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자들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8

정복자들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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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앙드레 말로의 인생관이 드러난 역작!
20세기 프랑스의 행동하는 지성 앙드레 말로의 대표작 『정복자들』. 《인간의 조건》, 《왕도》와 함께 말로 3부작을 이루는 작품으로, 말로를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의미 있는 작품이다. 저자 자신이 청년 시절 경험한 식민 체제, 격동기 중국의 국민당 활동 등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재 방식과 존엄성의 보존이라는 무겁고 철학적인 문제를 현실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말로 3부작 가운데 첫 작품인 이 소설은 광둥 총파업이라는 1925년 중국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익명의 프랑스인 서술자가 광저우에 도착해 옛 친구이자 국민당 선전부의 사령관인 가린과 조우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20세기 초엽 유럽인에게 이국적인 공간인 중국으로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오리엔탈리즘적 소설로 비판받지 않는다. 당시의 중국을 여행자의 시각으로 소개하거나, 현장의 경험을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이유에서다. 저자는 1925년 3월 12일 쑨원의 사망 탓에 생긴 지도력 공백과 국민당 내부적 권력 다툼 문제를 다루면서 혁명의 대의에 투신했으나 이념과 목적이 서로 달라 갈등하는 여러 정복자들을 보여준다. 실존 일물과 허구 인물을 첨예한 갈등 구조 속에 혼재시키고 자신의 실제 경험과 역사적 사실을 작품 안에 분배하면서 이야기를 전략적으로 구조화해냈다.
저자

앙드레말로

저자:앙드레말로

1901년파리에서태어난말로는부모의이혼으로식료품가게를하던외가로이사하여어머니와함께유년시절을보냈다.주말이나방학은프랑스북부항구도시됭케르크에서부유한선주집안이었으나가계가기운친가에서보냈다.1918년학업을포기한뒤독학으로문학,예술,동양문화등다방면의지식을쌓았다.

세련된멋쟁이이자권위를부정하던반항가말로는1923년주식투자실패로파산하고나서아내클라라,죽마고우루이슈바송과캄보디아앙코르와트로떠났다가도굴혐의로식민당국에체포되어실형을선고받았다.아내의구명운동으로석방된후파리로돌아온그는자신이경험한식민체제의부당함에맞서싸우고자다시인도차이나로떠났고,1925년쑨원사망이후중국혁명의혼란기에국민당소속위원으로활동하며격동기의중국을경험했다.1928년발표되자마자약관의말로를위대한작가의반열에올려놓은『정복자들』은바로이시기의경험을배경으로하며탐험가,예술가,소설가,독재에맞서싸운투쟁가,제도권내정치인으로서훗날그의인생전체를관통하게될사상의원형을엿보게한다.

격동의20세기를마치소설속인물과도같이파란만장하게살았던그는1976년폐울혈로사망했다.1996년11월23일서거20주년을기념해유해가파리팡테옹으로이장됨으로써그는프랑스공화국을빛낸위대한영웅들과함께영원한안식에들었다.



역자:최윤주

성심여자대학교불어불문학과및같은대학원을졸업하고프랑스파리7대학에서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가톨릭대학교와한불문화재단에서강의하고있다.논문으로는「알베르카뮈의『이방인』연구:‘반대오이디푸스’에서‘반(反)오이디푸스’로」가있으며,옮긴책으로는로제다둔의『폭력:폭력적인간에대하여』가있다.

목차

목차
1부접근9
2부권력95
3부인간199
작품해설281
작가연보297

출판사 서평

▶말로문학의정수가담긴3부작의첫권
20세기혁명에대한날카로운통찰이담긴한시대의보고서

1928년발표된장편소설『정복자들』은발표되자마자약관의말로를위대한작가의반열에올려놓은유의미한작품이다.이소설은말로자신이청년시절경험한식민체제,격동기중국의국민당활동등날것의경험을자본삼아인간의존재방식과존엄성의보존이라는무겁고철학적인문제를손에잡힐듯현실적으로전달한다.광둥총파업이라는1925년중국에서일어난실제사건을배경으로약두달간의시간을다루는이소설은익명의프랑스인서술자가광저우에도착해옛친구이자국민당선전부의사령관인가린과조우하는여정을기본플롯으로삼고있다.서술자가혁명의격전지에서당내혁명가와비밀경찰들을차례로만나가며혁명의진행과정을목격해가는『정복자들』은가린이란한인물에게점차접근하여그의사고방식과세계관변화의추이를따라가는일종의탐정소설이기도하다.
『정복자들』은쑨원의국민당이베이징군벌정권과제국주의열강에대항할목적으로1923년수립한3차광둥정부를주요무대로삼는다.작가는1925년3월12일쑨원의사망탓에생긴지도력공백과국민당내부적권력다툼문제를다루면서혁명의대의에투신했으나이념과목적이서로달라갈등하는여러‘정복자들’군상을선보인다.테러리스트우두머리이자급진좌파인중국청년홍,소비에트와의긴밀한협력아래활동하는관료적공산주의자보로딘,민족주의운동의정신적지도자이자우파진영을대표하는중국의간디쩡다이그리고소설의주인공이자야심만만한개인주의전략가가린등을등장시킴으로써,이작품은적과동지를구별할수없는냉엄한현실의긴장감을시종일관유지한다.또한말로는보로딘이나랴오중카이같은실존인물을주변인물들로배치함으로써작품의실제감을한결높인다.

이작은공간에400~500명이있다.책상옆에는머리카락이짧은여학생몇몇이있고천장에매달린대형선풍기들은무거운공기를힘겹게휘젓는다.서로서로다닥다닥붙어앉거나사이사이빈자리를두고앉은청중들은주로군인,학생,소상인,하역인부들로몸은움직이지않지만마치짖어대는개들처럼목을앞으로쭉내밀고서목소리로지지를표한다.팔짱을끼거나무릎위에팔꿈치를기대고있거나손으로턱을괸사람이라곤전혀보이지않는다.모두들죽은듯이빳빳하게상체를똑바로세우고상기된얼굴에턱은앞으로내민채로함성과괴성을계속해서불규칙적으로내지르고있다.
“그자들은그들이우리에게자유를가져다주었다고말합니다.우리는이미오년전부터제국주의영국을마치달걀을깨듯이부숴버렸으나그자들은군벌채찍아래배를깔고납작엎드려기어다니고있었습니다……!그자들은돈으로매수한첩자와하수인들을동원해서자기들이우리에게혁명을가르쳤다고떠들어댑니다……!과연우리가그들을필요로했던가요……?태평천국장수들이러시아인고문들을두었던가요……?의화단대표들은요?”
상스러운중국어로격렬하게내뱉는이모든말들이점점더빈번히터져나오는“그렇지!옳소!”라는함성에중간중간끊어진다.(『정복자들』188~190쪽)

중국혁명에대한말로의통찰을엿볼수있는부분이다.노동조합의강당에서열린‘라정크회합’은공산당을포함한국민당내부좌파의갈등과분열을보여주면서도혁명을향한중국인들의거칠지만순수하고강렬한열망을독자에게각인해준다.이회담에는직업혁명가보로딘은물론혁명사령관인가린도병환으로참석하지못하는데,여기서중국혁명에대한말로의전망을짐작할수있다.‘정복자들’의시대는머지않아종말을고할것이며,늙고병든서양에의존하지않고독자적인세상을구축하겠다는중국의결코녹록지않은투쟁이비로소시작되는것이다.

▶현대적글쓰기의모범!
강렬하며간결한문체로사건의긴장감을더한르포르타주문학의수작

앙드레말로는초대프랑스문화부장관을지내면서“국가는예술을감독하기위해서가아니라예술에봉사하기위해서존재한다.”라는원칙을강력하게내세웠다.예술이사치가아니라삶을영위하기위한필수활동인말로에게있어서현실과괴리되지않는예술을드러내는형식의중요성은상당하다.
『정복자들』이오리엔탈리즘적소설로비판받지않는이유는이작품이20세기초엽유럽인에게이국적인공간임에분명한당시의중국을여행자시각으로소개하거나,현장의경험을주관적으로평가하는데관심을두고있지않기때문이다.그는실존인물과허구인물을첨예한갈등구조속에혼재시키고,자신의실제경험과역사적사실을작품내적재적소에분배하면서이야기를전략적으로구조화하는데,이과정에전통적서술방식은철저히배제돼있다.
『정복자들』의서술자가제공하는정보량은지극히제한되어있기에등장인물들이처해있는상황과그들의심리적갈등을독자에게알려주는독서의안내자가되어주지못한다.게다가실제사건을다룬소설이라고는하지만역사소설로보는것이무리일정도로사건의개괄적인정보조차소설속에는거의드러나지않는다.사건의부분적정보,등장인물의단편적인의견등이짧은보고나무선전보등의형태로파편화되어제공된다.이불친절한내러티브에서느끼는독자의불안감은소설속현장의긴장감과절묘하게궤를같이한다.

6월25일.
‘광저우에서총파업이결의됐다.’
어제부터붉은색밑줄이그어진이무선전보가나붙어있다.수평선까지얼어붙은인도양은마치옻을발라놓은것처럼번들거리기만할뿐(배가지나간흔적도없이)꿈쩍도않는다.(『정복자들』11쪽)

5시.
‘사몐.전기가들어오지않는다.조계지전역이암흑속에묻혔다.교량은신속히보강됐으며철조망으로통행이차단됐다.포함탐조등이교량을밝히고있다.’(『정복자들』16쪽)

소설은날짜와시간을병기하며서술자‘나’의일지를보여주는형태로전개된다.어느날은상세하게기록되어있지만어느날은위에인용한것처럼무선전보한통으로일축되기도한다.제한된서술자설정뿐아니라건조하고간결한문체를통해서독자들은중국혁명의소용돌이라는폭력적이고도한치앞을내다볼수없는불안한현실에자연스럽게동일시하게되는것이다.

▶부조리할지라도인생은무의미한것이아니다!
총대신펜을든행동하는지성앙드레말로의인생관이오롯이드러난역작

소설보다소설같다고평가되는앙드레말로의삶은끊임없는그의모험에기반한것이다.고대도시발굴을위한아라비아반도상공비행이나,스페인내전당시비행기조종사로참여한전투그리고2차세계대전의포화속에서나치정권에맞선저항운동,제도권내정치인으로서프랑스드골정권에서십여년간문화부장관으로서행한공무에이르기까지그의모험은실로다양하다.다양한세계에의편입과공동체구축의열망은‘인간’과존재방식과‘사회’와의상호작용에대한말로의깊은고심을보여준다.자칫광둥총파업이라는시의성짙은소재에국한하여읽힐수있는『정복자들』은원하는바를쟁취하려는정복자,그리고그가극복하기힘든의구심과자기고뇌를그리고있는데,이는특이한인간유형에해당된다기보다는원초적욕망을지닌보편적인간의이야기임을알수있다.이러한인간의기질과외부세계와의조응에대한말로의관심은『왕도』(1930),『인간의조건』(1933)까지계속이어진다.

“말도안되는세상에서살든그렇지않은다른세상에서살든……이세상의덧없음에집착이나확신이없다면의지도없는거고,심지어진정한삶도없는거지.”
그가인생에부여하는의미가바로이런생각에달려있으며그의의지가부조리라는뿌리깊은강렬한감정에서비롯됨을나는잘안다.만일세상이부조리하지않다면그의인생전체는인생의근본적인덧없음(따지고보면그를열광케하는)때문이아니라그어떤희망도찾을길이없다는허망함때문에산산이흩어져버릴것이다.바로그렇기때문에가린은자기생각을고집하고있다.(『정복자들』261쪽)

혁명의영웅이자탁월한전략가로활동했던가린이자신의생을회고하는것을서술자‘나’가듣는장면이다.『정복자들』의등장인물에게있어인생이란부조리한것이지만무의미한(무의미해도되는)것은아니다.가린은‘진정한삶’을살기위해어떠한‘의지’가필요하다고하는데이의지는아이러니하게도생의무상함에서오며이는“따지고보면그를열광케하는”것이다.지드는니체가꿈꿨던초인에가장가까운인물이가린이라고말하기도했는데“신은죽었다.”라고말한니체가그저허무주의에그치지않고마지막희망을제시한것에주목해본다면가린은분명초인(Ubermensch)에들어맞는인물이다.요컨대니체는아득한천상이아닌우리자신안에잠재된권력에의의지에주목함으로써삶의유의미성을회복할수있으리라고주장했다.실제가린이끊임없이극복하고자하는대상은외부의적이나현실상황이아니라바로자기자신이다.부조리라는자명한현실은『정복자들』을혁명으로이끌어낸근원이며,말로예술전반의동력이기도하다.시련과시험의연속인인생에서삶의의미를찾으려는사람이라면피할수없을근본적인물음(산다는것은무엇인가,어떻게살아야하는가.)에대한답을찾는이소설은예술가의엄정한세계관이오롯이드러난,시대의살아있는보고서인동시에개인과사회의갈등,인간본연의본성규명과같은우리모두가풀어야만하는현재적물음이자그에대한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