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

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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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내가 선택하고 내가 열어젖힌, 내가 시작했고 내가 완성하려는 사랑.
인생에서 이런 사랑을 해 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혁진 장편소설 『광인』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혁진은 『누운 배』, 『사랑의 이해』, 『관리자들』에 이르기까지 인간 심연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그들이 속한 관계, 사회, 나아가 세계의 속물성을 독자들 앞에 펼쳐 보이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해 왔다. 사회파 소설에서 로맨스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장르를 자유자재로 오가면서도 세상을 다 해부하는 듯한 날카로운 시선은 장르를 관통하는 이혁진만의 색깔이다. 그런 그가 작심하고 내놓은 이번 소설은 사랑에 관한 가장 독한 이야기! 제목은 자그마치 ‘광인’이다. 사랑에 미친 걸까, 사랑이 미친 걸까.
『광인』은 작가가 쓴 소설 중에서 분량이 가장 많을 뿐만 아니라 근래 한국에서 출간된 소설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이다. 짧고 빠른 것을 선호하는 데에는 감정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도 짧고 빠른 것을 선호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 태도에도 모종의 위선과 기만이 섞여 있지는 않을까? 이렇듯 촘촘하게 감정의 변이 과정을 그리는 선택은 사랑을 탄생에서 죽음까지 직면해 보겠다는 작가적 도전과 그보다 더 강한 인간적 호기심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광인』은 세 남녀의 사랑과 우정, 질투와 욕망을 위스키와 음악, 그리고 돈이라는 세계 속에서 새로운 언어와 긴장감으로 그려낸다. 누군가는 연애소설로, 누군가는 심리소설로, 혹자는 예술가 소설로, 혹자는 범죄소설로도 읽을 수 있는 이 소설은 그 모든 소설이면서 하나의 분류로 특정할 수 없는 무정형이다. 사랑과 광기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때로는 술의 세계로 때로는 음악의 세계로, 때로는 돈과 자본의 세계로 비유되는 사랑과 우정, 연애와 결혼의 서사는 익숙한 로맨스 구도 속에서 내 것이기에 오히려 낯선 어두운 갈등들을 차례차례 등장시킨다.
저자

이혁진

저자:이혁진

2016년장편소설『누운배』로21회한겨레문학상을받으며데뷔했다.몰락한조선업을배경으로회사라는조직의모순과부조리를핍진하게묘사한『누운배』는우리사회의병폐를섬세하게포착한사실주의적작품으로호평받았다.서강대학교경제학과를졸업한뒤《GQ》,조선소등다양한곳에서일했다.지금은소설쓰기에전념하고있다.

목차

광인/7쪽

출판사 서평

■‘셋’이라는비극

음악하는남자준연,위스키만드는여자하진,그리고사랑에빠진남자해원.플루트교습소에서선생과학생으로만난준연과해원은이제막40대에접어든솔로라는공통점외에도음악과위스키에대한취향을공유하며금세각별한사이가된다.그러나준연의친구이자첫눈에해원의마음으로들어온하진이등장하며둘사이에는균열이생기기시작한다.해원은위스키사업을준비하는하진을적극적으로돕고하진역시그런해원에게호감을느끼며둘의관계가깊어지지만두사람의관계가발전해갈수록하진과준연의관계에관한해원의불안감도깊어진다.두사람의우정이우정만으로는보이지않아서다.그저우정이라고만보아넘길없는두사람하진과준연,사랑하지만사랑만으로는타오르는불안을잠재울수없는두사람하진과해원.어느새삼각형속에들어와버린세사람의감정은방향을알수없는불길처럼타들어가기시작한다.

■술과음악과돈

소설의배경에는하진의작업장인위스키양조장과준연의작업장인플루트교습소가있다.두곳은모두두사람의생계가걸려있는일터인동시에두사람이목표를향해도전하는꿈의장소이기도하다.위스키와음악에대한이혁진작가의해박한지식은여러인물들에게골고루분사되어있다.위스키에조예가깊은아버지로인해어릴적부터위스키의세계를탐닉했던해원은맛을감별하고표현하는데천재적인능력을보인다.음악을하기위해유학을갔지만정작음악이아닌위스키의매력에빠져온하진은아버지가돌아가신뒤양조장을물려받아한국의독자적인위스키를만들고자한다.술의세계가갖고있는풍미를극대화하는건준연이속한예술의세계다.생활과음악사이에서적절히타협하듯,그러나결코예술을포기할수없는준연은땅에발붙이고있는이들과달리자기만의허공에서삶을불안하게이어나간다.한편흔들리는우정과사랑앞에서해원은자신이가진돈을무기로쓰고자한다.

■타인을사랑하기엔자신을너무사랑하는

그들은모두사랑하고싶었을뿐이다.그러나사랑하는사람과사랑하며산다는이단순한문장을있는그대로살아가기란불가능에가까운것일지도모른다.모두에게좋은사람이되고싶었던한남자는어떤사람에게도좋은사람이되지않겠다는듯변해가고,예술에대한열정으로뜨거웠던한영혼은예술과생활,부모와예술,사랑과예술……모든것들사이에서어느쪽으로도치우치지못한채방황한다.이들의사랑은타인을내안으로들이며시작되지만,타인보다는자신을너무사랑한나머지이들의사랑은커나가지못한다.내가원하는사랑,내가원하는이별,내가원하는관계……불안은공포가되고분노는망상이되고사랑은광기가될때,그들이사랑한건무엇이었을까?애초에그들은타인을통해자신을사랑했던것은아닐까?“내가완성하려는사랑”이란대사가창백하고서늘하게우리가슴을베고지나간다.사랑은어떻게‘완성’되는것일까?완성이란개념이야말로사랑을광기로만드는‘버튼’이아닐까.

■책속에서

“나는웃으면서다음잔을마셨다.알싸한맛이톡톡터지는위스키였다.하지만그냥맵기만한게아니었다.아릿한자극속에앵두알처럼터지는상큼한향이화사하게입안을환기시켰고그밑에서치고들어오는건달고나처럼눌어붙은진한설탕맛이었다.나무향은은은하면서도결이고왔다.”(89쪽)

“사랑은다똑같은사랑이지.다들사랑할땐영원할것같지만,알지.그렇게되지않는다는걸.사랑할수있는때도사랑할수있는대상도늘있는게아닌걸.사랑은끝나면,그냥끝나.뭔가가죽어버리는것처럼.다시한다고해도예전같이,그열기와진동으로사랑할수는없지.깨진그릇이어붙인것처럼자국이늘남고그건사라지지않아.못본척할수있을뿐,언젠가다시충격을받으면균열은늘거기에서시작해.”(122쪽)

“나는고개를끄덕였다.하진의말대로그때는몰랐다.어렸기때문에모르는건많고아는건적었지만,생각은늘반대였다.다안다고,내가아는걸사람들은모른다고생각했다.실상은사람들이아는걸내가모르는것이었는데.뭔가를안다는건나만안다는게아니라사람들이아는것보다조금더안다는뜻에불과한데도.”(128쪽)

“보통그리움이나외로움,우울함같은걸로번역하는데생각해보면그게다갈망때문이잖아.목마른사람처럼원하고바라는거.그걸하지않는게사랑이아닌가싶기도하고.항구에서손흔들며웃는것같은마지막부분도나한텐그런느낌이고.”(145쪽)

“나는결혼을믿지않았다.내가겪은것으로서도,주변에서보는것으로서도,또내가생각하는것으로서도.사랑도마찬가지였다.결혼한사람들조차마모당하고잃어버리는것이사랑이었다.사랑은결국헤어짐으로끝난다.게다가시작부터원거리연애다.몸이멀어지면마음도멀어진다는말같은건하고싶지도않을만큼경험이충분했다.”(185쪽)

“지금은,화분같다는생각을해.키우고기르는거,상처도입히고잘못도하지만계속,같이가는거지.최선을다하면서.우리다실수하고잘못하니까.그럴수밖에없으니까.뭘몰라서,서툴어서.우리도화분속화초처럼아직크는중이니까.”(265쪽)

“자꾸기대하게되니까.특별해서사랑하는것도,사랑한다고특별할것도없는데자꾸내기대를그특별함에걸게되니까.나는해원도나도서로다른한사람일뿐이라고,제각각다른화분들처럼그렇게다르다고생각하고싶어.누군가를특별하게해주는사랑마저도실은누구나하는것이기때문에특별하지는않다고.사랑도이관계도,이런시간도단지내가원한것뿐이라고,기대하지도기대지도않고그렇게.”(272쪽)

“아름다운건살아있고,사라지는것들이야.그래서우리는그걸만들지.만들지않으면존재하지않으니까,오직사라지기만할테니까.만든다는건사라진다는걸받아들인다는뜻이기도해.거기에만든다는것의아름다움이있는거지.사라질것을알면서도만든다는것만큼살아있다는걸,사랑한다는걸증거하는건없으니까.사람들은아름다움이무용하다고,쓸모없다고들하지만나는그렇게생각안해.아름다움이야말로우리의쓸모와무용함을일깨워주니까.우린아름다운걸좋아해.아름다운걸사랑할수밖에없고그래서아름다운걸만들수밖에없지.아름다움을만드는것,그게우리의능력이야.다른어떤생물에게도없는,오직신만을닮은우리의능력.”(2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