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이론 (김숨 장편소설 | 양장본 Hardcover)

딸기 이론 (김숨 장편소설 | 양장본 Hardcover)

$18.00
Description
“삶이 무엇이든 나는 그걸 원하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딸기밭으로 와 딸기를 따.”


딸기에서 딸기로, 딸기밭 바깥 국경 너머로
슬픔을 넝쿨처럼 엮으며 멀리 뻗어 가는 손길
늘 곁에 있어도 닿지 못했던 이방인에게,
그리고 나에게 기도하듯 보내는 편지
김숨 장편소설 『딸기 이론』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역사의 격랑 한가운데서부터 오늘날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까지, 평범한 이들의 연약한 삶과 목소리를 문학으로 쉼 없이 옮겨온 김숨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디아스포라 난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그리고 목숨을 건 현장에 선 노동자, 시각장애인까지. 그동안 김숨 작가가 문학의 주체로 세운 인물들 곁에 『딸기 이론』이 새로운 목소리로 등장했다. 바로 여성 이주 노동자의 목소리다.
『딸기 이론』은 한 통의 긴 편지처럼 쓰인 소설이다. 이 편지를 쓰는 주인공은 한국 어느 딸기밭 비닐하우스에서 7년째 숙식하며 일하는 미얀마인 여성 노동자 ‘샤빼’다. 편지는 “나는 한 사람으로 왔어.”라는 선언으로 시작되어, 곧 “너도 똑같아.”라는 ‘너’를 향한 호명으로 이어진다. 이 소설에서 ‘너’는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 노동자 ‘보파’다. 그는 샤빼보다 먼저 한국에 와 지금까지도 딸기밭을 떠나지 못하는 노동자, 그러나 체류 자격이 사라져 일명 ‘불법체류자’라 불리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로 이 딸기밭에서 가장 낮은 사회적 위치에 처한 인물이다. 그런 보파를 ‘너’라고 부르며 끊임없이 말을 거는 ‘나’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소설을 읽는 동안 보파의 자리에서 보파의 시선으로 『딸기 이론』 속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들이 하루 종일 손에 쥐었다 놓는 딸기처럼, 이들의 세상은 딸기를 중심으로 굴러간다. 아니, 사실 딸기는 모든 것이다. 딸기는 블랙홀처럼 전 세계의 가난한 여자애들을 이주 노동자로 불러 모은다. 딸기는 돈이 되고, 돈은 총알이 되어 국경 너머 사방으로 지뢰처럼 터져 나간다. 딸기는 사슬처럼 여자애들의 손을 묶지만, 딸기를 따는 손은 노동하는 다른 손을 궁금해하며 넝쿨처럼 뻗어 나간다. 길 건너 비닐하우스에서 깻잎을 따는 손, 돼지와 닭과 함께 갇힌 손, 커다란 기계에 끼인 손, 뜨거운 쇳물을 뒤집어쓴 손, 죽어 가며 온기를 찾는 손, 그리고 미얀마 강가에서 생선을 손질하는 엄마의 손까지. 그 손들을 잊지 않으려, 때로는 닿으려, 샤빼는 말하고 또 말한다.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이 딸기밭에서, 끔찍하게 싫지만 손에 쥘 수 있는 유일한 실체 ‘딸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해 보려 한다. 가설을 세우고 분석하며, 논증하고 정의 내리며, 때로는 반박하고 전복하며, 지금 발붙인 이 땅에서 희박하기만 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탐구하고 탐험한다. 그렇게 한 편의 아름다운 ‘딸기 이론’이 완성된다. 곁에 두고도 몰랐던 세계, 그러나 우리의 삶과 평행우주처럼 닮은 그 세계가 우리 앞에 도착했다.
저자

김숨

1974년울산에서태어나1997년《대전일보》신춘문예에「느림에대하여」가,1998년《문학동네》신인상에「중세의시간」이각각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
장편소설로일본군‘위안부’의목소리를담은『한명』『군인이천사가되기를바란적있는가』『숭고함은나를들여다보는거야』『듣기시간』『간단후쿠』를비롯해,1930년대디아스포라의삶을다룬『떠도는땅』,식민지배의상처를그린『잃어버린사람』,태평양전쟁당시오키나와에서의조선인참살을다룬『오키나와스파이』,조선소노동자의삶을다룬『철』『제비심장』등이있고,시각장애인의삶을다룬연작소설『무지개눈』이있다.소설집으로『나는나무를만질수있을까』『침대』『간과쓸개』『국수』『당신의신』『나는염소가처음이야』등이있다.
현대문학상,대산문학상,이상문학상,동인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1부
자궁11
국경36
딸기실존58
딸기연애84
딸기계급96
접시저울100
딸기불면118
불타는노트123
자전131
딸기돼지146
딸기미래157
딸기중력181
딸기의한계184
딸기통제200
딸기권력206
갈색213

2부
손219
기도228
집233
심장239
리얼보트249

3부
절대영도259
딸기따는여자애271
얼굴277
딸기이후286
거울298
두번째자궁304
비행기308
문턱321
딸기의탄생326
지평선329

미주332
발문오경진(문학평론가)-‘너’에게로,영원히333
추천의글오은(시인)339

출판사 서평

■이방인에게쓰는편지
“보파,넌나보다진하고묵직한갈색피부를갖고있어.
나는너의갈색피부를뚫고들어가“보파”하고부르고싶을때가있어.”-215쪽

보파는샤빼가보는앞에서자기일기장을마음껏펼쳐둔다.자기일기장속글자가샤빼에게아무의미없다는걸알고있기때문이다.캄보디아인인보파는크메르어,샤빼는미얀마어를사용하는데다두사람모두영어와한국어에도서툴러7년째함께일하고같은방을쓰면서도제대로된대화를나눈적이없다.그나마의대화는너의물건과나의물건을구분하며‘프로미스’를다짐받는‘국경’의말뿐이다.그오랜시간둘은서로에게여전히낯선이방인인셈이다.
보파는샤빼에게이름한번물어본적이없지만,샤빼는그런보파에게끊임없이말을건넨다.보파의모습을보여주듯말하고,다른동료들의소소한이야기를들려주고,떠난동료들을궁금해한다.한번도본적없지만같은한국땅에들어와있는다른이주노동자들의삶과죽음을자세히전하고,자기고향에서일어난지진과전쟁,그리고보파의고향땅에서일어난비극적인사건을묻는다.그렇게보파가절대이해할수없는언어로보파를향한편지가쓰인다.
샤빼가보파에게쓰는편지뿐아니라모든편지는국경을건너는듯한시차를가진다.지금쓰이지만지금읽힐수없고,미래로보내지만언제상대에게닿아읽힐지알수없다는점에서그렇다.그미래에라도닿길바라는마음으로,샤빼는온힘을다해모든진심을전한다.


■이주여성이쓴한국어사전
“완나,뚜라,베트남여자애들,필리핀여자애들.우리딸기따는여자애들모두모름다움에서태어났어.”-114쪽

한국에사는동안샤빼는미얀마에서본한국과실제의한국이다르다는데내내놀라움을금치못한다.여느이주노동자들처럼케이팝과케이드라마로한국을알고,한국에대한꿈을품고들어온샤빼의눈앞에펼쳐진풍경은한없이낯설기만하다.높은아파트와금가루를뿌린듯반짝이는도시의밤,따뜻한방과깨끗한욕조는온데간데없이오직망망대해처럼펼쳐진비닐하우스뿐이다.
고국에서빚을내배운한국어도무용지물이다.미얀마에서배운한국말은쓸일이없고,아는단어도그뜻이도통다른듯하다.심지어한국어를몰라도아무지장이없을뿐아니라한국어를몰라야‘사장님’들이좋아한다는것도안다.그럼에도샤빼는끊임없이말을익히고누구도알려주지않는그의미를스스로정의하며이세상에없던단어를만들기도한다.‘아름다움’을배운후샤빼는자기만의단어‘모름다움’을새로만든다.‘모름다움’은‘보지못한데서생겨난보지못하는아름다움’을뜻하는말.샤빼는‘아름다움’에서‘모름다움’으로건너며자기를둘러싼세계를이해해나간다.이딸기밭에던져진자기삶과,마찬가지로이땅에던져진다른이주노동자들의운명모두를.


■생명이허락되지않는땅
“딸기밭에밤새전구를켜놓는것은(……)딸기들이어둠을무서워하기때문이아니야.낮을길게늘이기위해서야.낮이길면딸기가더빨리열리고,더빨리빨개지니까.”-119쪽

딸기밭에는수천개의딸기가,축사에는돼지가,양계장에는병아리가자란다.그러나그곳은오직상품의땅,생명이없는땅이다.밤새불을켜두는딸기밭처럼양계장도24시간불을환히밝힌다.불을끌때는단한번,병아리를도축장으로실어나를때뿐이다.처음본어둠에놀라몸이얼어붙은병아리를손쉽게잡을수있기때문이다.몸을다른방향으로돌릴수도없는축사에서“스톨­원피스”를입은돼지에게허락된건오직살찌우기뿐이다.샤빼의눈에딸기와돼지와닭은모두같다.가난한나라의여자애들도마찬가지다.부유한나라의늙고병든남자들에게자식을낳아주기위해지금도공공연히납치되어“자궁거래”당하고있으므로.
샤빼는가난한나라에서왔다.그의고국미얀마는내전중이다.쿠데타로정권을차지한군부는저항하는시민군을잔인하게학살하고,아이들은군인이되어학살에가담하거나고향을떠나야만한다.샤빼의남동생은군인이됐다.보파가떠나온캄보디아도마찬가지다.한독재자에의해인구의4분의1이학살당하는끔찍한‘킬링필드’의역사를가졌다.샤빼는궁금하다.이토록생명이없는세상에서왜생명이자꾸태어나는지.자기몸속의자궁이왜존재하는지.끊임없이가설을세우고생각한다.생명을잃어가는것들이다시태어나는게가능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