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궤, 8일간의 축제 (반양장)

의궤, 8일간의 축제 (반양장)

$20.00
Description
33년을 기다렸다!
정조의 열망이 만들어 낸 지상 최대의 축제!

정조의 치세, 그 절정의 순간!
한국사 최대의 정치 이벤트가 시작되다!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을묘년(1795년) 화성 행차를 다룬 『의궤, 8일간의 축제』가 출간되었다.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끈 개혁 군주로 잘 알려진 정조는 극적인 삶으로 유명하다. 소설과 영화, 드라마 등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대부분은 세손 시절의 고난이나 즉위 직후의 암살 위협 등 ‘젊은’ 정조에게 초점을 맞춘다. 정조의 일부분만 보여 줄 뿐, ‘대왕’으로 불리게 한 치세 전체를 조망하지는 못한다.
『의궤, 8일간의 축제』는 정조의 치세 중에서도 절정의 순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 책에서 정조는 20년 가까이 재위한 원숙하고 노련한 왕이다. 오랜 분투 끝에 얻어 낸 왕권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고, 신하들은 숨죽인 채 왕의 다음 행보를 주시하는 중이었다.
1795년은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회갑을 맞는 해였다. 왕은 화성에서 잔치를 열기로 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향했다. 행차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가 컸다. 6000명에 달하는 수행원은 1킬로미터가 넘는 행렬을 이루었고, 그 안에 포함된 군사의 수는 도성 병력의 절반에 육박했다. 정조가 기획하고 연출한, 한국사 최대의 정치 이벤트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출발에서 귀환까지 총 8일간은 정조의 명으로 만든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낱낱이 기록되었다. 『의궤, 8일간의 축제』는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바탕으로 정조의 여정을 준비 과정에서 후일담까지 시간순으로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 낸다. 또한 조선의 기록 유산 중에서도 화려한 그림으로 이름난 의궤에 걸맞게 이 책의 본문에도 약 120컷의 컬러 이미지를 실어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이 책의 원작인 KBS 대기획 「의궤, 8일간의 축제」는 『원행을묘정리의궤』 속 화성 행차를 압도적 영상미와 충실한 고증으로 재현해 내 화제를 모았다. 휴스턴 국제영화제 대상,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대통령 표창 등 다수의 상을 받은 ‘명품 다큐’를 책으로 재구성한 『의궤, 8일간의 축제』는 방송 내용을 온전하게 옮겼을 뿐만 아니라 콘텐츠를 추가하고 최신 연구 성과까지 반영한 ‘결정판’이다.
저자

KBS의궤,8일간의축제제작팀

2년의제작기간,15억원의제작비,3700여명의스태프.KBS가제작역량을총동원해만든「의궤,8일간의축제」는방영과동시에국내외의찬사를받았다.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인‘의궤’,그중에서도최고로꼽히는『원행을묘정리의궤』를제작팀은최첨단영상기술과다큐드라마형식을통해생생하게복원함으로써과거의메시지가오늘날에도여전히큰울림을준다는것을보여주었다.
-대표연출최필곤
KBS대기획「23.5」,「황금기사의성」,「역사스페셜」등KBS의굵직한다큐멘터리를제작해온연출자다.KBS대기획「의궤,8일간의축제」를3부작으로선보인후영화로도연출했다.이를계기로경복궁근정전에서『임진진찬의궤』를바탕으로삼아고종의즉위30주년과41세생일을축하하는궁중의례를재현한‘1892,왕의잔치’를펼쳐보였으며,수원시‘정조대왕능행차’자문위원을지냈다.대한민국콘텐츠대상에서대통령표창을두차례받았다.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220년전으로들어가는문

지상최대의축제
구름처럼모여든백성
지상최대의축제
과인에게는깊은뜻이있다
더살펴보기어머니를위해만든가마,자궁가교

백성들속으로
왕의행렬,창덕궁을출발하다
반차도로만나는그날의행렬
더살펴보기이중,삼중의국왕경호
원행의난코스,한강을건너는방법
새로운길
더살펴보기정약용과서용보의악연

검게드리운먹구름
큰비가내리다
화성행궁의밤
더살펴보기사중지공공중지사

61명의합격자
대성전을참배하다
문무별시를개최하다
더살펴보기문무별시합격자명단
더살펴보기화성행궁의모습과주요건물명칭

축제의두얼굴
아버지의무덤앞에선아들
죄인의아들
서장대군사훈련
국왕의친위부대,장용영
더살펴보기오래전부터준비된정조의원대한계획

오늘은기쁜날
봉수당회갑잔치
더살펴보기봉수당진찬연에등장하는음식들

통쾌할수있지만여기서그친다
신풍루에서쌀을나눠주다
노인들을위해잔치를열다
방화수류정
밤하늘의매화꽃

미래로나아가는길
축제는끝나지않는다
더살펴보기왕의숨은귀,암행어사

기억의유포
파격적인선택,『원행을묘정리의궤』
정교하게편집된기억의유포

에필로그
정조와함께사그라진개혁의불꽃

이미지출처

출판사 서평

의궤란무엇인가?
의궤중의의궤,『원행을묘정리의궤』

의궤(儀軌)는국가의주요행사를글과그림으로정리한도서다.조선은왕실의혼인이나장례같은의식의준비및진행과정을기록해남김으로써후세에참고하고모범으로삼을수있게했다.조선왕조의의궤는2007년에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등재되면서『조선왕조실록』이나『승정원일기』와어깨를나란히하게되었다.2011년에는병인양요(1866년)때프랑스가약탈해간외규장각의궤가돌아오면서다시한번대중의관심을받았다.
『의궤,8일간의축제』에서다루는『원행을묘정리의궤』는‘의궤중의의궤’로불리는,수많은전문가가최고로꼽는의궤다.우선다른의궤들이한두권분량인데비해,여덟권이나된다.또한5~10부정도로만들어졌던관행과달리102부나제작되어널리유포되었다.완성도도매우높았는데,기록은혜경궁이탄가마의제작법에서기생의복장과막일꾼의품삯까지적을정도로상세했고,그림은원근법과투시도법같은서양화기법을채택할정도로혁신적이었다.

『의궤,8일간의축제』만의콘텐츠
채색복원된『원행을묘정리의궤』「반차도」최초수록!

『원행을묘정리의궤』의그림들은당대최고의화원들이그렸다.그중에서도가장압권인작품은「반차도」로,화성으로가는수행원1772명과말786필이그려져있다.실제행렬보다압축되어있다고는하나,그엄청난규모가감탄을자아낸다.다만당시인쇄본의특성상채색이되어있지않은데,「의궤,8일간의축제」제작팀은전문가에게의뢰해본래에가까운색을찾아주는데성공했다.이렇게채색된「반차도」는그동안영상으로만볼수있었는데,이번에『의궤,8일간의축제』가출간되면서드디어지면으로도만날수있게되었다.
이책『의궤,8일간의축제』의본문(40쪽~71쪽)에총32장으로나누어게재된「반차도」를보면우의정채제공과병조판서심환지같은조정중신들도눈에띄지만,훈련도감과장용영의군사들이가장시선을사로잡는다.그림속군사들은활기로가득차실제로움직일것만같다.김홍도에버금가는풍속화가인김득신같은화원들은그림에생동감을불어넣었고,「의궤,8일간의축제」제작팀의채색복원은현장감을더했다.

『의궤,8일간의축제』속결정적장면들

-한양이아닌화성에서회갑잔치를연이유
법도대로라면왕의거둥길에왕실여성은참여할수없었다.그런데도굳이신하들의반대를무릅쓰고화성행궁(경기도수원시)까지혜경궁홍씨를모시고간까닭은무엇일까?정조는아버지사도세자와어머니가동갑이므로,회갑잔치를생부가묻힌현륭원(경기도화성시)가까이에서열어야한다고주장해뜻을관철했다.

-이미지정치의달인정조
정조는선전과소통의중요성을이해한왕이었다.당연히자신이심혈을기울여준비한행사를백성들에게보여주고싶어했다.소식을들은구경꾼이각지에서도성안으로몰려들었고,정조는행차시작전날에숭례문의야간통행금지를일시적으로해제해호응했다.
백성들이왕의얼굴을쉽게볼수있도록어가행렬은사람이많이모이는길을골라나아갔다.구경꾼이다가와도쫓아내지못하게했다.가까이에서본왕의모습은위엄이넘쳐눈을떼기가어려웠다.왕에게억울함을호소하려는백성도몰려들었다.행차마지막날,정조가직접처리한고충만127건이었다.민폐를끼칠수도있었던행차는정조의노력과배려로축제가되었다.

-한강에다리를세우다
한양에서남쪽을오가려면한강을건너야만했다.지금도그렇지만,한강은폭이매우넓다.게다가배를타기에는인원이너무많았다.정조가택한방법은용산나루에서노량진까지가로지르는배다리의건설이었다.
한강에배다리를놓는것은정조가처음이아니었다.선대의연산군은민간의배800척을동원해배다리를만들었는데,경제적이지도못했고원성이자자했다.정조는철저한준비와연구로36척만으로도배다리를만드는데성공했다.배는강제로징발하는대신에주인들에게경제적보상을약속해반발이없게하고자발적참여를유도했다.
36척의배를개의이빨처럼지그재그로맞물리게연결한뒤,그위에판자를덮고잔디를깔았다.양옆에는난간을설치하고무수한깃발을꽂아위엄을더했다.길이약300미터,폭약10미터의거대한배다리를수천명이일사불란하게통과하는장관은장안의큰화제가되었다.

-잔치를앞두고벌인현륭원참배와군사훈련
사도세자는죄인이었다.영조가정조를효장세자의아들로입적시키기는했지만,‘죄인의아들’이라는의심의눈초리는정조를평생따라다녔다.회갑연전날,정조는현륭원을참배했다.배봉산(서울특별시동대문구)에묻혀있던아버지를1789년에이곳으로옮긴이래로한해도거르지않고찾았다.‘효’라는가치를내세운왕에게이의를제기할수있는신하는없었다.
현륭원에서돌아온정조는갑옷으로갈아입고말위에올라서장대로향했다.서장대는새롭게조성한난공불락의요새화성에서가장높은곳으로,화성을한눈에내려다보며군사를지휘하기에적합했다.이제정조가직접탄생시키고육성한최정예친위부대인장용영이등장할차례였다.
3700명의장용영군사가왕의명령에따라움직이기시작했다.칼과창,화살,조총,화포가빛을내고불을뿜으며화성의밤을밝혔다.군사훈련은새벽5시까지이어졌다.지켜보는신하들의간담을서늘하게하기에는충분한광경이었다.

-잔칫상을두번이나받다
윤2월13일,마침내회갑잔치가화성행궁의봉수당에서열렸다.손님의수나상차림의화려함으로볼때최고의잔치였다.수개월이지난같은해6월18일,혜경궁은창경궁연희당에서한번더잔칫상을받았다.혜경궁이6월생이고사도세자가1월생이라는점을짚어보면,두차례의회갑연이지닌의미는새롭게다가온다.어쩌면화성에서열린잔치는어머니가아니라아버지를위한것이아니었을까?

-취하지않은자는돌아갈수없다
회갑잔치가열리던화성행궁봉수당으로돌아가보자.술잔이돌고흥겨움이고조되자정조는건배사를외쳤다.‘불취무귀(不醉無歸)’,즉취하지않은자는돌아갈수없다는말이었다.함께행복에취하자는이건배사는전날의현륭원참배와서장대훈련으로심기가불편해진이들의마음을달래는화해와용서의메시지였다.아버지사도세자의위상을높였고강력해진왕권을과시했지만,동시에반대파에손을내밂으로써정조는통합을꿈꾸었다.

-정교하게편집된기억을유포하다
“통쾌할수있지만,여기서그친다.”우려속에서시작된정조의축제는모두의축제로끝났다.복수는없었다.한양으로돌아온정조는행복했던축제의8일을담은의궤와병풍을제작해여러곳에배포했다.새로운파국과비극을불러올수도있었던행차는이제경축과번영의상징으로기억될터였다.

대립의정치를넘어화해의정치로
정조시대를이해하게해주는최고의지침서

원작의대표연출을맡은최필곤PD는정조가화해의정치를추구했다는점을강조한다.『원행을묘정리의궤』에는총110장의그림이수록되었지만,현륭원을참배하는장면은그어느그림에서도찾을수없다.정조는33년전에죽은아버지를한시도잊지않을만큼효심이지극한아들이기는했으나,반대세력을자극하지않도록배려할줄아는현실적인정치가이기도했다.
정조의을묘년화성행차는정치적으로중대한의미를지닌사건이었다.다만그동안에는학술적인접근이주가되다보니그중요성이잘알려지지않았다.18세기말조선의복잡다단한정국속에서정조가꿈꾼세상은어떤모습이었을까?『원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전하고자한메시지는무엇일까?220여년전으로부터온,지금도여전히유효한질문을이해하는데이책은최고의지침을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