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물속의 시

푸른 물속의 시

$15.00
Description
한국 현대시의 역사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민음의 시’ 시리즈가 올해로 341번을 맞이했다. 그 방대한 목록 가운데 언제 어디서든 우리를 여름의 한복판으로 데려가는 시 24편을 고심하여 엮었다. 디자인 스튜디오 오이뮤(OIMU)의 감각적인 해석으로 탄생한 표지 역시 매력적이다. 아이스크림, 분수, 수영, 방학, 낮잠 등 여름과 밀착한 이미지가 시의 안팎에서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시편과 시편 사이의 시차를 뛰어넘어, 한여름 물속에 잠겼을 때의 시원하고 고요한 감각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시는 시대를 초월한다. 우연히 맞닥뜨린 시로부터 전율을 느끼는 순간의 감각은 오직 현재적인 것이다. 그러나 시대를 초월한 시도 계절은 탄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겨울의 시린 바람을, 이육사의 「청포도」에서 여름의 청량한 공기를 느끼는 이유는 단지 ‘눈’과 ‘칠월’이라는 시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나의 계절이 품은 다양한 빛과 결은 짧은 시구 사이사이로 새어 나와 독자의 마음을 물들이고, 여름은 그렇게 물들기에 좋은 계절이다. 축제의 경쾌함과 축제가 끝난 직후의 쓸쓸함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계절이기에.
이처럼 시가 독자의 현재를 물들일 수 있는 이유는,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한순간을 포착하여 세계의 단면을 드러내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무턱대고 맡기고 간 처치 곤란한 짐에서 나의 인생을 보기도 하고(「한여름 저녁 한 시간 반」), 갑자기 사라진 분수대의 빈자리를 보며 무언가를 잃은 뒤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날을 감각하기도 한다(「이 모든 것이 여름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비가 온 뒤에 생긴 웅덩이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사소한 것이지만, “작은 웅덩이 안에는 웅덩이의 팔다리 없는 마음이 흐른다”(「때아닌 우기」)는 문장은 나의 바깥에 있는 사물의 마음을 상상하게 한다.
시집을 만들다 보면 ‘시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한탄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시는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읽으면 된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가 아주 나중에야 불현듯 ‘그게 그런 뜻이었구나’라고 이해가 되는 구절이 있고, ‘이 문장을 만나기 위해 내가 그런 경험을 했구나’ 싶게 보자마자 심장을 관통하는 구절도 있을 터다. 이렇듯 시는 독자가 가진 마음의 모양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조형된다. 그래서 어렵지만, 그래서 매력적이다. 더위에 지치고 사람에게 치일 때, 먼 곳으로 떠나고 싶지만 여의치 않을 때, 이 시선집에 잠시 기대 보면 어떨까. 이 책과 함께라면 그곳이 어디든 푸른 물속이 될 것이다.

■ 워터프루프북이란?
워터프루프북은 채석장이나 광산에서 버려지는 돌을 재활용한 친환경 방수 종이 ‘미네랄 페이퍼’로 제작된 책입니다. 물에 젖더라도 변형 없이 다시 말려 보관할 수 있습니다. 2018년 첫선을 보인 워터프루프북은 매년 다른 장르의 글로 여러분을 찾고 있어요. 올해의 워터프루프북의 테마는 여름! 선별된 ‘여름 시’와 ‘여름 소설’을 한데 모았습니다. 언제 읽어도 좋지만 여름에 읽으면 한층 더 생생한 시와 소설. 해변가, 수영장, 계곡, 욕조 등 물과 습기에 구애 없이 워터프루프북을 마음껏 즐겨 보세요!
저자

안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