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프리즘, 그 이후

젠더 프리즘, 그 이후

$20.00
Description
포스트 김미현 세대가 써내려 가는
젠더 프리즘, 그 이후의 비평 지도
■ 팔림프세스트의 책
故김미현 평론가의 마지막 평론과 제자들의 글을 한데 엮은 『젠더 프리즘, 그 이후』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민음의 비평’ 시리즈의 포문을 연 『젠더 프리즘』이 출간된 지 17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평론가 김미현은 199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문단과 학계를 종횡무진하며 오랜 기간 페미니즘 비평의 선두에 서 왔다. 2008년 출간된 『젠더 프리즘』은 당대의 문학을 젠더의 차원에서 주목함으로써 기존 페미니즘 비평의 맹점을 지적하고, 그로부터 한 단계 더 나아간 포스트페미니즘을 제안한 선구적인 책이었다.
『젠더 프리즘, 그 이후』는 현직 문학 연구자인 그의 제자들이 스승의 글 위에 써내려 간, 팔림프세스트의 책이다. 팔림프세스트(Palimpsest)는 그리스어로 ‘다시(palin)’와 ‘문지르다(psaein)’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단어로, 양피지에 적혀 있는 글자를 문질러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글자를 쓰는 행위를 지칭한다. 그러나 지워진 글자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 새로 적힌 글과 공존한다. 스승의 책이 제자들의 언어로 다시 쓰이는 일 역시 이와 같다.
이 책은 장 구분 없이 핵심 키워드들을 병렬로 배치했던 『젠더 프리즘』의 서술 방식을 따른다. 김미현이 남긴 글 위에 포스트-김미현들의 글이 덧쓰인다. 키워드 ‘몸’의 분석 대상은 타락한 여성의 대명사 이브의 몸에서 포스트휴먼의 몸으로 옮겨 가고, 이중으로 소외된 여성의 성에 초점을 맞추었던 키워드 ‘섹슈얼리티’는 자본주의 체제의 생명 정치적 자산까지 포괄하며 그 범주를 넓히는 식이다. 『젠더 프리즘, 그 이후』는 『젠더 프리즘』에서 피어난 빛을 더 넓게, 더 깊은 곳으로 퍼져 나가게 한다. 그것은 동일한 것을 반복하는 반사가 아닌, 다양한 스펙트럼을 만들며 분산시키는 회절(回折)의 방식이다.

■ 젠더 비평의 스펙트럼으로 투과한
동시대 문학을 읽는 열두 갈래 사유의 빛
한국 문단에 페미니즘이 ‘리부트’된 시점이 2015년이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2008년에 포스트페미니즘의 관점을 제시한 『젠더 프리즘』은 단연 ‘미래를 선취하는 문학주의자의 사유’가 엿보이는 책이었다. 그렇다면 2000년대 문학을 들여다보았던 키워드들은 지금 여기에서도 여전히 유효할까? 그 답은 『젠더 프리즘, 그 이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새롭게 추가된 포스트휴먼을 비롯하여 몸, 환상, 가족, 대중성, 섹슈얼리티, 동성애, 근대성, 여성 이미지, 성장, 동물성, 윤리의 키워드 들은 시차를 뛰어넘어 2020년대의 문학까지 포괄하는 스펙트럼으로 기능한다.
김미현은 김보영 소설의 ‘비인간 전환’을 중심으로 인간과 포스트휴먼의 (탈)경계에 대해 논한다.(포스트휴먼) 뒤이어 김윤정은 동아시아 여성 SF 문학 속 ‘트랜스휴먼 기계체’의 몸에 구현된 정치성을 비교문학적 차원에서 고찰함으로써 물질과 페미니즘의 접점을 드러내고(몸), 원은주는 정보라의 『저주토끼』를 중심으로 여성적 글쓰기와 환상의 관계를 살펴본다.(환상성) 황지선은 인류세의 위기 앞에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간극을 극복하려는 시도로써 2020년대 소설에 나타난 ‘의동물화’ 형상과 사변적 상상력에 주목한다.(동물성)
포스트휴먼, 환상성, 동물성과 같이 최근 문학비평장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키워드와 더불어, 가족, 대중성, 섹슈얼리티, 동성애는 젠더 차원에서 중요한 주제가 된다. 박구비는 부계 중심의 가족로망스에서 벗어나, 백수린과 김혜진의 여성가족로망스 서사가 수행적 공동체로서의 가족을 구성하는 양상을 살피고(가족), 진선영은 전후 대중소설인 『태양의 권속』을 통해 사회적 멜로드라마의 문법이 민족국가의 재건에 기여하는 방식을 보여 준다.(대중성) 강지희는 팬데믹 이후 투자가 일상화된 시대를 ‘오컬트 자본주의’로 명명하며, 그러한 체제 안에서는 섹슈얼리티조차 부채 혹은 자산으로 취급되고 있음을 지적한다.(섹슈얼리티) 김미현의 글에서 1990년대의 레즈비언 소설이 이성애주의와 가부장제의 반대항으로서 논의되었다면, “큐큐퀴어단편선”을 분석 대상으로 삼은 김소륜은 소수자들의 정체성 투쟁만으로는 환원되지 않는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주목한다.(동성애)
근대성, 여성 이미지, 성장, 윤리는 문학 연구와 비평 양쪽 모두와 접속할 수 있는 키워드이다. 권혜린은 정연희의 생태소설 『난지도』의 주인공들을 경유하여 근대성의 에코사이드에 대응하는 탈성장 실천이 젠더 차이를 담지하고 있음을 밝힌다.(근대성) 황지영은 일제 강점기에 발표된 소설 속 여성 기자 표상이 식민 권력 안에 시적 균열을 만드는 방식을 포착하고(여성 이미지), 송주현은 장강명 소설의 여성 청년들이 생존경쟁적 한국 사회에 도전하고 질문하는 주체라는 점을 보여 준다(성장). 마지막으로 우현주는 박완서의 「저문 날의 삽화」 시리즈의 ‘삽화’ 형식에 초점을 맞추어 환대 윤리의 유비적 미학을 살핀다(윤리).

1920년대 신문연재소설부터 2020년대의 SF, 퀴어, 부동산 소설까지 망라하는 『젠더 프리즘, 그 이후』는, 문학 연구에 기대되는 학문적 깊이와 문학 비평이 추구하는 시의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책이다. 동시에 다음 세대의 문학적 관점을 새롭게 설정하는 책이기도 하다. 페미니즘 비평을 기본값으로 둔 세대의 비평 언어 또한 이 책 위에 덧쓰일 것이다. 문학이 영속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저자

김미현

1965년서울에서태어났다.이화여자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1995년《경향신문》신춘문예평론부문으로등단했으며,2004년부터2023년까지이화여자대학교국어국문학과교수로재직했다.『한국여성소설과페미니즘』,『판도라상자속의문학』,『여성문학을넘어서』,『젠더프리즘』,『번역트러블』,『그림자의빛』등다수의저서를출간하며페미니즘비평의저변을확장시켰다는평을받는다.소천비평문학상,현대문학상(평론부문),팔봉비평문학상,김환태평론문학상등을수상했다.읽히는평론,그자체로하나의창작물인평론을지향했던그의글은구조적이고논리적이면서도활기넘치는비유와뜨거운열정으로작가와독자모두의사랑을받았다.2023년9월18일별세했다.

목차

서문:어떤상실을기억하는법|허윤5
|김미현론|허윤ㆍ이은선ㆍ윤혜정,미래를선취하는문학주의자의사유13
|포스트휴먼|김미현,얼마나다른가:포스트휴먼선언문35
|몸|김윤정,동아시아여성SF문학에나타난‘몸’의정치성연구56
|환상|원은주,여성적글쓰기의액체성과촉각적환상84
|가족|박구비,2010년대여성가족소설속가족의재발명107
|대중성|진선영,전후사회적멜로드라마와의제가족주의의정치학132
|섹슈얼리티|강지희,팬데믹이후부동산소설과오컬트자본주의158
|동성애|김소륜,타자의정치학‘이후’190
|근대성|권혜린,정연희의『난지도』로본탈성장과젠더211
|여성이미지|황지영,근대소설에나타난‘여기자’표상연구230
|성장|송주현,장강명소설에나타난청춘의세대인식과여성성253
|동물성|황지선,인간으로동물되기275
|윤리|우현주,환대윤리의유비적미학304
김미현연보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