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 평전 : 네 얼굴의 유의 (양장)

허준 평전 : 네 얼굴의 유의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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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호

저자:김호

서울대학교국사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허준의동의보감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서울대학교규장각한국학연구원책임연구원과경인교육대학교사회교육과교수를거쳐현재서울대학교아시아연구소에재직중이다.조선의통치시스템과위기극복의역사에관심을기울이면서미래지향의한국학을모색중이다.

저서로『허준의동의보감연구』,『조선왕실의의료문화』,『조선의명의들』,『정조의법치』,『정약용,조선의정의를말하다』,『100년전살인사건:검안을통해본조선의일상사』등이있고『신주무원록』,『다산의사서학』(공역)등을우리말로옮겼다.

목차

책을내며
들어가는글:역병의시대에허준을생각하다

1역사속의허준
역사와허구
허준의젊은시절
미암유희춘과의인연
명의양예수와허준의내의원시절
인생을바친의서편찬

2동의의전통을수립하다
자연을닮은인간
이용후생과향약
속방의재발견
구급과역병대책

3조선의생물을탐구하다
향명,말과사물의일치
다양한동물성약재의활용
새로운본초와자연학의심화

4역병에맞서백성을구하다
1612년온역발생과『신찬벽온방』
온역을물리치는다양한방법들
연속되는당독역유행과『벽역신방』
허준의합리적태도와독창성

나가는글:네얼굴의허준을마무리하며

연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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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동의보감』으로조선의의료전통을집대성한의학자
실증에근거해우리산천의동식물지식을정리한자연학자
애민과제민정신으로역병에맞서공동체의안녕을구한역학자
조선최고의명의,유의(儒醫)허준의일생을바로읽는다

인간과자연에대한이해를바탕으로
마침내동의의전통을수립한의학자

허준(1539~1615)은사대부자제들과마찬가지로어려서부터사서삼경등유교경전을섭렵했으며,노장과불교의서책까지두루읽었다.당대조선의사상계는성리학이중심이었지만도가를지향하거나실증의중요성을강조한학자들덕분에다양한풍경을보이고있었다.유/불/선삼교를아우르면서도성리학의통치기획에부합하는의서가필요했다.
인간의생사와직접적으로연관된만큼농업과의술은백성의삶을안정시키고선정을베푸는데필수적인지식이자기술이다.조선을‘장수하는땅’으로만들고자한선조는허준에게의서편찬을명하며병들기전예방의중요성을강조하는동시에조선의약재(향약재)를활용하여많은백성들에게혜택이미치도록하라고당부했다.
조선사람의질병은조선의환경과이곳에서나고자란다양한향약재로치료할수있었다.그바탕에조선의유구한향약전통과인간의심신에대한깊은이해가있다.기질(氣)의차이를알려면인간의보편성(理)에대한이해가동반되어야한다.조선사람은보편적인간이면서동시에조선인의기질에따라특별했다.허준의동의(東醫)는중국의남의/북의에비해동쪽사람들의기질을고려하면서,동시에인간다움을갖춘보편적인사람을치료하는특별한방법이었다.

『동의보감』의보편적인간관은근본적으로성리학의수양론과부합하는것이기도했다.허준은『동의보감』에서인간의몸과마음을자연을모사한소우주로설명하고성리학자들이원하는도덕적삶,즉당위(사람다움)의근거를자연에두었다.인간이윤리적이고도덕적이어야함은그것이본성(자연)이기때문이다.자연의법칙과인간의윤리를결합하고심신의절제와조화를자연스럽고당연한삶의방법으로제시한『동의보감』은조선성리학의중요한정치적성과였다.인간의도덕적삶과그토대인자연의원리를탐구함으로써『동의보감』은조선사회에깊이뿌리내렸으며질병치료나약물투여에국한된단순한방서(方書)이상의의서로자리매김했다.이는허준이단순한의원이아니라유학을토대로불교와도가의인간론을통섭할수있는유의였기에가능한일이었다.

인술(仁術)은곧인정(仁政)이다
사회적정치적실천의모범을보인공공지식인의초상

동의의정체성을확립하는데빼놓을수없는허준의업적은조선의료의오랜전통지식을속방(俗方)으로집대성한것이다.속방가운데상당수는왕실의료를담당했던내의원어의들의처방이었기에『동의보감』에는조선왕실의의약문화가고스란히담겨있다.또한허준은민간에서널리쓰이던향약전통을수집하고정리하여속방의이름으로수록했다.향약재의명칭과함께약재를채취하고말리는방법,약재를제조하는방법까지상세하게기록하여향촌에서도쉽게활용할수있었다.고려말이후수백년동안전래된전통의약지식이후대에전해질수있었던것에는허준의노고가큰역할을했다.
이외에도허준은조선의수많은생물과약재들이름에한글을부기하여민간에서활용하기쉽도록정비했다.조선에존재하는초목과동물,날짐승과바다의생물들을정확하게명명하고약재의향명(조선이름)을밝혀널리알린다면약재의혜택을누릴사람도많아질것이었다.향약으로대체할수있는약재를굳이중국에서구입해올이유가없었다.명(名)과실(實)의상부,조선산천의약재와향명의연결은『동의보감』이이룩한가장어려운학문적성취이면서가장실용적인지식이었다.『동의보감』에등장하는여러약제와음식처방(食治)이오늘날까지도널리알려지고활용되는이유다.
노년에이른허준은1612~1613년에크게유행한온역과독역에서백성들을구하기위해역병의서집필에헌신했다.칠순의나이에도난생처음겪는당독역(성홍열)을조사하고치료하느라환자들의임상과진단을마다하지않았다.역병을여귀나마마의소행으로보고약물치료를피하던시대였다.귀신을화나게해서는안된다고여겨하늘에빌거나음식을올릴뿐이던사람들에게적극적인치료를권하려면역병의원인에대한합리적인설명과설득의과정이필요했다.또한환자의증세가가벼운단계에서심각한수준으로변할때마다증상에맞는구체적이고손쉬운처방을제공해야했다.세속의구태와금기에구애되지않고새로운의학지식을수용한허준의치료법은『신찬벽온방』과『벽역신방』으로결실을맺었으며,지금의기준으로보아도그증상의관찰과묘사가세밀하다.주술이나미신을배제하고정확한진단을강조한그의경험적,합리적태도는후대에도널리칭송받았다.
역병유행은한개인의고통이아니라공동체전체의붕괴를부르는심각한문제다.역병의극복은환자개인의감염을예방하거나치료하는데머무르지않으며환자를돌보는최소단위인가족의유지와이를넘어향촌공동체의안녕이야말로궁극의목표였다.허준은바로인술이곧인정이라는사실을누구보다강하게인식하고실천한유의였다.

의국의정신으로평생의학을연구한허준의생애

허준은내의원출사전에는서울과호남을오가며활동한유의였다.양친의집안모두무관출신으로아버지허론은무과에합격한후지방관을역임했고외가인영광김씨도전라도지역의무반(武班)이었다.허준의어머니는서녀로지방관이었던허론의첩이되어서자허준을낳았다.조선의서자들은문/무과시험에응시할수없었으며관로진출에제약이많았기때문에이들가운데일부는잡과로출신하거나의술을익혀지방의유의로활동하곤했다.유의들은지역의양반이나중앙에진출한고관대작의신병(身病)을치료하고그들가족과친구들의건강을돌보면서책객처럼드나들었다.
허준은젊은시절경학과사서를읽어여느선비들과다르지않은학식을갖추었지만과거에응시하지않았다.선조대의대표적인호남사림중한사람인미암유희춘은사서삼경과의서에밝고경향에이미의술로이름을떨치던허준을잘알고있었다.주요관직을역임한유희춘의천거로30대에내의원에들어간허준은당대최고의명의양예수를만나는행운을누릴수있었다.이후허준은사망할때까지내의원어의로활동했다.그만큼내의원의관으로서의정체성이강했다.한사람의몸을치료하듯한나라의병을치료하는의국(醫國)의정신으로충만했다.의학은단순한기술이아니라정치였다.40대에진맥에관한의서를평설한후허준의‘의국의의학론’은더욱깊어진것으로보인다.
의술이더욱원숙해진허준은50대이후전쟁중에사라진구급용의서의집필에전념했다.임진왜란직후도탄에빠진백성들을구하려면구급용언해본의서들이절실했다.언해본의서를마무리한후드디어1610년에조선최고의의서『동의보감』의편찬작업을완료했다.『동의보감』의간행(1613)을기다리는동안에도쉬지않고1612년과이듬해인1613년발생한온역및당독역의치료법을집필하여,『신찬벽온방』과『벽역신방』이연이어간행되었다.이처럼말년까지감염병연구에매진한허준은1615년향년76세의나이로세상을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