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0

운명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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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운명』은 실제로 아우슈비츠, 부헨발트, 차이츠 강제 수용소를 어린 나이에 거쳤던 헝가리계 유대인 임레 케르테스가 오랜 침묵 끝에 13년간의 집필 기간을 걸쳐 완성해 낸 작품으로 부다페스트에 살던 열네 살 소년 죄르지가 갑작스럽게 타고 있던 버스에서 끌려나와 익숙했던 세계에서 갑자기 유리된 채 최악의 인간 조건으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에서 부헨발트, 차이츠 수용소를 거치면서 겪은 처참한 상황과, 그 안에서 찾아낸 담담한 일상과 순간의 행복을 대조하며 가장 비인간적인 세계 가운데 인간이 인간으로 성립하기 위한 최소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묘사하고 있다.
저자

임레케르테스

저자:임레케르테스

1929년부다페스트에서목재상을하던유대인중산층가정에서태어났다.기숙학교에들어간지얼마지나지않아시작된유대인박해에의해열네살의나이로폴란드아우슈비츠수용소에끌려갔다가악명높은독일부헨발트수용소와차이츠수용소를거쳐2차세계대전이끝나면서부다페스트로돌아온다.

일간지편집인,공장노동자,프리랜서작가,번역자로일하면서니체,프로이트,비트겐슈타인등많은철학가와작가의작품을독일어에서헝가리어로번역,소개했으며1973년에는13년간의집필기간을걸친첫소설『운명』을완성한다.이후운명4부작에속하는『좌절』,『태어나지않은아이를위한기도』등홀로코스트를주제로한일련의작품을발표하면서인간성의본질을탐구해온그는소로스재단상,라이프치히문학상,헤르더상등전세계주요문예상을수상하며세계적인명성을높인다.2002년노벨문학상을수상한그는그다음해운명4부작의마지막작품인『청산』을발표한다.

문학과인류에대한공훈을인정받아헝가리최고의훈장인성이슈트반훈장을받은그는2016년향년86세의나이로부다페스트자택에서타계하였다.



역자:유진일

한국외국어대학교헝가리어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수학하던중국비유학생으로선발되어헝가리에서유학하였다.부다페스트대학교(ELTE)에서석사학위와박사학위를받은후,한국외국어대학교헝가리어과교수를역임하고,현재헝가리어과에서강의중이다.지은책으로『헝가리어첫걸음』,『책으로읽는21세기』(공저),『동유럽영화이야기』(공저),『동유럽·발칸,민주화와문화갈등』(공저)등이있고,옮긴책으로모리츠지그몬드의『모리츠단편집』,황순원의『Kagylohejak(단편집)』,『유럽소설에빠지다』(공역),『눈을뜨시오.당신은이미죽었습니다』(공역)등이있다.대표논문으로「케르티스임레소설의구조적특징」,「케르티스임레소설의아이러니연구」,「수용소문학으로서의케르티스임레소설의특징」등이있다.

목차

운명7
작품해설287
작가연보303

출판사 서평

■매일매일죽음을일상으로살아야만했던
한소년이발견한삶의근본적이고절대적인진실

부다페스트의중산층유대인부모아래에서아무런걱정없이순진한유년을보내던열네살소년죄르지는어느날부터인가자신을둘러싼세계가조금씩바뀌어가는것을느낀다.노란색별을가슴에붙이게되고,생필품배급이절대적으로부족해지고,아버지는어느날노동봉사라는명목으로죄르지곁을영영떠난다.한편유대인소년들에게할당된공장노동에징집된죄르지는공장을향하던버스에서끌려나와그를기다리고있던잔혹한운명에조우한다.갑작스러운연행과물한모금주어지지않는비좁은수용소행기차,죄르지가도착한곳은지금까지그가알던세상의대척점에위치한땅,바로아우슈비츠였다.아우슈비츠에서부헨발트,차이츠까지악명높은강제수용소를전전하면서소년은매일도처에도사린죽음과마주한다.
그러나가스실의비참과잔혹한노동,인간이하의생존조건가운데에서그는오히려그어느때보다담담하게자신에게주어진것들을받아들이고모든것을견뎌내는법을체득한다.즉죽음에서일상을찾아낸것이다.

줄은나를포함해똑같이줄을맞춰느리지만한발한발서서히앞으로나아갔다.앞에목욕탕이있었는데이를보자다시힘이생겼다.하지만그전에모두의사에게건강검진을받아야한다고했다.그들이말을해주기도했지만스스로생각해도이것은자연스럽게이해가되는부분이었다.업무때문에하는일종의징병검사나업무적합도검사임에틀림없다고생각했다.그때까지잠깐쉴수있었다.내옆과앞과뒤에서소년들이서로부르며잘있다고손을흔들었다.(중략)역은꽤멋있었다.
―본문중에서

“이게바로말린쐐기풀수프야.”
그가설명했다.(중략)그가다시미소지으며말했다.
“군인에게있어첫번째법칙은오늘주는것을다먹으라는거야.내일도먹을수있을지모르기때문이지.”
실제로그는자기수프를침착하고태연하게마지막한방울까지얼굴하나찌푸리지않고다먹었다.
―본문중에서

부족한식량을절도있게섭취하고,주어진노동을묵묵히수행하고,그곳을지배하는폭력적인규칙에순응하면서계속해서삶을살아나가는것에집중하는죄르지.소년은1944년수용소에들어가1945년2차세계대전이끝난뒤해방되어부다페스트거리로다시돌아오지만이미단일년의시간동안노인처럼변해버렸다.그를알던거리의이웃들과그가겪은이야기를세상에발표하고싶어하는저널리스트는죄르지가지구상최악의장소에서끔찍한일을겪고세상에대한분노에차있을것이라예상하지만죄르지는그런그들에게자신은그곳에서어쩌면행복까지도느꼈음을피력한다.
혼란스러워하는사람들에게내뱉는“운명이있다면자유란없다.그런데만약반대로자유가있다면운명이란없다.”라는죄르지의역설은실제로죄르지의나이에아우슈비츠와부헨발트,차이츠를경험한작가임레케르테스가홀로코스트이후의인류에게전하는,인간성에대한준엄하고도근원적인,강렬한깨달음이다.

■2016년타계한작가의‘운명4부작’을대표하는작품

2016년3월홀로코스트의생존자이자아우슈비츠의고발자임레케르테스가타계하면서우리는다시한번이독특한주제에천착해온거장의삶을돌아볼기회를갖게되었다.
부다페스트의목재상부부에게서태어난임레케르테스는자신이유대인이라는사실을뚜렷이인식하기도전에그의생애를변화시킬만한사건에맞닥뜨린다.소설속주인공죄르지와마찬가지로불과열네살의나이에부모님과살던정든거리에서지상의지옥이라는별명이붙은폴란드아우슈비츠에끌려간것이다.그는이후에부헨발트와차이츠에각각수용되었다가종전이래다시부다페스트에돌아온다.이때겪은강렬한체험은고발자로서의사명감으로변하여이후작가의삶을지배하면서그의문학세계를이루는주요한토대가된다.
일간지편집인,공장노동자,프리랜서작가,번역자등다양한직업에종사하며전쟁이후의삶을영위하던임레케르테스는결국13여년이라는긴세월동안의집필끝에그의운명을바꾼역작『운명』을발표하며작가로데뷔한다.이작품의원제는‘Sorstalansag’로,본래는‘운명없음’이라는뜻이다.즉죄르지가소설말미에사람들을향하여부르짖는“운명은없다.”라는한마디를소설의주제로다루고있는것이다.

나역시주어진하나의운명을버텨냈다.그것은나의운명이아니었지만나는끝까지살아냈다.그들이왜내가지금그것을품고출발해어딘가로끼러들어야한다는것을생각하지못하는지정말알수가없다.그것은일어나지않을수도있었던착오이고우연이고일종의탈선이었다고말하는것을나는더이상견딜수없다.그들은내말을잘이해하지못하고내말이별로마음에들지않는것같았다.
―본문중에서

인류역사상가장잔혹한범죄의피해자가말하는음성이라고는믿을수없을정도로차분하고객관적인목소리로과거를술회하는죄르지의입술을빌어임레케르테스는어쩌면운명이존재하는것이아니라스스로가곧운명이라고주장하며,아우슈비츠를사회적폭력과억압이여전히상존하고있는현대사회까지확장하여그안에서‘살아갈의지’를가질것을피력하고있는지도모른다.비록타계로인해더이상새로운작품을통해새로운음성을들을수는없게되었으나,이현대사에서특별한위치를점한작가는여전히깨어있는독자들에게는더없이생생한목소리로,아우슈비츠가특정지역과특정시기에속한일회적인사건이아니라지금도폭력적인사회안에서여전히자행되고있는진행형의사건임을고발하면서“나치는언제나다시우리에게돌아올수있다.”라고경고하고있다.