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걸음으로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4

게걸음으로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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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가던 1945년 1월 발트해, 독일 여객선 빌헬름 구스틀로프호는 피란민 및 병사 9000여 명을 태우고 어뢰정 뢰베호 단 한 척의 보호만 받으며 바다로 나간다. 그리고 러시아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 세 발을 맞고 침몰한다. 아비규환 속에 ‘여자와 아이 먼저’라는 암묵적 규칙은 무너지고 각자의 생존만이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선장 넷을 비롯해 1000명 남짓만이 살아남은 이 사고의 희생자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 아이들이었다. 역사상 최악의 해상 사고지만, 이 비극적 참상의 전모는 거의 밝혀지지 않은 채 역사의 무덤 속에 매장되어 있었다.

올바른 역사 인식 없이 이러한 사건들을 바라볼 때, 혹은 뚜렷한 정치적, 이념적 목적을 가지고 이러한 사건들을 언급할 때, 우리는 객관성을 잃거나 사건 속에 숨은 진실을 놓치기도 한다.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민간인들의 죽음, 여성과 아이 들의 희생 등 그 엄청난 수치(數値)를 내세워, 이 사건은 독일 사회 내에서 신나치주의를 확산시키고 정치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있었다. “평생을 바쳐 독일 시민 사회의 정신적 위기 상황을 진단해 온 작가” 귄터 그라스는, 그러한 흐름이 독일의 우경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우려했다. 죽음은 “단순히 자료로만 활용”될 수 없으며, 정치적으로 이용될 바에 제대로 알고 역사의 한 장에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라스의 생각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게걸음으로』를 쓸 결심을 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저자

귄터그라스

저자:귄터그라스

1927년폴란드의자유시단치히에서상인의아들로태어났다.2차세계대전중에열일곱의나이로히틀러의나치무장친위대에징집되어복무했고,미군포로수용소에수감되기도했다.전쟁이끝난후농장노동자,석공,재즈음악가,댄서등여러가지일을전전하다가,뒤셀도르프국립미술대학과베를린조형예술대학에서조각을공부했다.이후글쓰기에눈을돌려1954년서정시경연대회에입상하면서등단했다.1958년첫소설『양철북』초고를전후청년문학의대표집단인47그룹모임에서낭독해그해47그룹문학상을받았고,이후게오르크뷔히너상,폰타네상,테오도르호이스상등수많은문학상을수상했다.1961년부터는사회민주당에입당해활발한활동을펼쳤다.1960년대에『고양이와생쥐』(1961),『개들의세월』(1963)을발표해『양철북』의뒤를잇는‘단치히3부작’을완성했다.1976년하인리히뵐과함께문학잡지《L’76》을창간했고하버드대학교에서명예박사학위를받았다.이어『넙치』(1977),『텔크테에서의만남』(1979),『암쥐』(1986),『무당개구리울음』(1992),『나의세기』(1999)등을발표했고,1995년에독일통일을비판적으로바라보는작품『또하나의다른주제』를내놓았다.1999년에독일소설가로는일곱번째로노벨문학상을받았다.2002년에오십년넘게금기시되었던독일인의참사를다룬『게걸음으로』를,2003년에시화집『라스트댄스』를발표했다.2006년자서전『양파껍질을벗기며』에서10대시절나치무장친위대복무사실을처음으로인정해전세계적인논란을불러일으켰고,2008년에는그후속편으로여겨지는자전소설『암실이야기』를출간했다.2015년4월13일여든여덟의나이로숨을거두었다.



역자:장희창

서울대학교언어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독어독문학과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동의대학교독어독문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지은책으로독서평론집『춘향이는그래도운이좋았다』가있고,옮긴책으로귄터그라스의『양파껍질을벗기며』(공역),『암실이야기』,『양철북』,『게걸음으로』,『나의세기』(공역),레마르크의『개선문』,『사랑할때와죽을때』,괴테의『색채론』,『파우스트』,에커만의『괴테와의대화』,니체의『차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후고프리드리히의『현대시의구조』,안나제거스의『약자들의힘』,베르너융의『미메시스에서시뮬라시옹까지』,카타리나하커의『빈털터리들』,부흐홀츠의『책그림책』등이있다.

목차

게걸음으로

작품해설
작가연보

출판사 서평

■독일사회의침묵속에잊혔던참사,구스틀로프호피란선침몰사건

“각자알아서자신을구하라.”
2차세계대전이끝나가던1945년1월발트해,독일여객선빌헬름구스틀로프호는피란민및병사9000여명을태우고어뢰정뢰베호단한척의보호만받으며바다로나간다.그리고러시아잠수함이발사한어뢰세발을맞고침몰한다.아비규환속에‘여자와아이먼저’라는암묵적규칙은무너지고각자의생존만이최우선과제가되었다.선장넷을비롯해1000명남짓만이살아남은이사고의희생자대부분은여성과어린아이들이었다.역사상최악의해상사고지만,이비극적참상의전모는거의밝혀지지않은채역사의무덤속에매장되어있었다.

“독일민족은휴식을취해야한다.”
“독일민족은휴식을취해야한다.”라는히틀러의교시에따라구스틀로프호는‘계급없는’‘저렴하지만행복한’여행을위해설계되었다.스위스에서한유대인청년에게암살된나치간부빌헬름구스틀로프를기리기위해그의이름에서배이름을따오고거대한명명식도열었다.신분과상관없이모두동일한객실에서잠을자고,한테이블에서식사를할수있었다.노동자와농민우선으로운항된이배는그야말로“꿈의배”였으며나치시대대(大)독일제국이라는야망의상징이었다.하지만이선박은전쟁과더불어병원선으로,병영용폐함으로,마지막으로독일패전선언직전에는피란민수송선으로탈바꿈했다.

“그배의침몰은총체적인몰락의징조이기도했다.”
고텐항은배를타기위해몰려든피란민으로이미아수라장이었다.1월21일소련군의점령이눈앞에다가오자나치는바다를통한사상최대의철수작전인한니발작전을개시했다.군수물자와교육중인사관생도,그리고피란민을안전한곳으로실어나르기시작한것이다.구스틀로프호도수송에참가하라는상부명령에따라사관생도와함께여성과아이들을우선적으로태웠다.당시승선자명단을작성한하인츠쇤의증언에따르면7956명을기록하고나서는장부가바닥났고,그후기록없이태운사람도2000명이상이나됐다고한다.1월30일정오피란민을가득태운구스틀로프호는어뢰정뢰베호의보호를받으며출항했다.그리고소련잠수함S13호는이미두세시간에걸친공격준비끝에공격목표인구스틀로프호를향해어뢰세발을발사한것이다.

1945년1월30일,즉순교자가태어난지정확하게오십년이되는날에,그의이름을따라명명된배가침몰하기시작했던것이다.또그날은히틀러가대권을장악한지십이년째되는날로,그배의침몰은총체적인몰락의징조이기도했다.-작품속에서

■독일의침묵,그리고귄터그라스의선택,‘게걸음’

“우리는아우슈비츠를결코잊어서는안된다.”
구스틀로프호의침몰은비극적인사건이분명하다.하지만독일은이사건에대해거론하는것을금기시해왔다.독일은다름아니라전쟁의가해자,구스틀로프호보다훨씬많은,헤아릴수없을정도의생명을앗아간전범(戰犯)이었으며이사건또한,반인류적범죄를저지른국가로서마땅히치러야할대가로인식되어온것이다.귄터그라스또한항상그러한입장에서목소리를내어온작가였다.“지금이시점에서우리는아우슈비츠를결코잊어서는안된다.”라는것이독일인이자작가그라스의윤리의식이었다.

지난역사,더정확히말해서우리와관계되는역사는꽉막힌변소와도같다.우리는씻고또씻지만,똥은점점더높이차오른다.-작품속에서

“이러한태만은용납되어서는안된다.”
올바른역사인식없이이러한사건들을바라볼때,혹은뚜렷한정치적,이념적목적을가지고이러한사건들을언급할때,우리는객관성을잃거나사건속에숨은진실을놓치기도한다.
구스틀로프호침몰사건도마찬가지였다.민간인들의죽음,여성과아이들의희생등그엄청난수치(數値)를내세워,이사건은독일사회내에서신나치주의를확산시키고정치적으로이용될우려가있었다.귄터그라스가이작품을쓸무렵유럽일각에서는“역사에대한때이른망각과더불어”스킨헤드족,혹은네오나치즘이꾸준히준동하고있었다.“평생을바쳐독일시민사회의정신적위기상황을진단해온작가”귄터그라스는,그러한흐름이독일의우경화가진행되고있다는증거가아닐까우려했다.죽음은“단순히자료로만활용”될수없으며,정치적으로이용될바에제대로알고역사의한장에기록되어야한다는것이그라스의생각이었다.이것이바로,그가『게걸음으로』를쓸결심을한이유가되었을것이다.

자신의죄가너무도크고그오랜세월동안참회를고백하는것이너무나절실한문제였다는바로그이유때문에,그처럼많은고통에침묵을지켜서는안되며,또한그기피주제를우파인사들에게내맡겨서도안된다.이러한태만은용납되어서는안된다.-작품속에서

“게걸음으로”
이작품에서귄터그라스는‘그노인’,‘고용주’,‘그’등으로지칭되며‘나’라는화자에게구스틀로프호침몰에대해이야기할것을요구한다.‘나’의어머니는만삭인채구스틀로프호에승선했다가간신히구조된다.그리고참사를바로눈앞에서생생하게바라보며‘나’를낳는다.‘나’는역사의소용돌이한가운데있었지만한걸음떨어져최대한객관적으로그사건을바라보려는인물이다.또한‘나’의아들‘콘라트’는전후세대를대변한다.할머니의영향으로구스틀로프호사건에집착하고홈페이지를운영하며자극적인사진과수치(數値)를통해주변을선동하는콘라트는독일네오나치즘의한면을보여주는인물이라할수있다.
그라스는중립적인인물‘나’,그리고‘나’와‘콘라트’의대립을통해사건의정치적함의나해석에서비켜서서,사건자체만을바라보고서술하려고노력한다.그래서그라스는이작품속에서꾸준히‘게걸음으로’나아간다.“우왕좌왕옆으로걸으면서느릿느릿하게,머뭇거리는듯하지만모든측면을살펴보고결과적으로는신속하게앞으로나아가는방식”이그라스의‘게걸음’이다.수치속에감춰진죽음의표정들,단한측면만을바라볼때일어날수있는역사왜곡위험등에대해경고하면서,역사의거시적차원과그알맹이를이루는개개인들의삶에주목한다,그것이야말로‘게걸음’의의미이며우리가‘게걸음으로’지난날과오늘날을돌아보아야하는이유인것이다.

과거는속죄되고극복되어야한다.과거문제를해결하려고애를쓴다는것은슬픔을이기기위한정신적노력을다함을뜻한다.-귄터그라스,작품해설에서

■거장귄터그라스를기리며

“우리삶에거대하고결정적인힘을행사하는정치에대해쓰지말아야할이유가없다.
문학은변화를가져올힘이있다.”
2002년3월25일부터27일까지사흘간뤼베크의구시가지중심부에자리잡은부덴브로크하우스에서귄터그라스의주재아래『게걸음으로』번역세미나가열렸다.한국의장희창교수를비롯하여세계20여개국번역자들이참석하였으며귄터그라스와슈타이들출판사편집자들이한자리에모였다.
세미나에필요한준비작업은이미치밀하게진행되어있었다.외국인에게낯설것이분명한용어는미리정리해해설을붙여놓았고,작품의역사적배경을설명하는자료도상당분량준비해두었다.그리고세미나시작전날에는번역자들을태워슈베린시로데려가서작품무대가되었던장소들을일일이눈으로확인시켜주기도했다고한다.세미나는귄터그라스가직접번역자들에게‘한단락한단락’짚어가며의문이없는지묻는식으로진행되었다.세미나가끝난후그라스는뤼베크콜로세움극장에서청중천여명이모인가운데『게걸음으로』를낭독했다.그때의감동을장희창교수는다음과같이회고한다.

때로는목청을돋우고때로는그어떤결단을내려야한다는듯이손으로허공을갈랐으며,배가침몰하는장면을읽는동안에는비참한모습으로죽어가는사람들을직접보고있기라도하듯,마치독일사회가침몰하고있기라도하듯슬픈표정을지으면서자신의텍스트를온몸으로전달했다.낭송을마친그라스는청중들이기립박수를그치지않자,그만하라는몸짓도하지않으면서,자기는그만한박수를받을만한자격이있지않으냐는듯이머리와상체를연방흔들어대며자신감넘치는태도로청중의진심을있는그대로받아들이고있었다.작가와독자사이의참으로경이로운만남의순간이었다.-장희창,작품해설에서

“우리삶에거대하고결정적인힘을행사하는정치에대해쓰지말아야할이유가없다.문학은변화를가져올힘이있다.”라고말하며항상양심에따라말하고쓰고행동했던한시대의거인,“우리시대의비판적인휴머니즘과실천적글쓰기를대표하는특출한지성”(《르몽드》)이자“분노의바위와같은작가”(《스웨덴한림원》)귄터그라스.그의뒤를이어전후시대를걸어가는우리,“젊은세대에겐귄터그라스의책이필요하다.왜냐하면그의작품에는현실이상의것이담겨있기때문이다.”(《뉴욕타임스》)

■이작품에쏟아진찬사

▷귄터그라스는독일피란민참사라는민감한주제를다룸으로써국가적금기를깼다.―BBC
▷독일좌파의양심그라스는이작품에서처음으로2차세계대전당시희생되었던독일인의고통에따뜻한시선을보낸다.―《가디언》
▷금기시된역사를빛나면서도감동적으로서술한,위대할정도로정교하게구성된작품.―《슈피겔》
▷이작품을읽었을때나는눈물을흘렸다.그라스의작품중가장슬픈,그러나최고의작품이다.―마르셀라이히라니츠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