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왜나인가?’라는인간의가장근원적인질문에대한집요한탐구
정체성,동서양문제,내가아닌다른사람이되고자하는욕망등오르한파묵의모든주제가집약된대표작
“오르한파묵,동양에서새로운별이떠올랐다.”―《뉴욕타임스》
▶오르한파묵은보르헤스,이탈로칼비노와어깨를나란히할만한작가이며,마치셰에라자드처럼진취적이고풍부한내러티브를가진이야기꾼이다.―《뉴욕타임스》
▶터키에서가장중요한작가일뿐아니라전세계에서도최고의작가이다.―《타임리터러리서플먼트》
▶동양과서양에관하여노련하고섬세하게묘사한우아하고철학적이며역사적인작품.―《인디펜던트》
2006년노벨문학상수상작가오르한파묵의세번째소설『하얀성(BeyazKale)』이민음사세계문학전집271번으로출간되었다.오르한파묵은이작품으로“동양에서새로운별이떠올랐다.”라는평을받으며전세계에그이름을알렸다.또한카프카,프루스트,보르헤스,마르케스,이탈로칼비노,움베르토에코등최고의작가들과비견되는영예를얻기도했다.『하얀성』은이후그의작품전반에나타나는동서양문제와정체성이라는주제를본격적으로다루고있다.‘나는왜나인가?’라는인간의근본적인물음을동양과서양이서로마주보는도시이스탄불을통해진지하게접근한오르한파묵의대표작이다.
●끝까지함락되지않는‘하얀성’처럼절대다다를수없는타인,알수없는존재를향한끝없는도전
17세기,베네치아에살던젊은학자인‘나’는나폴리로향하던중타고있던배가오스만제국함대에사로잡히면서이스탄불에서노예생활을하게된다.‘나’를노예로삼은사람은‘호자’라는젊은남자로,각종학문특히과학에관심이많은사람이다.놀랍게도그의외모는‘나’와아주닮았지만,그는그것에는무심하고,오직노예가가진학문적지식과그가살던나라이탈리아에만관심을보인다.호자는서양의발달된기술과그곳에서의삶을동경하며,자기가태어나살고있는동양을바꿔보려는꿈을지니고있다.그는‘노예’에게서그곳의모든것을알아내려고한다.한편‘나’는끝까지무슬림이되기를거부한채다시이탈리아로돌아갈날만꿈꾼다.하지만호자의끊임없는요구에어쩔수없이이탈리아에서의삶에대해이야기하게된다.그리하여모든면에서쌍둥이처럼닮은이두사람,터키인호자와이탈리아인노예는서로의지식을공유하기시작했을뿐아니라,서로의어린시절과가슴아픔과거까지함께나누게된다.
그렇게몇년이지났을때,이스탄불에흑사병이돌아사람들이죽어나간다.그리고호자의몸에도의심스러운반점이나타나기시작한다.처음에호자는두려워하는‘나’를비웃지만점차겁에질리고,어느날밤둘은함께거울을들여다보며서로의닮은점을찾게된다.“그는내가되고,나는그가되기를원했다.서로옷을바꾸어입고,그가수염을깎고,내가그수염을턱에붙이면될거라고했다.”‘나’는두려움에휩싸여호자의집에서도망치지만,흑사병을퇴치하라는황제의명을받은호자는‘나’를찾아와도움을구한다.결국둘은이병의확산을막기위해머리를맞댄다.주인과노예였던둘사이에점점동지애가싹트고,나아가서로에게자신의모습을투영하기시작한다.
내마음속에는아주다른감정이있었다.내가그자리에있어야했다.왜냐하면내가호자그자신이기때문이었다!내가자주꾸던악몽처럼,나는나자신과분리되어밖에서보고있었다.나자신을멀리서바라볼수있는것으로봐서나는내가아니라다른사람이었다.나의정체를뒤집어쓴이사람이누구인지알고싶지도않았다.내앞에서나를알아보지못하고지나가는나자신을두려운시선으로바라보고있을때,가능한빨리그와함께하고싶었다.(본문중에서)
흑사병이물러가고이공로로호자는황실점성술사의지위에오른다.이를계기로그는오래전부터구상해온전쟁무기를만들기시작한다.‘나’역시그를돕지만,이무기는불행히도전시에전혀효과가없었고,오스만군대는패배한다.사람들은베네치아노예인‘나’가불운을가져왔기때문이라고하며그를죽일것을요구한다.그리하여마침내호자와노예는서로의신분을바꾸어,터키인호자는이탈리아에가고이탈리아인노예는호자의신분으로터키에정착한다.그리고터키에남은노예는호자를그리워하며자신과그의이야기를『하얀성』이라는책으로쓰게된다.
우리는성을바라보았다.성은높은언덕위에있었다.깃발이걸린탑에지는해의희미한붉은빛이반영되고있었다.그러나성은하얀색이었다.새하얗고아름다웠다.어쩐지이렇게아름답고도달하지못할존재는꿈에서만볼수있을거라는생각이들었다.그꿈에서어두운숲속의구불거리는길로,언덕에있는밝고하얀건물에도달하기위해서황급히뛰어가면그곳에참가하고싶은축제,놓치고싶지않은행복이있을것만같았다.(본문중에서)
●‘나는왜나인가?’라는가장근원적인물음,
『내이름은빨강』,『검은책』으로이어지는정체성탐구의시작
호자(동양)와노예(서양)는서로를바라보며처음에는다른점만을발견한다.호자는자신이살아온동양을부정하며서양을닮기를원하고,노예인‘나’는그곳사람들을이해하지못하고고향이탈리아로돌아갈날을꿈꾼다.그러나이들은점차서로의공통점을인식하게되며,마침내서로의삶을바꾸게된다.오르한파묵은“소설의심장부에쌍둥이이야기가있습니다.나는정체성의고뇌를어떤게임의형식으로이테마에접목시켰습니다.주인공들이서로닮거나닮지않는것즉서로의정체를상호간의거울로사용한것은영원한정체성문제를게임화하고자했던것입니다.”라고이소설의주제를요약한바있다.
오르한파묵은주인공들의‘차이’에주목하는것이아니라‘유사성’에주목하고있다.“모든삶은서로닮은것”이라는소설속말처럼,어떤세계나어떤삶,어떤사람이특별히다른것이아니라는뜻이다.그런삶속에서정체성을발견하는것이야말로인간이끝까지고민해야하는문제이다.그러므로동양과서양역시어느한쪽이우월하다고볼수없으며,서로영향을주고받아야하고주고받을수밖에없다고이해할수있다.오르한파묵은이러한문제에대해이후작품들인『검은책』,『내이름은빨강』등을통해서도꾸준히고민해왔고,정체성과동서양문제를주제로한3부작을완성했다.
『하얀성』은서로다른세계의두주인공을통해동서양의정체를모색하는동시에이해하고자하는작품이며,우리가누구이며,무엇을원하며,어떻게행복해질수있느냐에관한자기성찰적인소설이다.동서양문제에관해파묵의말을다시한번부연하자면‘동양은동양이되지말며,서양은서양이되지말라.’라는바람이이소설의궁극적인모티프라할수있을것이다.때문에파묵은노예의입을통해“어쩌면몰락이란우월한사람을보고그들을닮으려하는것을의미하는지도모른다.”라고우회적으로표현했을것이다.(「작품해설」중에서)
●‘작가의상상속에서모험을계속하는책’
헌사와서문에서부터작가후기까지,독자들에게끊임없이말을거는오르한파묵
오르한파묵은이책에서“좋은이야기란처음부분은동화처럼천진난만해야하며,중간부분은악몽처럼무서워야하고,마지막부분은이별로끝나는사랑이야기처럼슬퍼야한다.”라고쓰고있다.소설『하얀성』은그의이말처럼전개되는데,파묵은「『하얀성』에관하여」라는작가후기를통해어떤책들에서영감을받았는지,형식이나기법에대해어떤고민을하고어떻게해결했는지,자기삶의어떤부분을이책에반영했는지를밝히고있다.이글은소설의서문과뚜렷이대별된다.서문은현대를살고있는‘파룩다르븐오울르’라는인물이옛문서사이에서필사본하나를발견했고,그것을현대언어로옮겨이책『하얀성』으로출간한다고쓰고있다.독자들에게이책에쓰인일들과등장하는인물들이17세기에실재했다고느끼게하는글이다.그러나서문을쓴‘파룩다르븐오울르’는오르한파묵의두번째소설『고요한집』에등장하는역사학자이며,이책을헌정한‘닐귄다르븐오울르’역시『고요한집』의등장인물로파룩의여동생이다.오르한파묵은이런장치를통해역사소설『하얀성』이사실(史實)에바탕한작품으로보이도록만드는동시에,허구의인물을통해이야기를전달함으로써소설속이야기가허구임을암시한다.그러나“『하얀성』의필사본을이탈리아인노예가쓴것인지,오스만인호자가쓴것인지는나도모른다.”와같이,작품뒤에실린후기「『하얀성』에관하여」에서는이러한독자들의생각을완전히깨뜨리는언급을하고있다.소설속에등장하는수많은인물과사건들은,실제역사적사실과완벽하게맞물려있는듯보이지만,파묵은자신이조사한내용과소설의내용이어떻게같은지그리고다른지를하나하나설명하고있는것이다.
내가파룩처럼기록보관소에서연구를하고,도서관의먼지앉은책장과필사본속에서조사를하고있다고생각하는독자들에게,파룩이한일을내가떠맡고싶지않다고말하고싶다.나는단지파룩이찾은몇몇세부사항을유용하게사용한셈일뿐이다.이세부사항을내가처음으로역사소설을쓸때즐겁게읽었던스탕달의『이탈리아이야기』에서배웠던오래된그방법,그러니까‘발견된필사본방법’을통해파룩을시켜서문부분에쓰게했다.(「『하얀성』에관하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