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것이좋기만한날들
여섯살딸호아에게남다른연기재능이있다는걸알았을때,여자의삶에는전에없던활기가돌기시작한다.자신의삶에좌절을안겨주었던패배의목록이호아와함께라면승리의목록으로역전될수있을것같은기대와설렘.여자는딸의지원자로서전심과전력을다한다.그러던어느날,딸의커리어에도움이될수만있다면물불안가리는여자에게명문유치원이라는새로운목표가생긴다.아무나들어갈수없을뿐더러누군가라도들어가기힘든그들만의요새.그러나운좋게도여자는그힘들다는‘솔중유치원’입성에성공한다.아역배우활동,명문유치원입학,상위계층주거지로의이사……꿈에부푼여자는오늘도정성을다해인스타그램피드를업데이트한다.오늘의태그.#배우권호아#솔중유치원#새로운출발
·불안은‘뒤트임’과함께찾아온다
“엄마,있지.그렇게긴눈을만들려면뒤트임을해야한대.나도뒤트임할까?”불안은뒤트임과함께찾아온다고했던가.언젠가는당장쌍꺼풀수술을해달라며바닥에드러누워생떼를쓰던호아가요즘은연일뒤트임타령이다.여자는호아의뜬금없는요구에놀라면서도약간은징그러움을느낀다.여섯살아이가하는말이라기엔너무남의말같아서,어쩐지자신이해야하는말을대신하는것같기도하고.호아가원하는건뒤트임한눈을가진자신일까,뒤트임을원하는누군가의시선을만족시키는것일까.호아는자신이어른들의거울이라는사실조차알지못한채점점더완벽한거울이되어간다.그러나그마저도잠시,등원하는날이많아질수록호아는점점더알수없는모습으로변해간다.
·유치원스릴러가된가족의꿈
의심스러운상황속에서혼돈에빠지는건여자라고다르지않다.누군가는여자에게인스타그램메시지를보내당장그유치원에서호아를데리고나와야한다고경고하고,유치원때문에이사한새집에서는정체를알수없는벌레들이나오기시작한다.모든것이좋았던날들은부지불식간에어떤것도믿을수없는날들로변모하고,여자를향한호아의적대감마저극에달한다.유치원스릴러가되어버린가족의꿈은강진아의손에서세련된서사로전개된다.빠르게전환되는장면,관찰과환각을넘나드는내면묘사,정밀하게배치된플롯에서우리는『호아』가스릴러의문법을적극활용하면서도문학적밀도를잃지않는강진아의신작임을정확히간파할수있다.
·발문에서
앞선소설들과이번소설사이에차이가있다면그사이작가에게딸이생겼다는사실이다.작품을읽는데작가의개인사까지필요한건아니다.그렇다고는하나,자신에게서비롯되었지만자신일수는없는한존재와맺는동질감과이물감의불협화음은형용하기힘든‘육화체험’을가져다줬을것이다.그체험이이번소설의전부는아닐망정전부같은부분은될수있다.‘아는사랑’을증류해불순물들을추출하고그불순물에서나약한인간의‘모르는사랑’을발견한강진아는더할나위없는우리시대의작가다.계속해서새로운고통을찾아나서는강진아를우리는계속주목해야한다.더욱이『호아』는앞으로강진아가쓸모든소설의새로운시작이될것이다.-박혜진(문학평론가)
·작가의말에서
그런데글을쓰고나서부터는악마의속삭임이실은꽤적절한조언이었을지도모르겠다고생각하는순간들이잦아졌습니다.당장해서는안되는것들이있습니다.내일이되어야비로소보이는것들이있습니다.저는꽤오랜시간,그런것들로부터눈을감은채지나왔습니다.쏟아지는후회끝에억울함이딸려나왔습니다.당장했을뿐인데,미루지않았을뿐인데,잘못을저지르고만셈이니까요.이미끔찍할정도로많은것들을당장해버린뒤였습니다.
이제저는아주힘겹게저자신에게말합니다.“내일해.”이말을내뱉기위해서는파멸에이를지도모른다는두려움을무릅써야합니다.그걸해내고,또해내며소설을쓰고있습니다.그래야만이야기가완성된다는사실에매번놀라워하면서요.파멸에대한두려움은여전히선연합니다.이따금공포가되살아날때면써낸책들을들춰보며마음을가다듬곤합니다.
책속으로
“엄마,엄마”당시호아가발음할수있는유일한단어였으므로여자는대수롭지않게넘겼다.시간이조금더흐르고서야자신이관심을보인대상을빤히들여다보다가가능한선에서흉내를내고있다는사실을깨닫게되었다.상대가웃고있으면호아도웃어보였고새침한표정을짓고있으면새침한표정을지어보였다.그러니까엄마,엄마는그대상이엄마같다는게아니라엄마,나좀봐줘요를압축한말이었다.할줄아는말이늘고지을수있는표정도다양해지자호아의흉내내기는한층더본격적인모습으로바뀌었다.
---p.12
“처음으로목표라는게생겼다.여자는호아를성공시키는데에자신의인생을걸어보기로했다.그렇게결정하고나자괴롭기만하던독박육아가하나도힘들지않았다.흔하디흔한엄마들처럼그냥애를보는게아니라우리의위대한성공을위한거니까.목표만생기면이토록강한힘이생기는구나하는생각도들었다.거북하기만하던호아의눈빛과행동들이성공을약속해주는징표처럼느껴지기도했다.”
---p.12
“여자는교육을위해서가아니라성공을위해서유치원을뒤졌다.배경이될만한명문공립유치원은명문대학보다경쟁률이높았다.리스트를뽑아서원장들에게선물을보내기도했고찾아가서빌어보기도했으나호아를위한자리는나지않았다.(중략)그냥다포기하고아무유치원에나보내버릴까.마음이약해질때마다호아가칸이나아카데미시상식에서이름이불리는상상을하며마음을고쳐먹었다.더위너이즈……권,호,아!”
---p.16
“안쪽문이열리더니원장이모습을드러냈다.여자는호아손을꼭잡은채벌떡일어섰다.아름답다.원장을보고여자가처음한생각이었다.자신보다나이가많은것같기는한데정확하게가늠하기는어려웠다.30대후반에서50대후반까지모두가능할것만같은신기한외모였다.쌍꺼풀없이기다란눈과곧게솟은코는엄격한인상을풍겼으나,도톰한입술사이로드러나는덧니가귀여움을가미해자꾸만눈이가는얼굴이었다.비율이좋고체형도곧아서유치원원장이아니라발레리나나체조선수처럼보였다.”
---p.32
“여자도다른사랑에대해알고는있었다.드라마나영화,책에나오는그런사랑말이다.불가능하고거짓되게느껴지는크고강해지는사랑.들을때마다여자를거북하게만드는바로그것.이제와서남편과사랑에대한정의로실랑이를벌이고싶지는않았다.여자는눈물을흘리기시작했다.처음울때는스스로도억지스럽게느껴졌으나,울다보니울어져서계속울었다.여자의눈물은남편에게다른의미로받아들여진듯했다.여자로서는무척다행이었다.”
---p.45
여자는제대로해내고싶었다.다른의사가들어왔을때같은질문을했다.지금보다얼마나더아프냐고.그의사도비슷한답을해주었다.만약분만실이직장이었다면곧장때려치우고나갔을것이다.힘들거라는위험이감지되면여자는별다른고민없이그만뒀다.그만둘수있으니까그만뒀다.그건여자의유일한특권이었다.하지만분만실에서는아무것도그만둘수가없었다.그사실에공포가일었다.몸을찢고아기가튀어나오던그순간에도여자는공포에질린채로질문하고있었다.지금보다얼마나더아프냐고.
---p.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