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낯선지구가한없이친근해질때까지,별난외계인의별난지구탐사일지
1992년바르셀로나올림픽을한두해앞두고두외계인이에스파냐에착륙한다.이들은생김새를자유자재로바꿀수있는특성을이용해지구의생활형태를탐사하려한다.‘나’는동료구르브에게착륙지점일대의탐사를일임하는데,구르브는에스파냐의유명여가수마르타산체스로변신해탐사에나선뒤로연락이두절된다.혼자남은‘나’는구르브를찾기위해유명인사들로모습을바꿔가며바르셀로나일대를헤매다닌다.복잡한대도시를무작정돌아다니며구르브를찾던‘나’는거처로사용하던우주선에문제가생기자은행계좌를조작해마련한돈으로아파트를얻고구르브의연락을기다리며본격적으로지구생활을시작한다.단골음식점의주인부부나아파트수위와친분을쌓고,이웃집미혼모에게반해그녀와데이트할방법을강구하는가하면날마다사람들과어울려술에취해사건을일으키고경찰서를들락거린다.그렇게요지경같은지구생활에적응해가기를이십여일이지났을때,‘나’에게수상한초대장이날아든다.
『구르브연락없다』는멘도사자신이말하듯매우“유별난”소설이다.주인공은자유자재로생김새를바꾸는외계인으로,낯선지구,낯선대도시에서보고듣고경험하고느끼는바를매일매시(심지어술에취한순간까지도)일기를쓰듯빠짐없이기록한다.외계인이영화배우나교황,동물로변신하고지구인처럼눈물을흘리다몸이쪼그라들거나더위에약한머리가폭발하는등공상과학소설같은설정이주는재미에더해시간마다기록되는현재형문장들은바로지금외계인과함께바르셀로나를여행하는것같은현장감과속도감을느끼게한다.또한술에취해경찰서에끌려가고,이웃집에잠입해도사견을페키니즈로바꿔놓고,아픈주인부부를대신해음식점을맡아기계를몽땅고장내는등좌충우돌하며지구생활에적응해나가는외계인의모습은시종일관웃음을유발한다.『구르브연락없다』가멘도사의다른걸출한작품들을제치고가장높은판매고를올린것은특유의유머와입담이200쪽남짓되는이짤막한소설에서폭발하듯터져나오기때문일것이다.
■에스파냐서사전통과기발한상상력,유머의향연이만난유쾌한풍자소설
『구르브연락없다』는1990년여름《엘파이스》에연재되고이듬해책으로출간되었다.‘외계인의일기’라는설정은1990년대초반에나온소설로서는상당히파격적이고독창적이다.그러나이외계인화자가전혀낯설고새롭기만한존재는아니다.술과여자를좋아하고가는곳마다말썽이끊이지않는모험가,세르반테스의『돈키호테』가떠오르지않는가.멘도사는이미전작에서에스파냐전통문학양식인피카레스크소설의인물과구성을꾸준히패러디해왔다.『경이로운도시』의오노레프,삼부작(『납골당의미스터리』,『올리브열매의미로』,『미용실에서생긴일』)의이름없는탐정처럼『구르브연락없다』의화자역시에스파냐문학전통에작가의기발한상상력을더해전형적인피카레스크주인공을외계인으로패러디한것으로볼수있다.전통적인피카레스크소설이주인공을통해사회의부조리와부패를들춰내고풍자하듯『구르브연락없다』역시외계인의탈많은지구적응기를통해사회전반의문제들을,예컨대빈부격차와인종문제까지폭넓게건드린다.
21:00(중략)지구인들은여러범주로,특히부자와빈자로나뉘는모양이다.그이유는,나는잘모르지만그들이무척중요하게여기는문제들중하나다.내가보는부자와빈자의기본적인차이점은이런것같다.부자들은그들이가는곳에서그들이원하는것을아무리많이손에넣거나아무리많이소비해도돈을내지않는반면,빈자들은땀을뻘뻘흘리면서까지돈을낸다.
09:50(중략)모든인종들중에서흑인은(말그대로피부가검은사람은)백인보다나은특별한재능을,즉크고,강하고,빠른재능을타고났다.물론어리석기는흑인이나백인이나마찬가지다.백인들은흑인들을존중하지않는데,그것은아마도백인들의집단적인잠재의식속의먼옛날,그러니까흑인이지배층이고백인이피지배층이었던시대의아픈기억때문일것이다.
그러나짧고가벼운작품의특성상이러한문제를깊이파고들기보다는철저한이방인의시선을통해잡다하고일상적인인간사의우스꽝스럽고부조리한면면을새롭게비틀어보는해학적인재미에중점을둔다.이러한재미는작품전반에적절하게쓰인과장과익살로더욱증폭된다.
01:30나는무시무시한굉음에놀라잠이깬다.수백만년전에(혹은더오래전에)지구에는끔찍한지각변동이있었는데,사나운대양은해안을휩쓸며섬들을집어삼키고,거대한산맥은땅속으로폭삭가라앉고,용암을분출하던화산은폭발하면서새로운산을형성하고,엄청난지진은대륙을이동시켰다.이도시의시청은시민들에게이러한자연현상들을각인시키려고밤이면밤마다청소차를아파트에보내서엄청난굉음을유발시키나보다.
21:30나는호텔근처가게에서햄버거를먹는다.고깃덩어리를대충분석해보니,거세한소,당나귀,아라비아낙타,코끼리(아시아산과아프리카산),비비,누,메가테리움이들어있고,말파리와잠자리,배드민턴라켓,너트,병마개,자갈,극소량의이물질까지섞여있다.
03:41아니다.그게아니다.느닷없는소동에웨이터가뛰어온다.모나코의스테파니공주와약혼자가예약한만찬석이란다.예약날짜는1978년4월9일이지만,예약은아직까지취소되지않았고,그렇다고파기할수도없단다.일주일에한번씩은식탁보와냅킨을세탁하고,식기세트를닦고,꽃장식을바꾸고,벌레들을퇴치하고,빵(백색밀과콩으로만든빵)을오븐에서갓구워낸것으로교체한단다.그러고보니실내한쪽구석에거미줄을둘러쓴사진기자대여섯명이진을치고있다.
『구르브연락없다』는짧고가벼운,말그대로소품같은소설이다.멘도사의말대로이작품에는“우울한그림자가없다.관점도예외적이고,경이로운세상에대한시각이다보니,비극도없고,비판도없다.”하지만달리보면『사볼타사건의진실』과같은전작들의압도적인무게와신랄함대신매순간번뜩이는상상력과유머로독자의혼을빼놓고무방비로일상을발가벗기는노련한고수의소설이바로『구르브연락없다』인것이다.
■가장에스파냐작가다운작가멘도사가바르셀로나에바치는오마주
『구르브연락없다』의화자는전통적인피카레스크소설의주인공들처럼사회의어두운면을풍자하는역할만하지는않는다.유쾌한풍자와해학이가득한외계인화자‘나’의모험일기를통해우리는올림픽준비로시끌시끌한대도시바르셀로나를속속들이마주하게된다.온통공사중인대로며미술관과박물관,비둘기들이똥을싸지르는국립공원,인테리어상을받은술집에,미식가가쓴책에나오는레스토랑까지,바르셀로나의온갖명소들을방문하고그가변신하는인물이나대화를나누는인물들을통해당시바르셀로나의명사들,그에얽힌유명한사건들과도만나게된다.나아가카탈루냐지방의노래,춤,음식,방송프로그램,격언과사투리까지접하고나면이책이유머러스한바르셀로나여행에세이처럼보이기도한다.
04:20자?왜,구르브?넌우리별로돌아가고싶어?그야물론이지.너는안그래?아,몰라,난모르겠어.사실우리별은너무따분하고고루해.구르브,넌아직도어떤미련이남아있나보구나.그래,사실난여기남았으면해.(중략)이도시는땅을파고또파도,그때마다황금이나오는금광같은곳이잖아.
이방인의눈에비친지구와지구인들의삶은복잡하고불편하고지저분하며모순덩어리이다.그러나아이러니하게도구르브와‘나’는결국지구에남는다.“금실좋은부부”처럼지내왔다는바르셀로나에대한멘도사의진솔한애정이느껴지는대목이다.멘도사는외계인의입을통해바르셀로나를조롱하면서도그곳만의매력과가치를독자들에게널리전하려하는것이다.이에대해번역자정창은이렇게말한다.“애증은상대적이고반어적이다.미움의이면에는그만큼아끼는마음이함축되어있다.이러한의미에서이책『구르브연락없다』는작가에두아르도멘도사가자신의고향(조국)카탈루냐에,자신의도시바르셀로나에,나아가1992년바르셀로나올림픽에바치는오마주인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