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데자뷔 (양장)

겨울 데자뷔 (양장)

$20.00
Description
나는 그저 이동하는 인간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느 때보다도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문득 떠나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다. 멀리로 떠나고는 싶은데 과연 왜 떠나야 하는지, 떠난다면 무엇으로부터 떠나야 하는지, 답이 있지는 않다. 오히려 답을 찾기 위해서라도 떠나고 싶다. 물론 찾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하루의 대부분을 ‘이동’하는 데 쓰면, 어느새 ‘그곳’은 ‘이곳’이 돼 있고, ‘나’는 옮겨져 있다고, 최유수는 당연한 이야기를 한다. 대도시도 휴양지도 아닌 거칠고 황량한 시베리아로, 겨울이라는 관념 속으로 그는 문득 떠나기를 결심한다. 항공권과 열차표의 값을 치른 순간부터 몸이 근질거리고, 이동한다는 사실 자체가 예비 여행자를 들뜨게 한다. 기다리는 순간부터 무사히 여정을 마치고 귀가하는 순간까지, 저자는 겨울을, 설원을, 제 내면을 이동한다. 그저 ‘이동하는 인간’의 발걸음은, 시리고 언 채로도 가볍다. 그 새로운 몸과 마음의 질량으로 저자는 겨울을 맞닥뜨린다.

누구나 언젠가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도착하고 나면 마침내 알게 될 것이다
이곳이 바로 그곳이라는 걸

최유수는 눈으로, 렌즈로 자연을 담는다. 찍은 날짜가 표시되지 않은, 가끔씩 포커스가 아웃된 사진이 그대로 『겨울 데자뷔』에 실려 있다. 쪽수도 없이, 캡션도 없이, 어디선가 떨어져나온 듯한 진흙과 고목과 눈과 강물의 조각은, 우리 독자들을 저자가 걷는 길로 데려간다. 산맥에서 호수로 흐르는 물처럼, 여행자의 시선과 감상이 우리에게 부드럽게 흘러 내려온다. 짧거나 길거나 나른하거나 외치는 듯한 문장 속을 따르던 우리는 어느덧, 바로 이 장면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겠다고 생각하는 여행자의 신분이 된다. 현재를 벌써부터 그리워했던 여행자의 조급함과 기쁨을 현재형 시제로 전달받으며, 당신 역시 도착한다. 그리고 알게 된다. “이곳이 바로 그곳이라는 걸.”
저자

최유수

저자:최유수

아름다운것이좋다.아름다운무언가를만들어내는사람을동경한다.오래된나무와돌담이많은동네에산다.매해겨울을기다린다.물리와우주이야기에쉽게매료되고,SF영화와서바이벌프로그램을즐겨본다.대학에서미디어아트를전공했다.홀로걷고또걷는기분으로끈질기게시와산문을쓴다.미래보다는현재에가깝게살아간다.사랑이라는추상에마음을빼앗겨있던2015년에첫책『사랑의몽타주』를썼고,뒤이어『무엇인지무엇이었는지무엇일수있는지』,『빛과안개』,『너는불투명한문』,『눈을감고걷기』,『손좀줄수있어요?』등을냈다.세권의책이나왔을즈음당시근무하던브랜드에이전시를그만둔뒤2017년부터통의동에서출판사‘도어스프레스’를운영하고있다.최근에발행한책은세계곳곳의오래된나무를담은사진집이다.

목차


데자뷔………009
시간속으로………037
시간밖으로………151

출판사 서평

누구나언젠가도착할것이다,그리고도착하고나면마침내알게될것이다
이곳이바로그곳이라는걸

강물의여정을상상한다.산맥에서호수쪽으로.오직한방향으로만흐르는물.이동하는물.어느산의고원지대에서발원해강하구를향해굽이쳐가는물의이동.열차의흐름과강물의흐름,시간의순류를따라미지의하구로향하는나의흐름까지.이렇게생각하면미래는참괴괴하다.하지만강물은알고있다.거스를수없는방향성에관한비밀을.실은열차도다알고있다.영원할지도모르는시간의비밀을.나만모른다.그래서나의미래는참괴괴하다.---104,105쪽

동서남북네개구역으로하늘이나뉘어있는데,옛날에서쪽과동쪽의신들이하늘세계에서전쟁을일으켰다.동쪽의신들은전쟁에서패했고지상에떨어졌다.동쪽의우두머리신텡그리는사지가찢겼고,이후모두지상을혼돈에빠뜨리는마법사로환생했다.그들은무시무시한힘으로기근과질병을다스려지상세계를위협했다.이에하늘신은게세르와용사들을지상으로내려보냈다.게세르는지상에내려와사악한마법사들과의전투에서고초를겪었지만결국승리를쟁취했다.그리고어느산자락에아무렇게나버려져있던석상들을발견했다.모두게세르와함께지상에내려왔다가돌덩어리로변해버린하늘의용사들이었다.그걸본게세르는눈물을쏟았다.이때게세르가오른쪽눈으로흘린눈물은바이칼호가되었고왼쪽눈으로흘린눈물은레나강이되었다.
---185,186쪽

울퉁불퉁한진흙과단단한눈덩어리가한겨울의갯벌처럼꽁꽁얼어붙어있어밟을때마다갈라지고부서지는소리가난다.마침내고대하던순간이다.바이칼호수위를걷고있는나.나를불시에집어삼켜버릴지도모르는무시무시한얼음덩어리를밟고있는나.발아래얼음조각들이무참히부서진다.신중한걸음과건조한파열음의반복을오랫동안잊을수없을것같다는생각.---198,199쪽

최유수는눈으로,렌즈로자연을담는다.찍은날짜가표시되지않은,가끔씩포커스가아웃된사진이그대로『겨울데자뷔』에실려있다.쪽수도없이,캡션도없이,어디선가떨어져나온듯한진흙과고목과눈과강물의조각은,우리독자들을저자가걷는길로데려간다.

산맥에서호수로흐르는물처럼,여행자의시선과감상이우리에게부드럽게흘러내려온다.짧거나길거나나른하거나외치는듯한문장속을따르던우리는어느덧,바로이장면을오랫동안잊을수없겠다고생각하는여행자의신분이된다.

현재를벌써부터그리워했던여행자의조급함과기쁨을현재형시제로전달받으며,당신역시도착한다.그리고알게된다.“이곳이바로그곳이라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