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과여성문제를중심으로한인류문화사
작품의첫페이지에는<헬레네그라스에게>라는헌사가붙어있는데헬레네는귄터그라스의딸로,작가가작품을본격적으로쓰기시작한1973년10월에잉태되었다고한다.시기적인측면과엇물려,이작품은남성중심적인사회에서살아나가야하는딸을위해아버지가들려주는이야기이기도하다.
첫째달부터아홉째달까지총아홉개의장으로구성된이작품은,이세상에처음부터존재해온인물인<내>가임신한아내<일제빌>에게들려주는이야기형식을바탕으로한다.바익셀강어귀의늪지대를배경으로,신석기시대부터,철기시대,중세,바로크시대,절대왕정기,혁명의19세기와20세기,제3제국을거쳐현대에이르기까지<내>가만났던열한명의여자요리사들에대한이야기가시대순으로전개된다.
작가는1977년9월한인터뷰에서소설을집필하게된동기에대해이렇게밝힌바있다.<그때나는우리의역사서술에서빠진부분과마주치게되었습니다.그것은여성들이역사형성에서이름없이이루어낸몫을말합니다.요리사로서,가정주부로서,식량구조를혁명적으로개선할때,즉기장을감자로대체할때중요한역할을한인물로서말입니다.>이렇게작품속의여성들은민족대이동시절에는순무를재배했고,7년전쟁시기에는감자를도입했으며,공산주의혁명시기에는양배추를들여오는등,식량문제해결을통해인류의생존에지대한역할을한존재로그려지고있다.한편작품속에등장하는요리의재료및방법또한놀라우리만치다양하여작품을읽는동안마치성대한만찬에초대받은듯한느낌을안겨주기도한다.
*남성중심사회에대한문제제기와진정한페미니즘을향한모색
여자요리사들의이야기와엇물려,<나>와마찬가지로약4000년에이르는시간동안존재해왔던<말하는넙치>,그리고그가역사상남성편만들어왔다는죄목으로여성배심법정에서재판을받는과정도작품의또한축이된다.
여기에서<넙치>는헤겔의세계정신과같은전지전능한존재로서이성과논리성의상징이다.약4000년전세개의유방이달려있는아우아의보살핌을받으며모권사회에서남자들이아무생각없이살아가던시절,<넙치>는<나>에게잡혀남자들을위한조언자역할을맡기로하고그이후로역사의주도권은남성에게넘어간다.넙치는모든시대적변동과유행의변화,모든혁명,최신의진리와진보를앞서서예견하고남자들이그에대비할수있게해준다.그러다가현대에이르러<넙치>는다시여자들에게잡히는데,넙치는남성중심의역사가초래한파멸에대해언급하며앞으로는여성들을위한조언자역할을하겠다고다짐한다.그렇지만그또한진정한대안이될수없음은작품속에서도나타나는데화자는어느한쪽의우위가아닌,제3의것을통해대립구도를허물고진정한화해에이를수있다는것을넌지시알려준다.
*동화적서술방식을통해재구성한또하나의역사
그라스는동화적서술방식에대해다음과같이말한바있다.<나는『양철북』때부터'옛날,옛날에'라는동화적서술방식을사용했습니다.그리고이렇게독특한독일적서술형식이우리문학의토대라고생각합니다.(……)나는깊이파고들어가는심리소설보다이동화형식속에더많은현실이들어있다고봅니다.>
실제로이작품의모티브가된것은그림형제의동화「어부와그의아내」이다.이동화에서어부는어느날말하는넙치를잡게되는데,마음씨착한어부는넙치가살려달라고하소연하자넙치를그냥풀어주고만다.그이야기를들은어부의아내는넙치에게가서소원을빌라고어부에게강요하고,점점큰욕심에사로잡힌아내는결국모든것을잃게된다.그후로어부의아내는무한한소유욕에사로잡힌심술궂은여인의전형이된다.그러나작중화자는그동화를가부장제를지키려는남자들의음모라고말하며,원래「어부와그의아내」는두가지판본이있었는데,남성들의욕구가파멸을불러일으키는것을내용으로한판본은남자들이불태워버렸다고말한다.그불타버린판본을토대로한작품이바로『넙치』이며,그라스는이작품에서<백과사전과도같은풍부한지식의소유자>라는찬사에걸맞게인류사에대한해박한지식과뛰어난상상력을바탕으로상세하고진실된또하나의역사를재구성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