못함’을의미한다면,막너머의친구들은곧죽은친구들이다.인물들은갑자기사라진친구의실종순간이담긴CCTV를무한정돌려보기도하고(「머리전달함수」),동면인간의기억복원을위해과거로추방된상대의기억데이터를헤집기도하며(「핌」),자신이출연한영화의음악제작자가클래식전공자였음을영화화면을통해짐작하기도한다.(「오렌지빛이랄지」)이때인물들은막너머의친구들을추모하는대신기억속에서그들을치열하게되살린다.친구가존재하는곳이영원한과거인지,다가올미래인지알수없기에인물들은친구와의재회를쉽사리포기할수없는것이다.인물들은그렇게친구들을떠올리고바라며죽음과함께산다.이는언뜻불가능한문장처럼보이지만,『핌오렌지빛이랄지』의인물들에게는영원한현재다.

엉뚱한곳에재생된음악
『핌오렌지빛이랄지』의모든작품에는음악이흐르고있다.디제이가골라튼곡이거나,음악대학에서흘러나오는합주이거나,영화에삽입된음악이거나,주인공의흥얼거림이거나.음악이흐르는장면에서는청자의감상이때때로함께튀어나오는데,인물들의반응으로미루어보아음악이영엉뚱한곳에서재생되고있음을알수있다.“개같이구린음악을트는동료디제이”(「졸려요자기」)라는동료의평,그런음악은“제발너혼자미술관에서나틀라는”작곡가를향한영화제작자의항변,음대건물에“미친수준의연주가아무렇지도않다는듯이”울리고있는데도1층에서테이블축구게임을돌리고있는학생들.음악은기대에비해수준이한참미치지못하거나,그용도에어울리지않게만들어졌거나,마땅한청자를갖추지못한채자신과는어울리지않는곳을흐르고있다.어느누구의기억속에도남지않겠다는듯이,과거도미래도없이오직흐르는순간그자체에만존재하겠다는듯이.

펼쳐진바다에내리는비처럼
죽음을곁에두고지내는인물들은현재보다는영원을산다.누구에게도기억되지못한채흘러가는음악은지독한찰나속에존재한다.이상우의소설은영원과찰나를끊임없이교차시키며진실에가까운삶의감각을창조한다.“스노클링마스크를벗으면온몸위로바다전부에내리고있는빗소리처럼그들은서로에게닿고있을것이다.”(「오렌지빛이랄지」)하나의빗방울이바다의한지점과만나는순간은다시반복될수없을찰나이지만이는바다가다시비가되고비가다시바다가되듯영원에대한은유이기도하다.우리역시빗방울처럼찰나와영원사이어디쯤에서,문학만이해낼수있는실감을선사하는이상우의소설을읽는다.흐르고마주치고기다리며소설을,그리고삶을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