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현실을희극으로재현해낸작가프리드리히뒤렌마트
현대사회의병폐와개인의좌절을고발하는위악적인풍자와통렬한해학
전후독일연극의부흥을이끌어낸주역뒤렌마트의대표작들
▶뒤렌마트는극장에모인관객자신의모습을,그들의모든변덕,무지,악습,그리고앞으로나아갈수있는가능성을보여주었다.또한그는현실인식과영민한재능,오랜철학적천착,그리고세월을통해숙성된능력을가진철학자-시인이었다.-아서밀러에
▶뒤렌마트의상상력풍부한작품들은우아한풍자정신으로조율해낸묵시적인경고와도같다.-《뉴욕타임스》
불온한상상력과날카로운비판의식으로현대시민사회의허상을정면에서고발한작가프리드리히뒤렌마트의대표희곡을모은『뒤렌마트희곡선』이민음사세계문학전집(265)으로출간되었다.이책에수록된작품은작가최대의성공작이기도한「노부인의방문」과「물리학자들」로,충격적인설정과기괴하고과장된전개,인간본성을그대로노출한인물군상을통해오늘을살아가는우리가느끼는개인과사회사이의괴리를예리하게파헤쳐보여준다.뒤렌마트는전후독일어권연극의중흥을일으켰다는평을얻은대표적인극작가로,특별한개성이빛나는희곡외에도탐정소설,방송극등다양한방면에서재능을드러내었다.
현대자본주의사회를‘개인이소멸되는사회’라고파악한뒤렌마트는작품안에서복지에대한환상,부조리한법의압제,과학기술과윤리의문제등을차례로다루며위악적이고파격적인방식으로시민사회의이상적인청사진을눈앞에서전복한다.세계적인대부호인노부인이쇠락한도시를찾아와막대한기부금을약속하며그대신도시주민들에게단한명의살해를요구한다는설정의「노부인의방문」,정신병원에스스로를격리시킨세명의물리학자들을통해냉전체제의모순과과학기술에대한인간의책임을극단적인형태로질문하는「물리학자들」은그런그의작품세계가가장명료하게투영된작품이라는평을얻었다.2차세계대전이후인간성에대한믿음이상실된세계를그대로반영한뒤렌마트의희곡은고전적인의미의비극이의미를잃어버린복잡하고불투명한오늘의세계를희극으로묘사하는‘희비극기법’을도입해개인의비극을희극의언어로이야기하고있다.웃을수밖에없는비약적인상황에서더욱강렬한비애를느끼게하고왜곡된세계상을통해반대로우리사회의진실을비추는이‘불편한희극’은영원히강렬한시의성을가지고책을읽는우리로하여금사회와자신에대해건전한회의를갖게하는의미있는고전이될것이다.
우리가믿었던세계로두번다시돌아갈수없게하는충격적인폭로_「노부인의방문」
몰락해가는소도시귈렌.한때‘행복성공제련공장’이도시의재정을윤택하게하는가운데평화를누리며,괴테가묵어가고브람스가4중주를작곡한적이있을만큼문화적으로도풍요했던이‘일급도시’는오늘에이르러공장은문을닫고도시전체가저당잡히는운명에처한다.그런귈렌에세계적으로손꼽히는부호클레어자하나시안여사가찾아온다.자선가로도유명한그녀는원래귈렌출신으로,시민들모두노부인의기부를기대하며환영회를준비한다.그리고축하연에서모두의기대를뛰어넘을정도로막대한기부액을밝힌노부인은오직한가지의조건을내건다.‘자신을버리고사생아를낳게한남자를죽일것.’누가살해해도상관없으며언제살해해도상관없다.다만그가죽을때까지계속귈렌에머무를것이며그가죽는순간수표를써주겠다는노부인의말에시민들은모두거부감을표하며대상으로지목된남자일을보호하려하지만,시간이흐를수록도시전역에서노부인의기부를믿고누군가가일을죽여줄것을기대하며빚을끌어다가그간누리지못한풍요로운삶을즐기는사람들이늘어난다.도시의부흥을건살인교사라는그로테스크한설정으로군중과그속의개인,문명사회에대한믿음과그배신을그린『노부인의방문』은풍요의욕망앞에무력한인간과현대자본주의의맹점을있는그대로포착하여당시많은관객에게큰충격을안기는한편뒤렌마트에게세계적인명성을가져다주었다.
집사:그래서이제당신은정의를원하십니까,클레어자하나시안?
클레어:자하나시안내게는정의를향유할능력이있어.누군가알프레드일을죽인다면귈렌에10억을내놓지.
(중략)
일:마녀같으니!그따위를요구할순없어!그시절은오래전에지났단말이오!
클레어자하나시안:그시절은지났지,그러나나는아무것도잊지않았어,일씨.콘라츠바일러숲도,페터네헛간도,과부볼네비좁은침실도,당신의배신도.이제우린늙었어요,두사람다.당신은연락했고,내몸은외과의사의칼아래토막났어요.이제나는우리두사람에대해담판을짓겠어요.당신은우리삶을선택했고,내삶을결정지었죠.당신은시간이멈추었길바란다고했어요.바로오늘,우리의젊은시절숲에서요.무상한일이었죠.그런데이제내가시간을멈추었어요.그리고나는정의를원해요.10억짜리정의를.(53~54쪽)
이작품에서노부인이도시에내건기부금은자신을버린남자일의목에건현상금으로,이후시민들이일을대하는태도는아주조금씩변모해간다.처음에는동지이자응원자의고결한눈빛으로,그리고점차자신들의지겨운가난을종식시켜줄사냥감을바라보는날카로운눈빛으로.특히등장인물중하나인교장이비통함에가득차속삭이는“인간성에대한믿음은힘이없어요.그걸알기에술을마시지않을수없었소.나는두렵소,일씨.당신이그랬든두려워요.아직은압니다.우리에게도한번은저런노부인이오게되겠지요.언젠가는말이오.그러면지금당신이겪는일을우리도당하게될거라는사실을아직은알고있어요.”(115~116쪽)라는고백에서우리는인간사회의본질을관통하는불편한진실을깨닫게된다.세계를바라보는분명하고비판적시선과섬뜩하고반어적인상상력으로점철된뒤렌마트의이러한작품들은책장을덮은후우리로하여금다시는전에바라보던것과같은세상을바라볼수없게할것이다.
두려움과전율가운데터지는웃음,비극적상황과해학이만들어낸뒤틀린희극_「물리학자들」
정신적인문제가있는고위층인사들을수용한정신병원세리제.그곳에는특이한병동이하나있다.바로‘물리학자들’을수용하는병동이다.저마다자신을뫼비우스,아인슈타인,뉴턴이라고착각하는세명의정신병자가지내는이병동에서간호사들이연쇄적으로교살당하는살인사건이일어난다.사건을파헤치려는수사반장과무엇인가를은폐하고있는병원측사람들사이의신경전이벌어지는와중,세명의물리학자들은서로가미치지않았음을확인하고왜자신이정신병원에들어왔는지를고백한다.외부에알려져서는안될물리학적발견과그것을노린첩보활동,그리고그모든것을둘러싸고일어나는충격적인반전.2차세계대전이후가장성공한독일어권희곡이라는평가를받은뒤렌마트의또다른대표작『물리학자들』은냉전체제로인한갈등이가시화되어있던당시국제정세를반영한작품으로,현대과학기술의발전과인간의책임문제에진지한질문을던진다.
뒤렌마트는현대사회가너무나복잡하고뒤틀려있으며무정형의사회로변화했기때문에오늘날고전적인비극은불가능하다고생각했다.따라서그는그러한현대산업사회에어울리는희곡형식은‘비극적코미디’,즉‘희비극’밖에없다고판단,사회에서더이상개별적인고유성을가질수없게된개인의비극을웃음이나올만큼과격한상황아래묘사했다.
뉴턴:내과제는중력에대해심사숙고하는것이지여자를사랑하는건아닙니다.
수사:반장알겠습니다.
뉴턴:거기다나이차도엄청났고요.
수사:반장그렇지요.선생은이백살도넘었을테니.
뉴턴:(놀라서반장을바라본다.)어째서요?
수사:반장그야,뉴턴이라면…….
뉴턴:바보가되신겁니까,반장님,아니면그런척하시는겁니까?
수사:반장이것보시오…….
뉴턴:내가뉴턴이라고정말로믿으시는겁니까?(192쪽)
이작품은전후사회전반을사로잡은광기를신랄하게풍자한다.위대한물리학자들의이름을빌려스스로를정신병원에가둔세정신병자의정체는원래자신이발견한이론의위험성을절감하고정신병원에은거한한명의천재물리학자와그런그의이론을각각자국의발전을위해사용하고자첩보요원으로잠입한두명의물리학자다.그들은솔로몬왕의음성이들린다고떠들어대며아인슈타인처럼바이올린을연주하고뉴턴인양중력문제를논하며한가로운요양생활을즐기지만곧그들이정상인이기때문에필연적으로일어날수밖에없었던사건의소용돌이에휘말리게된다.정상인이광인을흉내내고광인이정상인으로살아가면서모든것이‘미쳐’돌아가게되는이모든과정은지극히비극적이지만한편으로는이토록과장된전개에서느껴지는우스꽝스러움이있다.이두이야기는우리모두의이야기이면서,한편으로우리모두가가장상상하고싶지않은상황의이야기로,그가운데놓인부조화가냉소를이끌어내는것이다.
어느투쟁의역사,사회문제에정면으로맞서행동한지성뒤렌마트
뒤렌마트가작가활동을시작한시기는히틀러정권이몰락한다음해였고전세계를동과서로나눈냉전시대의서막이울린때였다.그의작품세계를형성한것은바로이러한격변기에사회를잠식했던문명에대한절망과인간성에대한의문이다.그는평생‘반시민사회적’성격을견지하며작품활동을해나갔는데,‘투쟁적인작가,눈치보는일이없는작가,서구에서가장혹평을받는작가’라는평판을얻으며실제로도눈치보는일없이,혹평을감수하며,투쟁을계속했다.1969년베른주대문학상을수상한그는연설을통해문학상제도와문화정책,노동자정책등을비판하여청중을당혹시켰고,받은상금을스위스역사에비판적인역사연구자,스위스사회를비판하는잡지편집자,대체복무제를주장하는정치가등에전달함으로써실질적으로문학상수여를거부하기에이르렀다.
이러한그의투쟁적성향은작품에그대로반영되어있다.뒤렌마트가작품에서보여주는세계상은하나같이왜곡되어있고,두렵게하고,놀라게하고,거부감을주고,모욕감까지느끼게한다.그것은어쩌면그가묘사하는세계가우리가사는세계의음영을극대화하여평소에‘군중’으로서인식하지못했던세계의진상을명료하게비추기때문일것이다.자본의논리아래개인의희생을말없이강요하는사회라는‘얼굴없는가해자’,아무도생각하지않으며아무도책임지지않는가운데증폭되어가는문제들,그안에서갈등하지만결국어떤목소리도낼수없는개별자의절망.뒤렌마트는고전적의미의비극이불가능한현대사회에대해언명하면서“모두가그것에책임이없고,모두가그것을원하지않았다.”라는문장을말한다.이문장은2차세계대전이후뉘른베르크전범재판에서나치주의자들이자신들의행동을정당화하기위해내세웠던말이다.철저한관료제체제아래에서각자가하는일의의미를알수없었던개인이행위의결과를예상하지않고맡겨진일을한결과는결국인류최대의비극이라불리는2차세계대전과잔혹한학살극이었다.뒤렌마트는이러한논리가오늘의사회에서도반복되고있음을지적하고그치명적인위험을똑바로직시한작가다.
뫼비우스결코감수해서는안될위험이있습니다.인류의멸망이그런것입니다.우리모두알다시피세계는이미소유한무기만으로도피해를유발하고있습니다.내연구결과가불러올피해에대해우리는충분히알수있습니다.난이런고심끝에행동한것입니다.나는가난했어요.아내와세아이가있었습니다.대학에서는명성이손짓했고,산업계에서는돈이유혹했습니다.두길모두너무위험했어요.(중략)책임감이내게다른길을강요했습니다.학문적인경력을포기했고,돈벌이를돌아보지않았으며,가족을운명에내맡겼습니다.그러곤어릿광대모자를선택했어요.솔로몬왕이나타나는양굴었고,그러자곧정신병원에갇혔습니다.(257쪽)
사회안에함몰되는개인이되지않기위해끊임없이사고하고의심할것을요구한작가,그리고자신의인생에서도일관된삶의자세를보이며투철하게싸워나간작가,프리드리히뒤렌마트는타계한지20여년이흐른지금까지도‘지금이곳’에서벌어지고있는일에대한경각을일깨우며우리를놀라움과전율로환기시키는,‘여전히’문제적인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