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다시신화인가?
데이터는넘치지만의미는빈곤한시대의구원투수
현대인은정보의홍수속에살고있지만,역설적으로삶의의미는잃어버린‘서사의빈곤’을겪고있다.인류최초의거대서사인신화가다시주목받는이유다.이성과과학이인간의고통과문명의위기에답을주지못할때면,우리는늘신화라는오래된지혜의보고를열어보곤한다.
저자는19세기낭만주의화가의그림으로서문을연다.대자연앞에홀로선인간의고독과실존을다룬그그림은,세계를이해하려는인간의욕망또한드러낸다.이책『신화의역사』는신화에나타나는사랑,죽음,복수,귀향같은인간의보편적경험에집중한다.오뒷세우스가바다위에서겪은방랑이나인도신화의바기라타왕이감내한고행을보라.21세기를살아가는현대인이인생의위기앞에서겪는방황및극복의과정과놀라울정도로닮았다.
인간이세계를이해하기위해,공동체가그들자신의기원과가치,규범을설명하기위해,삶의의미를부여하기위해만든이야기체계가신화다.따라서모든사회는어떤형태로든신화를가지고있다.그렇다면각문명은자기시대의위기와욕망을어떻게신화화했을까?이책은개별신화가아니라특정한시대와사회가만들어낸역사적산물로서의신화를조명한다.
고대의전쟁과폭력에관한은유인가?
그리스의신과영웅들
저자는『일리아스』에대한찬사는치워버리자고주장한다.이거대한영웅서사시의알몸을보면,고대그리스인들의혈투가반복되고있을뿐이다.창과칼을들고벌이는끝도없는죽음의향연.이전쟁을조장하는이들은,즉신으로불리는이들은누구이고무엇인가?그중에서도여신아테네(아테나)는고귀한존재로묘사되지만,실상을들여다보면그저파괴만을일삼는아레스와다를바가없지않은가?
저자의비판적태도는헤라클레스에관해서도마찬가지로드러난다.제우스의수많은반신반인자녀중에서유독그만이그리스제일의영웅으로꼽힐이유는무엇이란말인가?헤라클레스의행적을보면그가전쟁영웅인지,에게해의해적인지,힘좋고충직한노예인지그정체를알수가없다.최후는또얼마나황당한가?여색때문에비참하게죽었는데도,그는불멸의신이되어올림포스에합류한다.
신화가없는문명중국,
중국신화는발명된것인가?
그리스에서아이스킬로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와같은극작가들이등장한것은일종의도약이었다.이들은종래의전통과방식을무시하고,신화에서자기들이원하는이야기만간편하게뜯어내비극으로만들었다.이렇게신화는비극을낳았고,비극은신화가되었다.이것은발전인가,몰락인가?
동쪽으로가보자.중국에서는신비와환상,영웅과종교에얽힌신화적요소가초기부터배격되었다.공자는귀신이나죽음같은문제보다는인간사회의질서와윤리를중시했고,괴력난신에관해서는말하지않았다.도교의영향으로불로장생하는신선들에관한이야기가전해지지만,이조차도저자는중국의인문주의에포섭된매우제한적인이야기라고규정한다.따라서중국의신화는“신비롭다기보다는신기하고경이롭다기보다는기이한이야기일수밖에없었”고,기담과전통문학의형태로나타났을뿐이다.
오히려오늘날의동양신화라는것은콤플렉스의산물처럼보인다.서양에신화가있는데중국이라고없을것같은가?20세기에위앤커와같은학자들이나타나중국신화를정립했다.그덕택에우리는창세신화,홍수신화,영웅신화의형태로중국신화를읽을수있게되었지만,이렇게새롭게조직된신화는서양학자들이만들어놓은인식과분류에갇히게되었다.
신화,민족을발명하다
19세기독일의민족주의와낭만주의
흔히북유럽신화라는이름으로잘알려진게르만신화는그역사가생각보다짧다.기원전에이미널리퍼지고변주되었던그리스신화와는달리,산문으로된『에다』는13세기의산물이다.따라서기독교의영향을피할수없었으며,1643년에운문으로된『에다』가발견되고나서야게르만신화의오래된전승이좀더분명하게확인되었다.
19세기에이르러게르만신화는민족주의와낭만주의를통해독일민족의기원이되어집단기억으로호출된다.로마제국의군대를물리친게르만족지도자아르미니우스,중세의붉은수염황제프리드리히는신화적색채로덧칠되어독일민족의우상으로추앙되었고,오딘과토르같은옛신들이나『니벨룽의노래』에서사악한용을죽인영웅지크프리트또한영감의원천이되었다.그렇다,신화는“우리는누구인가?”라는질문에대한해답이었던것이다.
우리는필멸자다!
문명은왜신이아닌영웅을요구하는가?
『길가메시서사시』로대표되는메소포타미아신화는인류최초의도시문명이남긴불멸의질문이기도하다.“인간은왜죽음을두려워하는가?”3분의2는신이지만3분의1은인간인길가메시는온세상을헤맨끝에우트나피쉬팀을만난다.그는신처럼영원히사는자였다.길가메시는영생을얻었을까?결국그는지친채로우루크로돌아와필멸의운명을받아들인다.
허무한결말이지만,『길가메시서사시』는광활한자연에맞서싸워이겨낸인간과그들이만든문명의위대함에관한기록이기도하다.저자는메소포타미아신화의근본이신이아닌길가메시에게있다고말한다.인간의한계를넘어선정복자이자신화화된존재.메소포타미아의군주들은신들을인간의영웅성과왕권을뒷받침하는역할로재구성했다.
부활과영원의신화,
해탈과구원을향한신화
메소포타미아문명이수많은도시국가의각축장이었다면,이집트는상하이집트가통일된이래로경쟁자가존재할수없는단일한세계였다.또한메소포타미아신화가허무와죽음의신화를낳았다면,매해정기적으로범람하며풍요를가져다준나일강의이집트신화는부활과영원의신화를탄생시켰다.
이집트문명에서신화는곧바로국가종교로연결되었고,국가종교는인간의내면에도덕과윤리라는새로운세계를열었다.그리고마침내아케나톤이종교를창시했다.최초의유일신교가등장한것일까?오늘날까지도여러주장이난무한다.중요한것은신화의시대를뒤로하고상대를압도하는절대적권능을지닌신의시대가열리기시작했다는점이다.
메소포타미아와이집트에서신화가국가에포섭되었다면,인도에서는사회를통해구현되었다.인도신화는국가와종족을넘어사회적정체성으로기능하고있다.억겁의시간이순환하는인도신화의스케일은장엄하다.저마다운명을극복하기위해,혹은피하기위해노력하지만,예언은이루어지고비극은삶을관통한다.『마하바라타』에서사촌형제100명을죽이고마지막에승리를거둔것은다섯명의판다바형제였다.하지만판다바의첫째유디슈티라는“슬픔외에어떤보상이우리에게있단말인가?”라고탄식하며,어렵게얻은왕위를버리고출가하려한다.
흥미로운사실은우리가인도신화의특징으로익히아는,깨달음을추구하는구도자적고행이인도의주류종교인힌두교에서는잘보이지않는다는점이다.개혁종교였던자이나교와불교가먼저쇠퇴했고,고대브라만교의현란함을버리지않은힌두교가오히려더화려하게꽃을피웠다.
신화는왜사라지지않는가?
인공지능은답을만들지만,인간은신화를만든다
이책은인간에게왜거대서사로서신화가필요한지이야기한다.어째서인간은사실보다이야기에더마음이움직이는가?
인간이축적해온지식이생성형인공지능에의해순식간에압축되고재생산되는시대다.그러나인간은데이터만으로는움직이지않는다.빠르고자극적이며낯선경험으로가득한정보과잉시대에도신화는사라지지않았다.신전과제단을떠나인터넷과대중문화,정치와미디어속으로침투해또다른신화를생산하고있다.아이돌숭배,팬덤정치,음모론,국가서사,집단감정등이바로그새로운형태다.
인공지능은방대한정보를처리하고새로운답변을생성할수있다.그러나인간이왜특정한이야기에매혹되는지,그이야기를반복하며결국현실로만들어내는지,그이면에어떤열망과무의식이있는지에관해서는여전히설명하지못하며,지식의파편화가가져온사유의위기를구원하지못한다.그래서지금다시신화와그역사를읽는일은,인간이라는존재를이해하는가장오래되고도새로운방법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